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침묵 깬 ‘앙팡테리블’ 고종수, 아들 앞에서 다시 뛰다

입력 2026-04-20 08:25   수정 2026-04-20 08:26



등번호 22번, 익숙한 실루엣이 수원월드컵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관중석의 온도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앙팡테리블(무서운 아이)’ 고종수가 현역 시절처럼 그라운드에 첫발을 내디딘 찰나 홈팀 응원석의 팬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기립해 옛 영웅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19일 열린 OGFC(The Originals FC)와 수원삼성 레전드의 맞대결. 경기 전 믹스드존(공동취재구역)에서 마주한 고종수의 표정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는 “현역 시절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보다 가슴이 훨씬 더 뛴다”며 “무엇보다 수원 팬들 앞에 오랜만에 다시 선다는 생각에 설렘이 크다”고 털어놨다.

1996년 수원의 창단 멤버로 18세에 프로 무대에 뛰어든 그는 데뷔 시즌에만 1골4도움을 올리며 단숨에 리그 간판스타로 떠올랐다. 날 선 왼발 프리킥을 무기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을 누볐고, 같은 해 프로축구 K리그 최우수선수(MVP) 트로피까지 들어 올리며 ‘천재 미드필더’라는 타이틀까지 달았다.

수원의 레전드인 고종수는 불운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황태자로 불리며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중 십자인대 부상으로 꿈의 무대에 서지 못했다. 이후 고질적인 무릎 부상 등을 이유로 짧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 했다. 은퇴 후 지도자의 길도 순탄하지 않았다. 수원에서 오랫동안 코치로 일하며 경험을 쌓은 뒤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의 지휘봉을 잡았으나 2019년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며 불명예스럽게 지휘봉을 내려놓아야 했다.

스타성이 워낙 뛰어났던 터라 공백기에도 방송가와 유튜브의 섭외 요청이 빗발쳤다. 하지만 그는 자숙의 시간을 택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대신 외부 노출을 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진 양성에만 묵묵히 땀을 흘려왔다. 그랬던 그가 오랜 칩거를 깨고 다시 축구화 끈을 조여 맨 이유는 다름 아닌 ‘팬’과 ‘가족’이었다. 고종수는 “레전드 자격으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고 고민이 적지 않았지만, 긴 시간 잊지 않고 기다려주신 팬들과 수원의 옛 동료들을 만나고 싶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올해 여덟 살이 된 아들의 존재도 큰 몫을 했다. 장차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아들은 아버지가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였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한다. “아들 녀석도 저를 닮았는지 왼발로 뻥뻥 잘 때린다”고 호탕하게 웃은 그는 “과거 아빠가 팬들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받던 선수였는지, 오늘만큼은 아들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고 애틋함을 드러냈다.

이날 후반 10분쯤 교체 투입된 고종수는 14분간 그라운드를 누빈 뒤 다시 벤치로 물러났다. 경기 직전 훈련 도중 종아리 근육이 올라와 뛸 수 없는 상태였으나 자신을 그리워하는 팬들을 위해 짧게나마 뛰는 모습을 보여준 것. 7년 만에 맡은 그라운드의 풀내음과 관중의 함성은 웅크려 있던 그의 축구 본능을 다시 지폈다. 고종수는 “힘든 시간 동안 제가 축구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곁을 지켜주신 은인분들께 이제는 보답해야 할 때”라며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한국 축구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수원=서재원 기자 jwseo@hankyung.com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삼성바이오로직스현대차삼성전자트럼프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