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3일 "추가 자구 여력이 제한적"이라며 유상증자의 불가피성을 강변하며 배수진을 쳤던 한화솔루션이 열나흘 만에 한발 물러섰다.
17일 정정 공시를 통해 전체 증자 규모를 5832억원 축소하고, 부족분은 자산 유동화로 선회했다.
김승연 회장의 무보수 경영 선언과 전면 등판은 사태 수습을 향한 한화그룹의 급박함을 상징한다는 평가다.
김동관 부회장의 3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과 책임경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의 반발과 김 부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4월 13일 한화 컴플라이언스위원회에 법무법인 율촌 출신 김건 변호사가 전무로 합류했다.
M&A와 지배구조 분야 전문가의 영입은 유상증자 조건 정정 이사회 불과 나흘 전이라는 시점 때문에 시장의 관심을 모았다.
주목할 점은 인력 충원 시점과 맞물려 공시의 톤앤매너와 문법이 눈에 띄게 정교해졌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정정 제출된 기업실사 보고서에는 발행가액 산정 방식이 네 단계로 보강됐다.
'투자자산 유동화'와 '자본성 조달' 등 규제 기관과 소통하기 용이한 기술적 용어들이 전면에 배치됐다.
김 전무는 컴플라이언스위원회에서 자본시장법 규정 해석과 규제 기관과의 소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 인력을 전진 배치해 대응 논리를 보강한 것은 리스크 관리 차원의 행보로 풀이된다.

이번에 공시된 정정신고서의 세부 내용을 보면 눈에 띄는 변화는 '기산일(발행가액 산정 기준일)의 변경'이다.
당초 3월 25일이었던 기준일이 4월 16일로 밀렸다. 표면적으로는 증권신고서 정정 등으로 전체 일정이 미뤄짐에 따라 산정 기준 시점을 최신화하는 통상적인 실무 절차다.
다만 시장에는 이 절차의 '효과'에 주목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주가 하락 국면에서 기산일이 뒤로 밀리면 신주 발행가는 낮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발행가를 낮춰 기존 주주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신주를 인수할 수 있게 한 조치로 해석한다.
금감원의 경고가 이어진 상황에서 회사가 취할 수 있는 가시적인 대응이다.
반면 이를 청약 완판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발행가가 낮아질수록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 희석은 심화되지만, 동시에 신주의 가격 매력도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제출된 한화솔루션 증권신고서(지분증권) 내 '개인주주 대상 소통 계획' 항목도 눈길을 끈다.
회사는 4월 말에서 5월 중 '경제 유튜브 채널 인터뷰'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명기했다. 유상증자 관련 주주들의 우려에 대해 필요성을 설명하겠다는 것이 명분이다.
기관투자자 중심의 기업설명회(IR)가 통상적 문법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뉴미디어 플랫폼을 법적 공시 서류에 공식 소통 경로로 담은 것은 이례적이다.
최근 한화 금융계열사는 최근 경제 유튜브 플랫폼 삼프로TV 운영사(이브로드캐스팅) 지분을 확대하며 2대 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지난해 11월 한화투자증권은 이브로드캐스팅에 약 66억원을 투자, 지분 2.93%를 확보했다. 기존 한화생명의 지분을 더하면 그룹 전체 지분율은 약 14% 수준으로 추산된다.
물론 지분 취득의 재무적 배경과 경영 전략은 유상증자 국면과 별개로 존재할 수 있다.
다만 증권신고서에 유튜브를 통한 IR 계획이 명시된 시점과 그룹 차원의 플랫폼 영향력 확대 시기가 맞물리면서, 일각에서는 이를 단순한 투자를 넘어선 전략적 투자라고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행보는 이번 유상증자의 성패가 개인 투자자들의 향방에 달려 있다는 판단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기관은 리포트와 대면 IR로 관리가 가능한 반면, 광범위한 개인 주주의 여론은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청약 미달 시 주관사의 인수 부담과 주가 하방 압력이 커지는 구조를 고려할 때, 회사가 가장 효율적인 도달 범위를 가진 채널을 공식 소통 창구로 낙점했다는 분석이다.
계열사의 유증 국면에서 외부 전문가를 전진 배치하고, 금융 계열사를 통해 미디어 접점을 확보하며 제조 계열사의 리스크를 방어하는 흐름은 단일 계열사 차원의 판단 범위를 넘어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의 전략·인사·재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의 설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특히 차남이 이끄는 금융 계열사의 자본력을 매개로 장남이 이끄는 제조 계열사에 대한 우호 여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움직임을 두고, 재계에서는 그룹 차원의 선제적 리스크 관리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일정표는 이제 7월 1일을 가리키고 있다. 이날 ㈜한화는 방산·에너지 중심의 존속법인(76.3%)과 테크·라이프 중심의 신설지주사(23.7%)로 인적분할을 단행한다.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의 핵심 먹거리인 존속법인을, 삼남 김동선 부사장이 기계와 유통을 아우르는 신설법인을 맡게 됨에 따라 3형제 경영의 계열 분리는 한층 가속화될 전망이다.
6월 말 유상증자 대금 납입 직후 단행되는 이 대대적인 구조 개편은 한화그룹 3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매듭짓는 최종 관문으로 평가받는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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