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복상장 가이드라인, '모호함'과 '유연함' 사이…애매한 ‘주주 동의’ 기준

입력 2026-04-16 14:24   수정 2026-04-16 14:50

이 기사는 04월 16일 14:24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한국거래소가 중복상장(모자회사 동시상장) 심사 때 적용할 가이드라인의 윤곽을 공개했다. 질적심사기준에 '중복상장 특례'를 신설해 자회사 상장 시 모회사의 일반주주 보호 여부를 엄격히 따지기로 했다. 모회사 주주 동의 여부를 판단할 기준 등 중복상장 성패를 가를 수 있는 구체적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의 눈치와 여론에 따라 자회사 상장의 성패가 갈리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알맹이 없는 가이드라인"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16일 한국거래소 콘퍼런스홀에서 ‘중복상장 제도 개선 공개 세미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3월 발표된 ‘자본시장 안정 및 정상화 방안’의 후속 정책으로, 이르면 7월부터 시행된다.

개편 방안에 따르면 거래소 상장 세칙에 ‘중복상장 심사 특례’가 신설돼 질적 심사를 진행한다. 심사 대상은 지배회사의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종속회사 또는 동일 기업집단의 계열회사로서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다.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뿐 아니라 지주회사 전환 목적의 인적 분할, 설립·인수한 자회사 등이 모두 포함된다.

심사 과정에서는 자회사의 주력 제품이나 매출처가 모회사에 의존하지 않는지(영업 독립성), 인사 관리나 이사회 의사결정이 독자적으로 이루어지는지(경영 독립성)를 엄격히 따진다. 투자자 보호 심사에서는 자금 조달의 불가피성과 주주 간담회 등 소통 노력, 모회사 일반주주의 동의 여부까지 종합적으로 확인한다. 모회사 이사회에는 ‘주주 충실 의무’가 적용돼 자회사 상장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 공시해야 한다. 추가 의견 수렴을 거쳐 이달 최종안을 확정할 예정이지만, 전체적인 틀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이 지난달 발표된 내용에서 새로울 것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거래소는 심사 기준을 제시하면서도 정작 핵심인 주주 동의 여부를 판단할 구체적인 수치나 업종별 예외 기준을 명시하지 않았다. 벤처투자 업계 등이 요구해온 업종별 특성이나 기업 규모에 따른 차등 적용 방안, 소액주주 등을 중심으로 제기된 자회사 상장 추진 시 모회사 소액주주의 과반 동의 의무화 방은 등도 담기지 않았다.

IB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예외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어 기업들로서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일 것”이라며 “명시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은 결국 거래소가 지금까지와 똑같이 사안별로 판단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규제 실효성 위한 '고육지책'

거래소의 ‘고육지책’이라는 분석도 있다. 기준선을 수치로 명확히 그어버리면 오히려 이를 악용하거나 규제의 허점만 살짝 피하는 ‘꼼수 상장’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업 독립성 판단 기준을 ‘모회사 매출 비중 30% 이상’으로 못 박으면, 기업들이 의도적으로 해당 수치를 29%로 낮춰 심사를 청구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다. 모회사 주주의 과반 동의 의무화 등도 명문화가 쉽지 않다. 과반 동의를 명문화하는 순간 이를 빌미로 소수 지분을 활용한 ‘알박기’ 등이 기승을 부릴 수도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마다 사업 구조와 주주 구성 등 환경이 다른 상황에서 특정 수치를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또 다른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며 “수치적인 기준을 잡지 않는 것이 오히려 기업의 주주 보호 노력을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진정한 질적 심사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험자본 육성과 주주 보호라는 거래소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선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기 어렵다는 설명인 셈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중복상장을 추진하기 위한 대전제인 주주 동의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나오지 않으면서, 향후에도 중복상장을 둘러싼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않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상장 예비심사를 앞두고 회사와 소액주주 간 극심한 여론전과 당국 눈치 보기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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