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인노무사·세무사·감정평가사 시험 지원자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 시험은 법을 많이 다뤄 문과형 시험으로 불린다. 연령별로는 30대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문과 출신 직장인이 ‘평생 자격증’을 따기 위해 대거 지원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샐러던트’(샐러리맨+스튜던트)가 학원가와 스터디카페의 주요 고객이 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19일 한국산업인력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문과 계열 전문자격시험인 공인노무사·세무사·감정평가사 지원자는 총 4만2389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년(4만847명)보다 3.8% 늘었고, 2021년(2만4167명)과 비교하면 75.4% 증가했다. 지난해 감정평가사 지원자는 7969명으로 2021년 대비 98.3% 늘었다. 세무사와 공인노무사 지원자도 같은 기간 각각 76.2%, 62.1%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30대 비중이 가장 컸다. 지난해 공인노무사 시험에선 지원자 1만2410명 가운데 30대가 40.5%(5024명)로 가장 많았다. 감정평가사 시험에서도 지원자 7969명 중 30대 비중이 40.8%(3251명)로 1위였다. 전문자격증 열풍이 재직자를 중심으로 확산한 결과다.
에듀윌 관계자는 “올 들어 노무사·감정평가사 시험과 관련한 직장인 문의가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으로 늘었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견 식품업체 인사팀에 근무하는 박모씨(34)는 “노무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퇴근 후 인터넷 강의를 듣고 있다”며 “변호사, 회계사 시험과 달리 회사에 다니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학원가에는 ‘직장과 병행해 공부한다’는 뜻의 신조어 ‘직병’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수험생 커뮤니티에서는 직병을 하며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노하우와 계획표 등이 활발히 공유되고 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고성장 기업은 대부분 이공계 기반 수출 대기업”이라며 “재직 중인 기업의 비전이 불투명하다고 보는 문과 출신 직장인 사이에서 불안과 위화감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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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출신 재직자들이 전문직에 뛰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정년과 상관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고령층(55~79세) 취업 경험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52.9세로, 법정 정년(60세)보다 크게 낮았다.특히 사무 종사자의 평균 퇴직 연령은 45.7세로 관리자·전문가(53.4세), 서비스·판매 종사자(53.9세), 농림어업숙련종사자(60.1세) 등 조사 대상 6개 직무 가운데 가장 낮았다.
이 같은 불안감에 공인노무사, 세무사, 감정평가사 등 전문자격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에듀윌 관계자는 “세무사 등은 자격증 평균 취득 기간이 2년6개월로 변호사와 회계사보다 짧은 편이어서 직장인이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도전할 수 있는 분야”라며 “40대 이후 취업이나 개업이 가능한 것도 직장인을 끌어들이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전공별 고용 및 임금 격차’에 따르면 인문계열과 사회계열 대학 졸업생의 월 초임은 각각 250만4000원, 260만6000원으로 공학계열(297만9000원)보다 16.0%, 12.5% 낮았다. 문화콘텐츠 기업에서 근무하는 7년차 직장인 김종명 씨는 “10년차가 돼도 연봉이 7000만원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연차에 연봉을 크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전문자격증 취득뿐”이라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21년 기준 8대 전문직(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변리사 세무사 노무사 관세사 법무사) 중위 연봉은 5076만~7770만원 수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22년 귀속 근로소득자 중 백분위 중위 50% 구간 소득자의 1인당 평균 소득은 3165만원에 그쳤다. 8대 전문직 연봉과 비교하면 1911만~4605만원 적었다. 한 감정평가사는 “입사 3~4년차 감정평가사는 통상 5000만원 안팎의 연봉에 인센티브까지 더해 최대 1억원 수준의 연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전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AI가 법률 기준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 종로에서 노무사·세무사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B씨는 “AI로 해고가 증가하면 오히려 노동 분쟁으로 노무사 관련 업무가 늘고, 퇴직자들이 자영업으로 몰리면서 세무사 업무도 많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전했다.
다만 전문직 시장도 결국에는 AI의 파고를 버티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행 제도가 전문자격증 소지자에게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지만 AI와 플랫폼 고도화로 이런 지위는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미경 기자 capit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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