보통 유명 셰프를 초청하는 '갈라 디너'는 소수의 VIP만을 위해 허락된 일시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예약 전쟁을 뚫은 주인공들만이 그날의 공기와 맛을 독점하고, 다음 날이면 메뉴판에서 신기루처럼 사라지곤 한다.지난달 19일, 시그니엘 서울 ‘스테이(STAY)’에서 열린 야닉 알레노 초청 갈라 디너 역시 단 80명에게만 공개돼 전석이 매진됐다. 당시 선보인 메뉴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인 ‘알레노 파리’의 인기 메뉴만을 엄선해 구성했다. 프랑스 현지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고자 야닉 알레노(Yannick Alleno) 셰프와 야닉 그룹의 수석 주방장 메흐디 벤셰이크(Mehdi Bencheikh) 셰프가 전 과정에 참여했다.
프렌치의 정수를 보여 주는 두 셰프의 손길이 닿은 디쉬들에 갈라 디너 참석자들은 역대급 호평을 내놨다고 한다. 이에 화답해 시그니엘 스테이도 이례적인 결정을 했다. 소수에게만 공개됐던 특별 메뉴를 지난 6일부터 런치와 디너 정식 코스로 상륙시킨 것. VIP 초대장 없이도 마주할 수 있게 된 스테이의 야심작을 직접 경험해 봤다.

야닉 알레노는 전 세계적으로 15개 이상의 미쉐린 별을 거머쥔 현대 프렌치 퀴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2015년부터 파리의 '알레노 파리'를 통해 미쉐린 3스타를 유지해오고 있는 그는, 식재료 본연의 풍미를 저온에서 농축해내는 ‘엑스트락시옹(Extraction)’ 기법을 고안는 등 소스의 문법을 새롭게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개편의 핵심인 ‘스테이 머스트 트라이(STAY Must Try)’ 코스는 갈라 디너의 감동을 재현하는 데 초점을 뒀다. 런치 코스의 경우 ‘스테이 펀’(13만5000원)과 ‘스테이 이모션’(16만5000원) 두 가지로 나눠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이날은 알레노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가 포함된 스테이 이모션 코스를 선택했다.
처음 나오는 아뮤즈 부쉬는 두 가지 맛으로 서브된다. 한입 크기의 핑거 푸드지만 큐민과 그뤼 치즈 등 식재료를 잘 배합해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이어 나오는 식전빵은 바삭하게 잘 구워져 있고, 가염 버터와 잠봉 버터 등 두 종류의 버터가 함께 서빙돼 취향에 따라 곁들어 먹을 수 있도록 했다.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은 가리비 관자 크루도가 연다. 매일 아침 살아있는 관자를 직접 손질해 특유의 달큰함과 바다의 감칠맛을 그대로 살렸다. 여기에 백간장과 레몬즙,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로 만든 동양식 모던 베네그레트가 핑거라임, 레몬 제스트와 어우러져 해산물 콜드 스타터의 완벽한 균형을 보여준다. 함께 제공되는 사워도우 크리스피 칩은 고소한 식감의 재미를 더한다.

이어지는 화이트 루트 수프는 스테이가 지향하는 현대적 가치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셀러리악, 콜라비, 서양 대파, 양파 등 오직 백색의 뿌리채소만을 사용해 땅속 깊은 곳의 ‘어시(Earthy)’한 풍미를 은은하게 뽑아냈다. 동물성 식재료를 최소화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면서도, 크리미한 수프와 크런치한 브로콜레티, 신선한 배의 식감 대비를 통해 미식적 쾌감을 놓치지 않았다.
클래식한 프렌치를 경험하고 싶다면 아스파라거스 핫 스타터에 주목해야 한다. 12개월 숙성된 콩테 치즈와 옐로우 와인으로 만든 뱅 존(Vin Jaune) 소스, 여기에 16시간 이상 공들여 끓여낸 치킨 주스가 곁들여져 아삭한 아스파라거스의 맛을 한층 풍요롭게 끌어올린다. 스테이크의 사이드 디쉬가 아닌, 주 식재료로서 아스파라거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디쉬다.

메인 디시는 갈라 디너의 주인공이었던 ‘한우 밀푀유 스테이크’다. 알레노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이기도 하다. 최상급 채끝과 양송이버섯을 1mm 두께로 얇게 슬라이스해 50겹 이상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18시간 동안 소 뼈와 꼬리, 사태를 넣어 끓인 스테이만의 깊은 비프 주스가 고기 층층이 스며들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식감을 준다. 특히 밀푀유 디저트를 먹는 것처럼 포크로 한 겹 한 겹 가로로 찢어 먹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직접 착즙한 비트 주스를 발효시켜 글레이징한 양상추 구이가 사이드로 나와 산뜻한 변주를 준다.
고기를 먹지 않거나 해산물을 선호한다면 랍스터 구이를 택하면 된다. 랍스터를 통으로 구운 뒤 껍질과 내장을 모두 발라내고, 플레이팅은 랍스터의 외형을 살려 서빙한다.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면서도, 랍스타 한 마리를 그대로 먹는 듯한 흥미를 자아낸다. 생강을 더한 뵈르 블랑 소스가 곁들어져 부드러운 버터향과 알싸한 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코스의 마침표도 드라마틱하다. 카카오 닙스가 들어간 타르트 쉘에 진한 초코 크림을 채우고 주정 강화 와인인 모리(Maury) 소스를 올린 초콜릿 타르트가 서빙된다. 하이라이트는 테이블 옆에서 직접 꼬냑에 불을 붙여 아이스크림 위에 부어주는 퍼포먼스다. 타오르는 불꽃과 함께 퍼지는 꼬냑의 아로마가 여운을 남긴다. 이달 시그니엘 오픈 9주년을 맞아 초콜릿 위에는 특별 문구를 새겨 의미를 더했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디저트 라이브 스테이션'으로 향하면 된다. 까눌레와 마카롱, 슈가를 입힌 견과류와 막대 초콜릿, 쿠키 등 다양한 디저트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웬만한 '디저트 뷔페'가 연상될 정도로 화려한 구성을 자랑하는 이곳에서 길었던 런치는 강렬한 달콤함으로 마무리됐다.
81층의 구름 위에서 펼쳐지는 야닉 알레노의 디쉬는 더 이상 소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갈라 디너를 놓쳐 아쉬워던 이라면, 기꺼이 이 화려한 식탁의 주인공이 되어볼 만하다. 스테이는 코스 메뉴 외에도 알라 카르트(단품) 메뉴를 전면 리뉴얼하고, 오는 22일에는 각 메뉴와 어울리는 와인 페어링 디너도 개최한다. 2022 샤블리 그랑 크뤼 보데지르, 2021 쥬브레 샹베르탱 등 4종의 프리미엄 와인이 곁들어질 예정이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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