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독화살...법과 금융을 지배하는 "인과관계" [양동운의 금융 관찰기]

입력 2026-04-25 00:00  

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단 한 문장만 남길 수 있다면?

세상의 지식이 곧 사라질 상황에서 단 한 문장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남기겠습니까?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물질은 원자(atoms)로 이루어져 있다"는 문장을 택했습니다. 이것만 남기면 현대 과학지식까지 되살릴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필자도 "문명(지식체계)의 발전은 인과관계의 이해도에 달려 있다"는 문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인과관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자연과 우주, 그 일부인 인류(나)의 삶과 정체성을 올바로 깨닫고 참(실재)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발전한 인류 문명


400만 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채집·수렵의 삶을 살던 인류는 1만년 전 '신석기혁명(농업혁명)'을 맞이했습니다. 자연환경(원인)과 식물의 생(결과)의 관계를 깨닫고 경작에 성공한 것입니다.

큰 강 유역에서는 자연의 인과법칙이 야기하는 재앙에 대응해 천문·측량·관개 기술을 개발하고 문명이 도약했습니다. 전기·정보혁명을 거친 오늘날 세계는 과학기술의 산물로 가득합니다. 과학기술은 자연에서 발견한 인과관계에 기초합니다.

그렇게 보면, 문명(사회)의 진보는 인과 지식체계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런데 인류는 6만 년 전에 이미 높은 수준의 인과 지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독화살입니다.

독초의 존재, 독의 인과적 효과를 깨닫고, 화살의 속도와 낙하운동을 고려해 사냥감을 겨냥한 활쏘기의 계산을 해낸 것입니다.
문명의 건전한 발전과 상호작용으로 유지되는 사회 질서


모든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지식·가치·신념과 생활양식, 즉 '문화'가 있습니다. 한 사회가 이룩한 물질·기술적 발전의 성과를 '문명'이라 부르는데, 문명의 변화로 생활양식도 변화합니다.

구성원들이 고유한 행동양식을 반복해 따름으로써 그 사회의 틀이 유지되는데, 신념 체계가 깨지면 사회는 와해됩니다. 일례로, 신념 체계의 변화로 시민혁명이 일어났고 구시대의 계급 질서는 무너졌습니다.

이를 대체할 강력한 질서유지(막스 베버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의 발전을 위한 '형식적 합리성'의 제고)의 기능이 요청되었고, 시대의 이념(즉, 민주주의, 법치주의, 권력분립, 책임주의)을 반영한 실정법 체계가 전면에 부각되었습니다.

법은 근대사회의 정치, 행정, 경제, 교육 등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근대법은 근대 사회질서의 유지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근대 법이념과 체계에 반영된 '인과관계' 담론


법학과 법규범은 문화의 일부로서 문명(사회)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이 사회의 질서유지 기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의 문명에 상응하는 인과 지식을 수용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 근대법에는 인과의 원리(책임주의, 인과관계 요건주의)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다만 '인과적 필요조건들의 총합'을 찾는 자연과학적 인과법칙을 법적 판단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재물파손과 같은 법익 훼손의 원인으로 지목된 행위에 대한 책임을 가리는 법규범의 실천적 목적이 자연과학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조선시대에는 3족을 멸하는 벌이 있었습니다. 역적을 낳지 않았으면 반역도 없었을 것이므로, 그 부모도 반역을 초래한 '조건'에 해당한다는 논리이겠지요. 이같이 무한 소급이 가능한 조건 논리로 행위책임을 지우는 방식도 근대법의 원리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개별 소송에서 인과의 규명이 승패를 가리는 핵심 요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담배 소송, 가습기 살균제 사건 등이 그 예입니다.

과연 피고인의 행위로 인해 살상, 파손 등의 결과가 발생했는지, 인과의 경로(결과)를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고의로 실행한 것인지 등 사건의 구체적 맥락 아래에서 인과의 과정이 어떠했는지에 따라 형사책임의 성립, 정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복잡다단한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 금융 상품
현대의 발전된 금융은 화폐제도, 금융결제 시스템, 예금보험제도와 같은 특별장치 등이 전제되어야 가능합니다. 이들과 긴밀히 연계된 효율적 금융시장에서 금융상품은 설계· 유통됩니다.

금융거래를 통해 자금은 실물 부문으로 융통되는데, 그 실물이 역외에 있는 경우 두 국가 이상의 상이한 금융시스템과 금융 법제의 고려 및 조정도 필요합니다.



금융상품 자체도 각종 금융기법이 적용된 인위적 구성물로, 자연의 인과법칙과는 다른 금융 상식, 논리칙을 따르되 '사적 자치의 원리'로 구성됩니다.

실례로, 역외 금융상품들을 엮어 상위 금융상품을 만들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한 DLS(파생결합증권)를 만들며, 이 DLS에 투자할 금전신탁계약상품이 기획·설계되어 판매되는 식입니다.

시장에서 팔릴 만하다면, 상품들을 결합하거나 그에 기초해 또 다른 상품들을 '자유'롭게 만들어 내고 복제합니다.
금융거래·분쟁의 미묘한 인과관계
위와 같은 복잡한 금융 시스템에서 나타나는 금융현상은 자연현상과 본질적 다릅니다. 단적으로, 금융상품 투자를 위해 체결되는 금융계약을 지배하는 법적 원리는 '사적 자치(자유)'입니다.

'자유'는 '필연'의 자연법칙인 인과법칙과 대립합니다. 결국 금융 법제, 금융 법리, 금융 시스템, 금융시장, 금융상품의 내적 논리, 그리고 이에 연계된 실물 부문과 그 결합의 논리와 경로를 이해하지 못하면 금융 사건은 삼천포로 빠질 수 있습니다.

복잡미묘한 금융현상 앞에서 잠시 금융이란 무엇이고, 왜 금융이 실물을 압도하고 경제를 주도할 정도가 되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엉뚱하게도 6만 년 전에 만들어진 독화살이 떠오릅니다. 당시 인류는 가슴 벅찼을 것입니다. 이 간단하지만 강력한 도구로 그 귀한 단백질(자원)을 효율적으로 얻어 낼 수 있다니!

어쩌면 현대의 인류 역시 이익(자원)을 겨냥해 사냥할 강력한 도구로서 금융상품을 가슴 벅차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는 그 욕망을 겨냥해 사냥할 강력한 도구로서 금융상품을 기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독화살은 본래 자원을 얻는 유용한 도구였으나 촉의 방향에 따라 인류에게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인과 지식으로 발명된 독화살(실재)의 현대판 꿈이 금융상품(가상)이라는 봄날의 몽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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