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한창이다. 덩달아 물가도 오른다. 에너지 비용이 뛰고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기업들은 가격을 올려야 할 압박을 받는다. 하지만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가격 인상 자제를 요구한다. 그 사이 기업은 다른 해법을 찾는다. 가격표는 그대로 두고, 용량만 줄이는 것이다.계산대 숫자는 바뀌지 않으니 소비자는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같은 돈을 내고 더 적은 양을 받는다면, 그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사실상 가격 인상과 다르지 않다.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이다.
지난해 교촌치킨이 순살치킨의 중량을 700g에서 500g으로 줄였다. 약 29%의 용량 감소다. 가격은 그대로였지만 논란이 커지자 교촌은 한 달 만에 중량을 원상복구 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질문 하나가 남는다. 만약 교촌이 용량 대신 가격을 올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비자들은 주문 앱에서, 메뉴판에서, 계산서에서 즉각 그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용량을 줄이는 방법을 택하자 소비자들은 한동안 알지 못했다. 당시 외식 조리식품은 용량을 줄여도 소비자에게 알릴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치킨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 날 과자 봉지가 유난히 가볍게 느껴지고, 참치캔 하나가 예전보다 덜 묵직하게 느껴진다면 대체로 그 느낌이 정확하다. 과자, 음료, 세제, 샴푸에 이르기까지 슈링크플레이션은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격을 올리면 물가 통계에 잡히고 소비자도 즉각 알아채며 정부도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용량을 줄이면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정부 간섭도 덜하며 소비자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고물가 시대에 슈링크플레이션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실제 정부가 2025년 12월경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방안을 발표하면서 거기서 인용한 마크로밀엠브레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81.3%는 용량 축소를 알아채기 어렵다고 응답했고, 67.8%는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용량이 줄면 소비자는 같은 돈으로 더 적은 양을 받게 된다. 700g짜리 치킨이 500g으로 그 중량이 29% 감소했을 때 치킨 가격이 그대로라면, 치킨 1g당 지불하는 가격은 오히려 40%가량 오른 셈이 된다. 가격표의 숫자가 그대로라고 해서 소비자 부담이 그대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가격 인상은 숫자로 드러나지만, 용량 축소는 숫자 뒤에 숨는다.기업은 가격을 올릴 때 소비자에게 알릴 의무가 없다. 가격표가 바뀌는 순간 소비자가 즉각 알고 그에 따라 구매를 결정하니, 시장이 알아서 소비자를 보호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비싸다 싶으면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거나 구매 자체를 줄인다. 그러나 용량 축소는 다르다. 포장 식품은 뒷면 작은 글씨의 내용량 표시를 매번 꼼꼼히 확인해야만 알 수 있고, 외식은 메뉴판 어디에도 중량 정보가 없어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예 알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가 쉽게 알아채지 못하도록 설계된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다. 가격 인상에 고지 의무가 없는 이유는 시장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용량 축소에 고지 의무가 있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알아야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어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
이 문제를 인식한 정부는 2024년 8월부터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용량을 줄이는 행위를 부당한 소비자 거래행위로 지정하고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고시를 개정했다.그러나 현재 규제는 이원화된 구조로 불완전하다. 샴푸·세제 등 생활용품 39개 품목은 공정위가, 라면·과자·참치캔 등 가공식품 80개 품목은 식약처가 각각 관할하며, 두 규제 모두 용량을 5%를 초과해 줄이면 3개월 이상 소비자에게 이전·변경 용량을 함께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과자 봉지에 500g에서 400g으로, 또는 20% 감소라고 표기하는 방식이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또는 제조중지명령이 부과된다. 그러나 관할이 나뉘어 있는 만큼 보호의 범위와 수준이 달라지고, 빠지는 영역이 생긴다.
치킨이 그 빈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외식 조리식품은 공정위 고시에도, 식약처 표시기준에도 포함되지 않아 한동안 규제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이에 정부는 2025년 12월부터 BHC·BBQ·교촌치킨 등 10대 치킨 프랜차이즈 1만 2,560개 가맹점에 조리 전 총중량을 메뉴판과 배달앱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2026년 6월 30일까지는 계도기간으로 운영되며, 이후 위반 시 시정명령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는 포장 식품의 고지 의무와 성격이 다르다. 포장 식품은 용량이 줄었을 때 700g에서 500g으로, 이전·이후를 함께 밝혀야 한다. 반면 치킨은 현재 중량만 표시하면 그만이다. 용량이 얼마나 줄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구조다.
현재 규제 체계는 제품 종류와 관할 부처에 따라 소비자 보호 수준이 제각각이다. 샴푸를 살 때와 과자를 살 때, 치킨을 시킬 때 적용되는 규제가 모두 다르다. 그러나 소비자는 자신이 사는 제품이 공정위 관할인지 식약처 관할인지 알 필요도 없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 마트 과자든 배달 치킨이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용량이 줄면 얼마나 줄었는지 알려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단순한 권리가 어떤 제품에는 있고, 어떤 제품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가격을 유지한 채 용량을 줄였다면, 얼마나 줄었는지 소비자는 명확히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제도는 소비자가 마트에서 과자를 사느냐, 배달 앱으로 음식을 주문하느냐에 따라 알 권리의 보호 수준을 다르게 만든다.
포장 식품에는 규제가 점차 촘촘해지고 있지만, 배달 음식과 외식 조리식품은 여전히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런 차이가 남아 있는 한 그것이 법적으로 허용된다고 해도 공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필요한 것은 가격 통제가 아니라 정보의 공정한 공개다. 그 공백을 메우는 일,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 페어플레이의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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