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재정위기…유럽통합 붕괴로 이어지나?

입력 2011-11-28 10:47  

20세기초 옛 유럽의 영광을 되찾고자 자유사상가에 의해 구상된 ‘하나의 유럽’이라는 원대한 꿈이 이탈리아 사태를 계기로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2011년부터 스페인, 이탈리아 심지어는 독일과 함께 최후 보루역할을 담당해온 프랑스까지 번지고 있어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와 달리 이탈리아는 유로랜드 17개 회원국 가운데 3위이자 세계 8위의 경제대국이다. 또 3년전 리먼 사태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방선진 7개국(G7)의 일원으로 글로벌스탠더드 제정과 이행을 주도해 왔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사태를 계기로 유럽위기가 크게 두 가지, 즉 위기의 성격과 범위 면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는 것이 국제금융시장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나는 유럽위기가 특정 회원국의 재정문제에서 비롯됐으나 이제는 은행 혹은 금융위기로 악화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유로랜드 혹은 유럽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위기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금융의 본래 기능을 감안할 때 이번 사태가 조속한 시일 안에 해결되지 않으면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만큼 종전과 달리 이탈리아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위기극복 주체나 해결방안에 있어서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위기극복 주체가 교체되는 것으로 2011년 10월까지는 개별 회원국의 재정위기였던 만큼 통합에 따른 이점이 많았던 프랑스와 독일이 위기극복의 책임을 맡아 왔다.

하지만 유럽위기가 은행 혹은 금융위기로 비화된 상황에서는 주무부서인 유럽중앙은행(ECB)이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마리오 무라기 신임 총재가 취임 직후 기준금리를 전격적으로 인하하고 아직까지 제한적이긴 하지만 미국 중앙은행(Fed)처럼 국채매입을 통해 양적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조치로 풀이된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위기의 범위가 글로벌 성격을 띠는 만큼 국제금융시장 안정의 책임을 맡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크리스틴 라가르도 IMF 총재는 브릭스(BRICs) 국가 등을 대상으로 재원확충에 나서고 있다. 내년 IMF 재원도 유럽위기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방향으로 변경했다.

이탈리아 사태가 발생한 직후 ECB와 IMF가 직접 나선 것은 대부분 회원국에서 위기 가능성이 높게 나오기 때문이다. 특정국가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진단지표가 자주 활용된다. 이 기준대로 라면 단기투기성 자금의 이탈 여부는 △자산인플레 정도 △유입된 외국자금의 건전도 등으로 평가된다.

중장기 위기진단지표는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 △국내저축능력이다. 이중에서 단기 위기진단지표가 악화될 경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도 경험한 것처럼 대상국의 해외자금 조달능력에 곧바로 문제가 생긴다. 이 때문에 민간부문의 저축률과 재정수지로 표현되는 국내저축능력이 더 중시된다.

골드스타안의 위기진단지표를 적용해 유로랜드 17개 회원국들의 위기 가능성을 진단해 본다면 독일과 프랑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회원국들에서 위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유럽재정위기 이후 경상수지가 악화되는 것이 유로랜드 회원국들의 위기대응능력을 급속히 악화시키는 주요인으로 나타났다.

앞으로 ECB, IMF가 유럽위기 극복에 나선다면 다양한 해결책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이탈리아 사태만 하더라도 기존의 긴축안과 구제금융안을 보다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뿐만 아니라 ECB가 위기국의 국채를 매입하거나 지급보증 방안과 IMF도 자본부족국에게 지급하는 예비 신용공여도 가능해 진다.

네 가지 해결책의 도입 가능성을 살펴보면 이탈리아가 약속한 재정긴축안을 과감하게 집행해 위기해결을 시도해 보는 방안이다. 그리스 등 위기가 발생하면 부채감축과 경기회복 등 자력으로 구제에 성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다는 원론적인 방안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처럼 당장 엄청난 부채를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국채가격이 떨어질 경우 현실성이 결여될 뿐만 아니라 긴축강화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도 예상된다.

그 다음으로 국제통화기금(IMF)가 유동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에 통상적으로 취하는 예비적 신용공여다. 2011년 11월 프랑스 칸에서 열렸던 G20정상회담에서 IMF는 이탈리아에 저금리 대출을 제시했고 유럽안정기금에도 이 기능을 부여했다. 조건부로 신용공여 라인을 만들면 이탈리아가 한숨 돌릴 여지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에서다. 충분한 규모가 아니면 투자자 불안을 더 촉발시킬 가능성도 높은 방안이다.

