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쥐 잡고, 자기 팔에 주사 꽂고…한타바이러스 정복한 이호왕 박사

입력 2026-05-09 20:01   수정 2026-05-09 20:02



대서양을 항해하던 네덜란드 선적 크루즈선 'MV 혼디우스'에서 승객 3명이 사망한 한타바이러스(Hantavirus) 집단 발병 사건을 계기로, 바이러스의 정체를 밝히고 백신까지 개발한 고 이호왕 박사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호왕 박사는 1928년 함경남도 신흥 출신으로 195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59년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특히 1950년대 '유행성 출혈열'로 불리던 정체불명 괴질의 실체를 규명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한타바이러스는 한국전쟁과 1·2차 세계대전 당시 수천 명의 군인이 고열과 신부전, 출혈 증상에 시달리게 했으며 심할 경우 목숨을 앗아갔다. 쥐를 통해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이 박사는 경기도 동두천 일대에서 들쥐 수천 마리를 직접 채집하는 집념을 보였다.

그 결과 1976년 한국형 출혈열(출혈성 신증후군)의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 '한타'라는 명칭은 한탄강 유역에서 채집한 등줄쥐의 폐 조직에서 병원체 분리에 성공한 것에 착안해 발견 지역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이다.



이 박사는 1988년 말 세계 최초로 한타바이러스 예방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백신 효과 검증을 위해 인간 대상의 임상시험이 필요해지자, 이 박사는 연구진 7명과 함께 본인의 팔에 직접 주사기를 꽂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90년 세계 최초의 유행성 출혈열 예방 백신인 '한타박스'가 출시됐다.

한 명의 과학자가 새로운 병원체를 발견하고 예방 백신까지 모두 개발한 사례는 의학사에서 파스퇴르 이후 유례를 찾기 힘든 독보적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이 박사는 노벨 의학상 후보로도 여러 차례 거론되었다.

바이러스 연구와 더불어 후진 양성에도 헌신했다. 1973년부터 1994년까지 고려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며 학장,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WHO 유행성 출혈열 연구협력센터 소장, 한탄생명과학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또한 한국인 최초의 미국학술원 외국회원, 자연과학자 최초의 일본학사원 명예회원이라는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연구 과정 중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400배의 연봉을 제안받으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국내 연구를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개발한 백신은 현재까지도 국내 군인과 농업 종사자들에게 접종되고 있다.

이 박사의 연구실이 있던 동두천시에서는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에 이호왕기념관을 운영 중이다. 현재 그의 제자들은 "과학자에게 우연이란 성실한 사람, 노력하는 자에게만 오는 선물"이라는 스승의 철학을 이어받아, 개발된 지 35년이 넘은 백신을 개량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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