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이제 혁신을 발명하는 곳이 아니다. 과거 유산을 효율적으로 현금화하는 거대한 ‘금융 저장고’가 되었다”
FT와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이 과거 팀 쿡 체제에 대한 비판적 분석 기사에 등장한 문구다. 실제 최근 몇 년간 애플이 보여준 모습은 ‘세상을 바꿀 무언가’보다는 ‘가진 것을 지키는 법’에 매몰된 인상을 준다. 외신은 ‘Cash-rich vault(현금이 가득 찬 금고)’ 또는 “재무적 요새(Financial fortres)"라는 표현으로 애플의 관료화를 지적했다.
애플이 창립 50주년을 맞은 올해 팀 쿡이 물러난다. 애플은 오는 9월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고 20일(현지시간) 밝혔다. 후임은 하드웨어 수장 존 터너스가 지명됐다. 하지만 50년 애플의 영광이 한창일 때 나온 이번 인사는 역설적으로 더 이상 과거의 성공 방식만으로 다음 시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불안을 드러낸다.
쿡의 사임 발표 직후 애플 주가는 일시적으로 흔들렸으나, 곧 안정세를 찾았다. 시장은 쿡이 닦아놓은 현금창고 위에 터너스가 '새로운 폼팩터(AI 글라스 등)'로 혁신을 재점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쿡이 사임 후에도 이사회 의장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시장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트럼프 행정부 등과의 복잡한 대관 업무를 쿡이 계속 맡아준다면, 새 CEO 터너스는 제품 개발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쿡의 애플은 모험적인 혁신보다는 기존 제품의 ‘점진적 개선’에 치중하며 브랜드의 신비감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구글, 메타, MS에 주도권을 내준 점은 쿡의 최대 과오로 꼽힌다. ‘애플 인텔리전스’의 부진은 보안과 폐쇄성에 집착하느라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NYT는 “팀 쿡이 잡스가 만든 ‘종교’를 ‘공기업’으로 바꿔 놓았다. 혁신을 관리한 게 아니라 혁신을 없애고 대신 효율을 심었다”고 지적했다. 애플이 과거의 혁신을 뒤로하고 생태계에 포획된 충성 고객을 활용해 과도한 이익을 챙기는 '지대 추구(rent-seeking)'형 기업으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AI 시대의 애플은 어떻게 세상을 정의할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이번 인사는 공급망 관리와 극단적 경영 효율로 4조달러 회사를 키운 CEO의 퇴장인 동시에, 그 방식만으로는 다음 10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애플의 자백처럼 보인다. 50년 동안 세상을 바꾼 애플이 AI 시대에 새로운 챕터를 열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답은 아직 “예”가 아니다.
한국 기업에도 팀 쿡 체제의 종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주가 관리와 주주가치 환원이 급해질수록 더 경계해야 할 것은 미래 혁신의 잠식이다. 단기 주주 친화 전략에 매달리다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를 놓치면 주가를 떠받칠 차세대 성장의 서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시장의 압박이 커질수록 주주환원은 규율 있게 하고 혁신 투자는 더 공격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한국 기업이 지금 지켜야 할 것은 3년 뒤에도 시장이 프리미엄을 줄 수 있는 기술과 제품의 파이프라인이다. 쿡의 경영 성적표에 대해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관리자’라는 찬사와 ‘혁신의 불꽃을 꺼뜨린 관료주의자'라는 비판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심기 수석논설위원 sgle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