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 대대적인 양적 완화정책까지 시행할 것으로 보여 신뢰성을 시험받게 됐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FT는 ECB가 위기 대응 과정에서 담보 규정 완화와 취약국 국채 매입으로 예전 기조를 크게 거스른 데 이어, 유로존(유로화 사용 16개국) 내 채무국의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전면적인 양적 완화정책을 조만간 시행하리라 전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ECB가 "시장을 오도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양적 완화정책 시행 여부는 앞으로 ECB의 통화정책이 시장에 먹힐 수 있을지를 좌우하는 마지막 보루로 보고 있다.
제프리스 앤드 컴퍼니의 수석 유럽 재정 이코노미스트 데이비드 오언은 "ECB는 시대에 뒤떨어졌고 시장을 오도했다"며 "투자자가 중앙은행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중요한 일로, 지금 같은 상황은 앞으로도 ECB를 힘들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우려는 ECB가 앞서 10일 시작한 유로존 취약국 국채 매입 조치와 관련해서도 나오고 있다.
ECB는 2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와 포르투갈, 스페인 정부 단기 채권을 사들이면서 단기 증권 발행이나 기타 자산 매각 등 조치를 함께 진행해 유동성을 흡수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이번 국채 매입 조치가 양적 완화와 기술적으로 무관하다는 뜻이지만, ECB가 향후 6개월간 사들여야 할 국채의 규모가 무려 3천억~6천억유로 수준으로 전망되는 터라 결국 양적 완화로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CB는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양적 완화 반대 기조를 그간 유지해 왔지만, 투자자들은 유로존에서 이뤄지는 대대적인 긴축 정책이 앞으로 수년간 성장률을 둔화시킬 것으로 보는 만큼 인플레이션 우려는 오히려 덜한 상황이다.
그보다는 ECB가 매입하는 그리스 국채가 정크본드 수준이고, 유로화 가치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라는 점에서 ECB가 과연 양적 완화조치 없이도 국채 매입 과정에서 손해를 줄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FT는 유럽 재정위기의 심각성을 볼 때 ECB의 이같은 역행 조치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음은 인정하지만, 7천500억유로 규모의 유로존 안정기금 조성에 앞서 ECB가 보인솔직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나온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