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한국은 왜 대만에 밀리기 시작했나

입력 2026-04-20 06:05   수정 2026-04-20 07:55


IMF가 내놓은 2026년 4월 세계경제전망(WEO)은 한국에 ‘불편한 숫자’를 던졌다. 올해 한국의 명목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7412달러, 대만은 4만2103달러로 대만이 약 4691달러 앞선다. 더 아픈 지점은 구매력 기준이다. PPP 기준 1인당 GDP는 한국이 6만8624달러, 대만은 9만8051달러다. 격차가 2만9427달러, 비율로는 대만이 한국보다 약 43% 크다. 명목 수치만 역전된 것이 아니라, 환율 효과를 걷어낸 구매력 기준에서도 크게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과 대만의 격차를 환율 탓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다.

더 우려스러운 수치는 성장률이다. IMF는 올해 한국 성장률을 1.9%, 대만은 5.2%로 전망했다. 중요한 점은 IMF가 한국과 대만을 모두 AI 투자 붐과 기술제품 수요의 수혜국으로 본다는 사실이다. 두 나라 모두 반도체와 AI 사이클의 바람을 받고 있는데, 대만은 그것을 성장과 소득으로 연결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분석이다.

원인은 경제구조에 있다. IMF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의 민간소비가 연평균 1.3% 늘어나는 데 그쳐 같은 기간 실질 GDP 증가율 2%를 밑돈 것으로 분석했다. 투자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제약과 건설 부진의 영향을 받았고, 2020~2024년 성장에 대한 투자 기여도는 18%에 불과하다. 수출이 좋아도 소비와 투자가 뒤따르지 않으면 소득은 경제 전체로 퍼지지 않는다. 한국의 1인당 GDP가 대만에 밀린 첫 번째 이유는 내수 부진이다.

반도체 의존의 양면성도 분명하다. IMF는 2025년 한국 보고서에서 AI 관련 수요가 둔화해 국내 반도체 부문이 식으면 한국의 성장과 수출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관련 지출 둔화는 메모리칩 수요를 줄이고 한국 수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 IMF의 분석이었다. 반도체가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인 것은 맞지만, 지나친 쏠림은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본질적인 원인은 생산성의 양극화다. IMF는 한국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낮고, 그 이유로 비효율적 자원배분과 규제를 꼽았다. 서비스업 생산성은 제조업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고, 중소기업의 생산성도 신기술 도입 등이 늦어 정체돼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문제는 반도체가 약해서가 아니라, 반도체를 제외한 서비스와 중소기업, 내수 부문이 너무 약하다는 데 있다는 게 IMF의 지적이다.

재정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IMF는 한국에 대해 단기적으로는 경기 대응을 위한 완화적 재정을 용인하지만, 성장률이 잠재 수준으로 복귀하면 다시 재정건전화로 돌아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유는 고령화다. 2025년 한국 보고서는 정부 부채가 2025년 GDP 대비 48%에서 2030년 59%로 높아질 것으로 봤다. 고령화에 따른 보건·복지·사회보장 지출 확대가 장기 재정 압박을 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5년 뒤 한국과 대만의 격차는 더 벌어진다. 2031년 한국의 1인당 GDP는 4만6019달러인데 비해 대만은 5만6101달러로 1만 달러 이상 차이가 난다. 올해 4691달러인 격차가 2031년 1만82달러로 배 이상 벌어진다. 충격적인 숫자는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다. 한국이 6만8620달러로 대만9만8050달러보다 3만 달러 가량 낮다.
한국은 대만보다 훨씬 큰 경제다. 뱐면 대만은 더 빠르게 성장하고 더 두터운 산업과 재정 여력을 가진 경제다. 적어도 IMF 평가는 그렇다. 한국이 대만보다 우위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은 경제 규모와 고용 안정 정도다. 소득과 성장률, 대외건전성, 재정여력에서는 밀리고 있다.

IMF는 한국을 당장 재정위기국으로 보지는 않지만 성장률 저하와 고령화가 겹치면 재정 여력은 빠르게 소모될 수 있다고 봤다. 대만의 올해 국가부채 비율은 27.6%로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이 대만에 밀리는 원인은 반도체 등 주력 산업에 비해 내수와 서비스 산업, 중소기업 생산성이 부진하기 때문이다. IMF 보고서는 한국이 대만에 일시적으로 역전당한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산업 구조 전반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금 반도체 호황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경고 신호로 봐야 한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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