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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평생 일군 회사를 의미 있게 넘기는 방법은 무엇인가?”
연세 지긋한 기업가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공성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다. 회사를 키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일이야 더 어려운 과제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문제는 명확하다. 우리나라에서 상속세 부담은 크고, 달라진 가족 구조 속에서 이해관계는 복잡해졌고, 자신이 추구했던 기업의 성장과 가치가 다음 세대에도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를 통해 승계하는 기업들: 발렌베리와 허쉬
유럽과 미국의 장수기업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대표적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ABB·에릭슨·아스트라제네카 등 유럽의 유명 기업들을 지배하고 있는 스웨덴의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이다.
이들은 기업을 직접 자녀에게 나누어 주는 대신, 공익재단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재단이 투자회사를 통해 주요 기업의 지분을 장기 보유하고,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담당하고, 가문은 이사회와 장기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기업에서 발생한 수익은 다시 재단을 통해 연구·교육 등 사회적 목적에 활용된다.
이 구조는 첫째로 기업 지분이 상속 과정에서 분산되지 않는다. 둘째로 기업이 단순한 사적 재산에 머무르지 않고 공익과 결합된 장기적 운영 구조를 갖게 된다. 즉, 기업은 특정 개인에게 귀속된 자산이라기보다 세대를 넘어 유지되는 구조적 자산으로 작동하게 된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미국의 허쉬(Hershey) 역시 같은 방향의 선택을 했다. 자녀가 없던 창업자 밀턴 허쉬는 지분을 공익신탁인 허쉬 트러스트에 귀속시켰고, 그 신탁이 지금까지도 기업을 지배하고 있다. 허쉬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맡는다.
그러나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은 배당의 형태로 공익신탁에 이전돼 공익신탁이 취약계층 교육사업을 영위하는 원천으로 사용된다. 창업자가 초콜릿 공장을 건설한 펜실베니아주의 한 지역은 창업자의 이름을 딴 허쉬라는 기업도시가 됐다. 기업과 공익과 도시가 결합된 하나의 사회 모델로 기능한다.
발렌베리와 허쉬는 방식은 다르지만 핵심 원리는 동일하다. 지분을 가족들에게 직접 나누지 않고, 대신 창업자의 가치를 반영한 지배구조를 만들어 그 안에서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 방식은 특정인에게 지분만 물려주는 상속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목할 점은 해당 국가들이 이러한 기업가의 의사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미국에선 가업승계와 자산 이전 설계에 다양한 신탁 구조가 활용된다. 공익잔여신탁(CRT)은 일정 기간 동안 창업자 또는 가족이 수익을 얻은 뒤 최종적으로 자산을 공익에 귀속시키는 방식이다. 공익선행신탁(CLT)은 그와 반대로 일정 기간 공익이 먼저 혜택을 받은 뒤 잔여 재산이 가족에게 이전되는 구조다.
여기에 다세대에 걸쳐 자산을 유지하는 다이너스티 트러스트와 같은 장기 신탁까지 결합된다. 이를 통해 기업과 자산, 그리고 공익을 동시에 설계하는 다양한 모델이 발전해 왔다. 이러한 제도적 토대가 기업?공익 결합형 지배구조를 뒷받침하는 배경이 된다.
왜 한국에서는 어려운가

문제는 이러한 방식이 한국에서는 아직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법제와 세제의 구조적 제약이다. 첫째, 신탁을 활용한 경영권 설계에는 제약이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신탁회사의 의결권 행사가 제한되는 등 지분은 맡겼지만 경영권까지 안정적으로 설계하기 어렵다.
둘째, 유류분 제도와의 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 신탁을 활용하더라도 최종적으로 상속인들 사이의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셋째, 기존 세제 역시 재산 이전을 중심으로 한 상속·증여에 맞춰져 있고, 그 결과 기업을 하나의 구조 안에 담아 두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지원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의 창업주들은 공익과 연결된 기업의 승계를 설계하기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국과 같은 지배구조를 구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만 가능한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결합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
현행「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법인에 주식을 출연하는 경우,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그 가액은 상속·증여세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반적으로는 발행주식 총수의 10% 범위 내에서 세 부담이 줄어들고,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을 갖추면 그 한도가 20%까지 확대된다. 이 제도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과세 대상 자체를 줄이는 효과다. 창업주가 보유한 지분 일부를 공익법인에 이전하면 애초에 과세 대상으로 잡히는 재산 규모를 축소할 수 있다. 둘째, 지배구조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공익법인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을 설정하면, 해당 지분은 존재하지만 경영권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창업주나 후계자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유지하면서도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설계는 단순히 세금을 줄이기 위한 기술적 수단을 넘어선다. 지분 일부가 공익 목적과 연결되는 순간, 기업은 사적 재산을 넘어 사회적 자산으로서의 성격을 일부 갖게 된다. 물론 이 방식만으로 발렌베리나 허쉬와 같은 구조를 구현하기는 어렵다.
이제는 제도의 문제도 고민할 시점

해외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기업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개인의 재산에 대한 상속의 관점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제도와 지배구조 안에 편입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신탁을 중심으로 상속·증여 신고, 사후관리, 지배구조 정비, 가족 간 합의 절차까지 내장하는 방식으로 신탁 제도가 보다 정비된다면, 가업승계는 단순한 상속을 넘어 구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2022년 이러한 방향의 제도 혁신을 제시한 바 있으나, 후속 입법이 지연되면서 여전히 실무 적용에는 한계가 남아 있다.
한편 최근 발의된 이른바 ‘한국형 레거시 10’ 제도는 공익 출연과 가업승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공익 출연에 대해 상속세를 직접 공제하는 구조로 세수 감소보다 더 큰 규모의 공익재원이 확대될 수 있다는 분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의 추산에 따르면 한국형 레거시 10 도입 시 상속세 세수가 연간 약 1253억원 내지 6263억 원 감소하는 반면, 유산기부액은 연간 약 2900억 원 내지 1조 4500억 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수 감소분의 약 2.3배 규모의 공익재원 확충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고령화와 재정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가업승계를 단순한 재산의 이전이라는 좁은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공익과 결합된 구조로 설계하는 방향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노후라는 인생2막을 더욱 가치있게 영위하면서 효율적으로 가업을 승계하고자 하는 기업가들, 그리고 신탁제도 주체로 활동할 전문가들 모두 한국형 공익과 신탁의 결합구조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검토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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