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명품업체 구찌에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승계 실패는 기업 규모와 명성을 가리지 않는다. 준비되지 않은 승계가 기업에 치명적인 이유다.
가족기업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 경제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약 70%, 일자리의 60%가 가족기업에서 나온다. 수많은 직원과 소비자, 투자자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이 같은 가족기업이 10년 내 대거 세대교체를 맞는다. 후계 구도가 정리되지 않거나 상속 준비가 미흡한 기업도 적지 않아 승계 리스크가 세계 경제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족기업의 대표적인 약점은 능력주의 훼손이다. 워런 버핏은 아들이나 형제를 최고경영자(CEO) 및 회장 자리에 앉히는 관행을 두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그럼에도 많은 기업이 가족기업 체제를 유지하려는 이유는 그만한 강점이 있다고 봐서다. 가장 큰 강점은 관계 구축 능력이다. 시장에서 쌓은 인맥과 신뢰가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특히 소비자와 공급자의 신뢰가 중요한 유통·소비재 산업에서 가족기업 강점이 두드러진다”며 “이들 산업의 3분의 1 이상이 가족기업”이라고 말했다.
경영 스타일에도 특징이 있다. 가족기업은 분기 실적이 아니라 수십 년을 내다보고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보수적인 경영으로 이어진다. 연구개발보다 실물자산 투자에 더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빠르게 변하는 산업에서는 약점이 될 수 있지만, 전통과 브랜드가 중요한 명품 업종에서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부채비율이 낮고 현금을 많이 보유하는 만큼 위기 상황에서 회복력이 더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초기에는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과 비슷한 충격을 받았지만, 이후에 더 빠르게 회복한 사례가 많았다”고 분석했다.
상당수 가족기업은 승계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딜로이트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의 85%는 ‘전략적인 CEO 승계 계획이 장기적 성공에 필수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승계 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57%에 그쳤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 중인 곳은 23%에 불과했다.
다음에 회사를 이끌 가족 구성원이 정해지지 않은 곳도 많았다. 조사 대상 기업의 61%는 ‘CEO 역할에 관심 있는 가족 구성원이 최소 1명 이상 있다’고 답했지만 ‘가까운 시일 내 실제로 그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본 비율은 23%였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가족 승계 선호도는 더 낮아졌다. 매출 10억달러 이상 기업 가운데 다음 CEO를 가족에서 찾겠다는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매출 5억달러 미만 기업에서는 가족 CEO 선호 비율이 47%, 전문경영인 선호 비율이 46%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시장에서는 승계 자체보다 ‘불확실한 승계’를 더 위험하게 본다”며 “제도화된 승계 구조가 없는 기업은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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