이탈리아가 재정긴축안 집행에 차질을 빚게 되거나 자구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경우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을 받는 것도 쉽게 접근 가능한 방안이다. 이탈리아가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면 신용을 회복할 때까지 3년 정도 채권시장에서 퇴출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관건은 구제금융 규모다. 유럽안정기금이 추가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한 이탈리아의 부실채무 규모가 워낙 커 구제금융이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공감을 얻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밖에 유럽중앙은행(ECB)이 이탈리아 부채에 대해 무제한 지급보증을 하는 방안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일부 유럽국가들이 주장하는 방안이다. ECB가 이탈리아에서 발행되는 모든 국채를 매입하거나 이탈리아에 저리대출을 시행하는 등 위기대응 기능을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유럽안정기금과 IMF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제시되고 있으나 독일이 EU 근간이 되는 리스본 조약에 위배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미 유럽위기가 재정위기에서 금융위기로 악화되고 있고, 갈수록 글로벌 성격을 띠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방안보다는 네 가지 방안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혼합해 대처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2012년 유럽위기와 관련된 대책은 이 네 가지 방안이 중심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발생국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바로 정치적 포퓰리즘의 상징이었던 지도자들이 속속 물러나는 대신 ECB, IMF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이 차기 지도자로 부각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이 지도자가 될 경우 ECB, IMF가 제시한 해결책을 신속하게 수용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스 사태 이후 계속해서 문제가 돼온 도덕적 해이와 이에 따른 정책실기(失機)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리스는 임시 연립정부를 이끌 총리로 루카스 파파데모스 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가 선출했다. 파파데모스 신임 총리는 대표적인 유로존 지지자로 그리스 재정위기를 풀어나갈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때문에 1300억유로 규모의 2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긴축 재정안을 통과시켜야 할 임무를 맡게 되나 전임자와 달리 국민동의를 쉽게 얻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탈리아도 차기 총리로 마리오 몬티 밀라노 보코니 대학 총장이 지명됐다. 몬티는 전임자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냉철하고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돼 왔다. 주요 평가기관과 외신들은 ‘전면적인 개혁으로 이탈리아를 위기에서 구해낼 것’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다.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는 ‘신뢰’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국민소득대비 200%가 넘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부채를 갖고 있는 일본이 ‘국가부도(default)’ 우려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95%의 국채를 갖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ECB, IMF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위기발생국의 지도자가 교체된다면 막혔던 ‘신용선(credit line)`이 재개되면서 악화만 되던 유럽위기가 극복단계로 전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 들어 새로운 움직임이 감지된다 하더라도 유럽위기가 완전히 해결되기까지 쉽지 않은 일이다.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 안정차원에서 자본편중국인 중국을 비롯한 BRICs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위기극복에 모두가 동참하는 ’프로 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도 유로화 가치설정, 재정통합 결여 등 통합이 갖고 있는 내부적인 문제를 2012년에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로 회원국들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단일환율 적용으로 갈수록 심화돼 왔던 역내 회원국 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과제다. 이론상 변동환율제를 채택하면 대외불균형이 발생했을 때 자국 통화가치가 하락함으로써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유로 랜드는 환율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회원국의 대외불균형이 가격변수의 경고를 받을 수 없어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original sin)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 통화정책과 개별 회원국별 재정정책 간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어 정책운용의 조화(policy mix)가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EMU는 단일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단일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재정통합은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재정통합이 어려운 EMU의 입장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핵심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한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수위가 미온적 조치에 그친 관용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위반에 대한 최종 벌칙은 벌금부과이며 그 마저도 실행에 옮긴 사례가 전무하다. 이처럼 제재조치가 강력하지 못한 것은 ?제재를 결의하는 주체가 자신들도 언젠가는 제재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에 다른 회원국을 강하게 제재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 회원국 국가부도 등 EMU 체제를 동요시킬만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이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대책(contingency plan)을 마련하는 일도 중요하다. 유럽재정위기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비상대책 부재는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EMU 체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이다.

이밖에 EU 회원국 확대의 실익 논쟁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강력한 유럽’을 만든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회원국을 확대하고 경제체질이 허약한 국가들도 유로지역에 포함시키는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2001년 EMU 가입당시 그리스는 조세기반이 되지 않는 불법고용, 매춘 등 지하경제를 GDP에 포함시킨 데다 재정적자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한 것이 유럽재정위기를 낳게 한 주범이다.

근본적인 과제를 풀어가는 모습에 따라 향후 유럽재정위기는 ①현 체제 유지(muddling through) ②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bonds of solidarity) ③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the collapse) ④유럽통합 질서회복(resurgence) 등의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현 체제 유지`는 유럽통합에 대한 회의론 확산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없이 중장기적으로 위기관리체제를 강화하면서 미비점을 보완하는 선에 그치는 시나리오다. `유럽통합 및 유로화 강화`는 유럽재정위기로 붕괴조짐을 보이는 유럽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유로본드(E-bond) 도입, 재정동맹 보완 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나리오다.

반면 `유럽통합과 유로화 동시 붕괴`는 유럽재정위기 회원국들이 독자통화 도입을 위해 혹은 국내외 정치적 압력에 의해 유로통합을 탈퇴하고 잇달아 경제규모가 큰 회원국이 탈퇴하는 시나리오다. 가장 현실성이 높은 ‘질서회복`는 특별한 조치없이 주변국의 경쟁력 회복과 재정개선 등으로 역내 회원국간 불균형이 상당부분 해소되면서 유럽통합이 재정위기 이전 상황을 회복하는 시나리오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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