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의 집 딜쿠샤에 얽힌 영화같은 이야기를 아십니까?

입력 2012-08-29 17:35   수정 2012-08-2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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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의 집 딜쿠샤에 얽힌 영화같은 이야기를 아십니까?



종로구 행촌동 1-88번지. 독립문에서 사직터널 위로 올라가는 언덕 위, 작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사이로 베일에 싸인 집 딜쿠샤가 보인다. 다른 건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외관을 지닌 이 오래된 서양식 가옥은 90여년의 세월을 이겨낸 근대건축물로 이 일대에 세워진 첫 번째 주택이다. 지금 딜쿠샤에는 15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다.

딜쿠샤가 지어진 것은 1923년. 그 때만 해도 인왕산 일대는 인가는 없고 나무들과 덤불숲만이 무성하던 산야 지대였다. 인왕산 언덕 위에 홀로 서 있는 1923년 당시의 딜쿠샤와 크고 작은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는 현재의 딜쿠샤를 비교해보면 90년 동안 진행된 서울의 변화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딜쿠샤의 옆으로는 조선시대 권율장군이 심었다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콘크리트 벽에 갇힌 채 딜쿠샤를 내려다보고 있다. 딜쿠샤를 처음 지은 사람은 미국인 사업가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알버트 테일러. 금광기술자였던 아버지 조지 테일러를 따라 한국에 왔던 알버트는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며 일제 치하 한국의 독립운동에 큰 관심을 두고 기자로도 활동했다.

▷ 딜쿠샤의 첫 주인, 알버트 테일러



알버트 테일러는 광산개발자인 아버지를 따라 한국에 왔다가 뿌리를 내렸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목격하고 일제시대 동안 외신기자로 활동하며 한국의 독립운동을 취재해서 서방에 알렸다. 자신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태어난 날, 갓 태어난 아기와 아내를 만나기 위해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했다가 아들의 요람 밑에서 알버트는 한국의 독립선언문을 발견한다. 그 날이 바로 1919년 2월 2일. 기미년의 3.1운동이 일어나기 바로 하루 전이다. 알버트는 발견한 독립선언서를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빼돌려 서방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수원 제암리 사건을 비롯해 한국의 독립운동과 일제의 숱한 만행을 서방 언론에 알렸다.

한국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여겼던 그는 서울 곳곳을 다니며 서울의 사진을 찍었는데, 서울을 둘러싼 성곽을 걷다가 산 속에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서울 서쪽 성곽 바깥쪽에 자리하고 있던 권율장군 은행나무다. 그리고 아내의 요청에 따라서 그곳에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인왕산 자락의 첫 번째 집. 은행나무 마을 행촌동 1번지의 딜쿠샤다. 알버트는 딜쿠샤에 살던 당시 서울에 거주하던 외국인 선교사들과 사업가들을 초대해 모임을 가지고 정세를 논의했다. 알버트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에 의해 감옥에 갇혔고 수감생활 끝에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으로부터 강제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이후 미국에서 살게 된 알버트 테일러는 태평양을 바라보며 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한국이 독립을 하자 알버트 테일러는 한국으로 돌아오려 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었고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는 죽기 전에 아내 메리에게 한국에 그의 유골을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아내 메리 테일러는 알버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유골을 한국으로 가지고 와서 한국의 양화진 묘지에 묻었다.

▷ 딜쿠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소년, 브루스 테일러



1919년, 한국의 독립선언서 위에서 그의 생애 첫날을 맞은 알버트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는 딜쿠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가 소년 시절, 영국과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을 때도 어머니인 메리 테일러는 딜쿠샤가 그의 집이라며 늘 이곳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1941년 부모님이 한국에서 추방당한 후 브루스도 딜쿠샤로 돌아오지 못했다. 현재 미국 멘도시노에 살고 있으며 지난해 <은행나무 옆 딜쿠샤>라는 책을 썼다. 책 속에서 그는 딜쿠샤에서의 어린 시절과 일제시대의 한국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브루스 테일러는 2006년 한국을 방문해서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양화진묘지와 딜쿠샤를 둘러보았다. 그 때서야 비로소 베일에 싸여 있던 딜쿠샤의 실체가 밝혀졌다. 그 전까지 딜쿠샤는 대한매일신보 사옥이다, 선교사의 집이다, 등의 추측만 난무했다. 브루스 테일러는 아버지가 찍은 옛 서울 사진을 서울시에 기증하고 당시 시장이었던 이명박 시장으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 딜쿠샤와 더불어 살아온 한국인들



