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극
진달래 망울 부퍼
발돋움 서성이고
쌓이던 눈은 슬어
토끼도 잠든 산속
삼월은 어머님 품으로
다사로움 더 겨워-.
멀리 흰 산 이마
문득 다금 언젤런고
구렁에 물소리가
몸에 감겨 스며드는
삼월은 젖먹이로세
재롱만이 더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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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늘 달력보다 조금 늦게 옵니다. 어떤 시는 한 호흡 늦게 펼쳐 들 때 더 깊이 스며듭니다. 이태극 시조 ‘삼월은’이 그렇습니다. 지나간 계절의 노래가 아니라 막 태어난 생명의 체온으로 읽히기 때문이지요.
“발돋움 서성이고”라는 구절에는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의 몸짓이 어른거립니다. “어머님 품”에는 봄날의 포근함만 아니라 향기로운 젖 내음까지 배어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특별한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이 시조를 완성한 날이 1956년 4월 15일인데 왜 ‘삼월은’이라고 썼을까요. 시인은 한 해 전에 늦둥이 외아들을 얻었습니다. 그 아이가 첫돌을 맞아 까꿍 놀이에 깔깔 웃고, 걸음마를 막 배우며 집 안 가득 봄빛을 퍼뜨렸습니다. 그러니 이 시조 속 삼월은 달력의 삼월이 아니라 어린 막둥이와 함께하는 생명의 삼월입니다.
“삼월은 젖먹이로세/ 재롱만이 더 늘어-.” 이 마지막 연에서 작품의 비밀이 또렷해집니다. 삼월을 “젖먹이”라고 부르는 순간 계절은 풍경을 넘어 한 생명이 됩니다. 그 봄의 한가운데 젖먹이가 있습니다. “재롱만이 더 늘어”라는 표현은 계절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을 한꺼번에 보여 주지요. 봄이 자라고 아이가 자라고 아버지의 기쁨도 함께 자랍니다.
이 재롱둥이 아들이 문학평론가 이숭원(서울여대 명예교수)입니다. 이숭원 문학평론가의 회고를 읽으면 이 시조의 속사정이 더욱 선연해집니다. 1955년 4월 6일 서울 숭인동에서 막내 이숭원이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마흔셋, 어머니는 마흔넷이었습니다. 위로 누나 셋을 두고 9년 만에 얻은 막내였으니 기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뒤늦게 외아들을 얻은 시인은 그해 여름 가족과 함께 수락산 밑으로 소풍을 갔습니다. 거기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보고 시상이 일어나 시조 한 편을 썼는데, 그해 한국일보에 발표한 ‘산딸기’가 그것입니다.
“골짝 바위 서리에/ 빨가장이 여문 딸기// 가마귀 먹게 두고/ 산이 좋아 사는 것을// 아이들 종종쳐 뛰며/ 숲을 헤쳐 덤비네.// 삼동을 견뎌 넘고/ 삼춘을 숨어 살아// 되약볕 이 산 허리/ 외롬 품고 자란 딸기// 알알이 부푼 정열이사/ 마냥 누려 지이다.”
여기 나오는 산딸기에도 늦게 얻은 아들의 모습이 겹칩니다. 삼동과 삼춘의 세월을 거쳐 마침내 “알알이 부푼” 정열까지 전해집니다. 그때 수락산에서 가족사진을 함께 찍으며 즐거워했다는 이숭원 평론가의 회고를 읽고 있으면, 큰 시인 이전에 한 아버지의 환한 얼굴이 먼저 떠오릅니다.
또 다른 특별함은 그 집안의 문학적 풍경입니다. 이태극 시인은 시조를 지으면 식구들을 불러놓고 직접 읊어 주었다고 합니다. 막 써낸 작품의 숨결이 식기 전에 가장 먼저 가족과 나누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런 아버지 곁에서 자란 아들의 감성과 상상력은 남달랐습니다. 시를 좋아하는 아들은 중학교에 들어가 짝꿍을 붙들고 시 속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곤 했다고 합니다.
