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 11일 2977명이 희생됐다. 단일 테러 사건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미국은 16개나 되는 정보기관이 예산을 펑펑 쓰면서 왜 그런 음모를 눈치조차 채지 못했는지 정밀 분석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확보해둔 정보를 모으기만 해도 충분히 예측이 가능했다는 참담한 사실을 확인했다. 무수한 점을 선으로 연결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3년 뒤 16개 정보기관을 통합 지휘하는 국가안보국(NSA)이 창설된다. 그러면 뭐 하나, 빈 라덴이 계속 테러를 저지르고 다녀도 10년이나 행방을 찾지 못했다.2003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를 숨기고 있다며 이라크를 공격했다. 그해 5월 31일 독일과 프랑스 유명 신문에 성명서가 실렸다.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를 규탄하고 국제법에 기초한 세계 정치의 필요성을 역설한 내용이었다. 독일인 위르겐 하버마스가 쓴 글에 프랑스인 자크 데리다가 적극 동의하면서 공동 성명서가 된 것이다. 유럽을 대표하는 두 지성의 메시지에 전 세계 지식인들이 화답하고 응원했다. 그즈음 9·11 사후 조사 결과를 알게 된 피터 틸과 알렉산더 카프는 정부기관의 관료주의는 그런 참사를 절대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타트업을 세운다. 틸은 “시민의 자유를 보존하며 테러를 막으려는 미션 지향적 회사”라고 말했고 카프는 “헤겔 변증법으로 반대되는 것을 극복하는 ‘고전적 독일식 접근 방식’을 적용한다”며 지들만 아는 알쏭달쏭한 헛소리를 했다. 요즘 화제 만발인 ‘팰런티어’의 시작이 그랬다.
2011년 미국 해군 특수부대가 스텔스 헬기로 파키스탄 영토에 무단 침입해 10년이나 묵혀 ‘차갑게 식은’ 복수를 끝냈다. 그동안 정보기관은 빈 라덴이 동굴이나 산에 은신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그는 버젓이 마을 안가에서 살고 있었다. 허를 찔린 셈이다. 그걸 찾아낸 건 결국 팰런티어였다. 그들은 군과 정보기관 정보를 바탕으로 그의 가족, 친구, 동료 정보를 분석하고 그들이 사용한 통신수단과 자주 방문하는 장소까지 참고했다. 서로 엇갈리는 엄청난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통합·분석해 그곳을 ‘딱’ 지목했다. 2026년이 되면서 팰런티어 전성기가 펼쳐졌다. 베네수엘라 마두로는 2시간, 이란 하메네이는 15시간 만에 핀셋으로 제거됐다. 천리안으로 성장한 팰런티어의 마법 덕이다.
1989년 하버퍼드칼리지 철학과를 졸업한 카프는 스탠퍼드대 로스쿨로 진학한다. 그는 3년간의 ‘천박한’ 법학 공부에 학을 뗐다며 스승을 찾아 독일로 떠났다. 거기서 유럽 최고의 지성 하버마스 밑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한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그에게 학위를 좀처럼 주지 않았다. 무려 8년의 기다림 끝에 하버마스는 “당신의 지도교수를 포기하겠다”며 절연을 선언한다. 참으로 잔인하다. 지도교수를 바꾸고 2년이나 지나 박사가 된 카프는 미국으로 돌아와 로스쿨 친구인 틸과 함께 ‘문제의 회사’를 창업한다.
지난 3월 14일, 그 하버마스가 96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토론을 통해 사적 이해관계를 넘는 공익 여론을 만들어가는 시민 공간인 ‘공론장’을 주창했다. 18세기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된 공론장이 국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고 민주적 통제를 실현하는 핵심으로 기능했다는 논리다. 삶의 마지막 순간, 가장 강력한 공론장인 SNS가 혐오와 욕설만 가득한 공(恐)론장으로 변해가는 현실과 전쟁을 호출해버린 버림받은 제자의 신묘한 재주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전쟁을 촉발한 사람의 지도교수로 역사에 남지 않은 것에 안도했을까. 그리고 신기술의 제왕이 된 카프는 옛 스승의 부고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아이에게 망치를 쥐여주면 두들길 못만 찾아다닐 수 있다는 평범한 지혜를 몰랐을까.
남북전쟁 참상에 놀라 총의 위력을 극대화하면 역으로 전쟁 개시를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던 개틀링이 발명한 기관총, 그 때문에 지금껏 천만 명 이상이 죽어갔다. 그렇다고 저쪽이 기관총을 개발했는데 평화를 주창하며 그걸 포기하는 것 이상의 바보도 없다는 냉혹한 현실, 그리고 착한 척으로 일관하다 무력해진 하버마스와 데리다의 조국, 독일과 프랑스 위상이 우리를 슬프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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