테일러 가족이 떠난 이후, 딜쿠샤는 해방과 한국전쟁을 지내며 가난한 피난민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현재 딜쿠샤에서 가장 오래 거주한 주민은 40년이 훨씬 넘었으며 60년대에 딜쿠샤에 살고 있던 한 국회의원 가족으로부터 딜쿠샤의 2층에 자리한 알버트의 서재를 구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구입한 딜쿠샤는 이미 국회의원의 부정축재로 인해 국가에 몰수된 재산이었다. 현재 딜쿠샤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렇게 앞에 살던 세대로부터 거주권을 구입해 20년, 30년씩 이곳에서 살아왔다. 오래된 주민 몇몇은 대부분 이곳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출가시킨 후에 조용한 노년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들은 언덕 위에 딜쿠샤 하나 밖에 없었던 60년대부터 딜쿠샤 주변으로 건물들이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해 지금의 빌라촌이 되기까지의 행촌동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봐 왔다. 딜쿠샤를 둘러싼 이러한 드라마틱한 서울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는 현재 방송콘텐츠진흥재단(www.bcpf.or.kr)과 현대홈쇼핑의 지원을 받아 바심픽쳐스에서 다큐멘터리로 제작중이다.

▷ 근대문화유산 딜쿠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딜쿠샤를 둘러싼 미래는 밝지만은 않다. 현재 살고 있는 주민들과 한국자산관리공사·서울시 등 관계자들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딜쿠샤의 소유주로 알려진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이들 주민이 국가재산을 무단 점유하고 있다면서 수백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동시에 별다른 이주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주민들에게 딜쿠샤에서 나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자산관리공사 측은 “딜쿠샤는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는 국유일반재산으로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소유주라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현행 국유재산법은 국유지 거주민들에 대한 이주대책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난한 주민들은 한꺼번에 밀어닥친 벌금 폭탄와 법원 출두명령서에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70대 중반인 한 주민은 3, 4년만 딜쿠샤에서 더 살고 세상을 떠났으면 좋겠다고 토로하는가 하면, 어떤 주민은 평생을 보낸 이곳을 떠나기는 아쉽지만 그래도 떠나야 한다면 맨 몸으로 쫓아내지 말고 이주대책이라도 제대로 마련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한국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현재 종로구가 딜쿠샤의 보존·관리를 위해 딜쿠샤를 기획재정부에서 양여를 받아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주민들에게 별도의 거주지를 마련해 줄 수 있는지 등을 서울시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한국자산관리공사와 종로구는 딜쿠샤를 문화재 등록하지 못한 이유가 무단 점유한 주민들 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이들로 인해 중요한 문화유산이 방치되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주민들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그들의 소유라는 중요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지난 수십 년간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한국자산관리공사 관계자는 “딜쿠샤 건물분에 대해서는 2001년 2월 종로구로부터, 토지분에 대해서는 2005년 9월 경찰청으로부터 신규수임을 받았기 때문에 ‘지난 수십년간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신규수임을 받은 이후 무단점유자 파악, 변상금 부과 및 명도소송 진행 준비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주민들끼리 딜쿠샤를 수리하고 보수해 온 주민들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딜쿠샤를 수리하거나 보호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벌금을 물리거나 내보내려는 데에만 급급하다며, 정부의 대책에 불만과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특히 화재의 위험이 높다면서 안전을 문제 삼고 있는 정부나 관계기관이 정작 나서서 수리나 보수도 하지 않고 주민들에게 벌금만 안기고 있으니, 쪼들리는 살림에 벌금까지 한꺼번에 내야하는 주민들에게 딜쿠샤의 안전과 보수는 더 요원한 문제가 되어버리고 있다.



알버트가 세운 딜쿠샤의 초석에는 시편 127편 1절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그 내용은 ‘하느님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파수꾼이 깨어있어도 헛되다’이다. 오랫동안 서울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봐온 딜쿠샤. 힌디어로 ‘이상향’ ‘행복한 마음’을 뜻하는 이 붉은 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부와 시민들이 조금 더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함께 지켜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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