훗날 돌이켜보니 그것이 바로 평론의 시작이었습니다. 시를 쓰는 아버지와 그 시의 숨결을 해석하며 자라난 아들. 참으로 아름다운 문학의 계보입니다. 그 아들은 마침내 ‘가장 시적인 평론’을 쓰는 문학평론가로 이름을 날리며 지난해에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뽑혔습니다.
아들의 회고를 따라가다 보면 아버지 이태극 시인의 시조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사연이 절절하게 전해집니다. 숭인동 집을 팔고 창신동으로 이사한 것도, 충정로와 남가좌동, 다시 충정로와 부암동으로 옮겨 다닌 것도 모두 시조 전문지 『시조문학』을 출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습니다.
집을 팔고 농지를 정리하고, 심지어 미장원까지 운영하면서 그는 출판비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작품을 모으고, 편집하고, 조판소에 넘기고, 교정을 보고, 책이 나오면 방에 쌓아 두었다가 봉투에 담아 우체국으로 날랐습니다. 그 일을 80세가 넘어서까지 직접 했다고 하니, 시조를 향한 정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그에게 시조는 생의 형식이자 살아야 할 이유였으며 견뎌야 할 명분이었습니다. 그러니 늦게 얻은 외아들의 웃음도, 사월에 쓴 삼월의 젖빛 온기도 모두 시조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아들을 얻은 뒤 보름 만에 쓴 ‘시조송(時調頌)’을 다시 펼쳐 봅니다.
“시조가 하도 좋아/ 나도 얽어 보던 것이// 그 벌써 한 이십년/ 어제론 듯 흘렀구료// 오늘 또 한 수 얻고서/ 어린인 양 들레오.// 이루 다 못 푼 정/ 그려도 보고파서// 옛 가락 그 그릇에/ 삶의 소릴 얹어 보니// 새로움 더욱 더 솟아/ 내 못 잊고 살으오.// 묶는 듯 율(律)의 자윤/ 내일 바라 벋어나고// 부풀어 말의 자랑/ 갈수록 되살아나// 이 노래 청사(靑史)를 감넘어/ 보람쩍게 크리라.”
참 좋습니다. “오늘 또 한 수 얻고서/ 어린인 양 들레오.” 늦둥이 아들을 얻은 아버지가 또 한 수의 시조를 얻고 어린아이처럼 들뜹니다. 생명의 탄생과 시의 탄생이 한 리듬으로 울립니다. 아이의 재롱 앞에서 웃고, 시 한 편 앞에서 설레는 마음이 이렇듯 애틋합니다.
이 대목에서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좋은 시는 먼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말입니다. 아이의 웃음, 엄마 품의 온기, 구렁의 물소리, 봄 산의 망울. 그런 소소한 것들 속에서 가장 깊은 생의 기쁨을 길어 올린 ‘삼월은’은 그래서 짧아도 깊고, 소박해도 오래 남는 작품입니다.
이 시조가 계절의 노래이면서 동시에 생의 초입을 향한 헌사인 까닭도 여기에 있지요. 그 안에 늦게 얻은 아들을 품에 안은 채 시조 한 수를 얻고 아이처럼 들뜨던 한 시인의 맑은 숨결이 살아 있습니다.
시를 식구들 앞에서 읊어주던 아버지와 그 소리를 들으며 문학의 길로 들어선 아들까지 함께 떠올리면 이 짧은 시조 한 편이 더욱 크고 깊게 다가옵니다.
어떤 봄은 지나간 뒤에야 비로소 제 얼굴을 보여 주지요.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첫 마음과 첫 웃음, 첫 설렘의 섬세한 결을 천천히 비추어 주기도 합니다. 그 시간과 공간의 접점에서 “청사(靑史)를 감넘어/ 보람쩍게” 울리는 노래가 되살아나는 걸 보니, 좋은 시 한 편이 이렇게 한 사람의 봄을 우리 모두의 봄으로 바꿔줍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유배문학특별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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