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꺄르르 이인의 러브 토크] 9화. 돈으로 살 수 있는 연애상대
진화심리학의 주장대로 인류의 조상은 예로부터 상대를 재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좋은 유전자’라는 건 말솜씨나 재빠른 몸짓, 유머나 올바른 마음가짐처럼 숫자로 객관화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건보다는 상대를 만나 겪으면서 ‘육감과 직관’에 따라야 했고, 그 결과 마음이 끌리면 연애 관계가 이어지곤 했습니다. 신분과 나이와 계급과 인종과 국적을 넘어서 연애하는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현대는 조건이 ‘계량화’됩니다. 상대가 어떤지, 우리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죠. 그 사람이 어디 살고, 어느 학교를 다녔으며, 연봉이 얼마인지, 키가 몇인지, 몸무게가 어떤지에 따라 매력지수가 정해집니다. 예전처럼 겪어보면서 끌리는 일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눈에 빤히 드러나는 조건의 힘은 어마어마해졌습니다. 소개팅은 눈 가리고 만난다는(blind date), 잘 모른 채 만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소개팅은 상대의 ‘몸값’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파악하고서 진행됩니다.
‘연애의 효율화’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서 널리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내남없이 누군가의 집안과 학벌, 재산과 외모, 사는 곳 따위를 따집니다. 성 선택은 인류사 내리 이어졌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성 선택의 객관화’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이제 느낌으로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류는 사라지고 있죠. 조건에 따른 성 선택은 마치 커피처럼 우리 일상을 파고들었습니다. 모두 더 나은 짝짓기를 위해 어려서부터 몸값 관리에 들어갑니다.
오늘날의 성 선택은 결혼정보회사가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의 상품들처럼 우리 이마에는 보이지 않는 바코드가 찍혀 있어서 그에 맞춰 짝짓기를 하게 되죠. 상대를 까다롭게 살피면서, 동시에 열심히 자기광고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연애 또한 광고의 기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상대의 욕구와 필요를 가늠하면서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한 상대가 자신을 욕구하도록 부채질해야 합니다. 상대 또한 나처럼 조건을 따질 게 뻔합니다. 이런 ‘연애의 시장화’는 큰 해일처럼 우리를 덮쳤습니다.
파스칼은『팡세』에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참된 선을 잃어버린 뒤엔 모든 것이 똑같이 선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예언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맞아떨어졌죠. 현대인은 옛날 사람들처럼 신이나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미신에서 해방된 건 좋은 일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리를 돈이 차지해 채찍을 휘두릅니다. 우리 모두는 돈을 위해서 삽니다.
성 선택을 받기 위해서도 이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성격이 개떡 같아도 지갑이 빵빵하고 통장에 찍힌 숫자가 어마어마하면 그 누구라도 성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에 따라 권력이 달라집니다. 돈이 나고 내가 돈입니다. 돈만 있다면 나는 슈퍼맨이 되고 원더우먼이 되어 원하는 만큼 짝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돈만 수북하게 쌓아놓고 있다면, 수많은 허물이나 모자람은 문제 가 아니게 됩니다. 빌리 와일더의 영화 <선셋대로>에는 한때 할리우드를 주름 잡았던, 지금은 한물간 늙은 여배우가 젊은 시나리오 작가를 돈으로 꼬드겨 더부살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곧 여자의 ‘아우라’가 되기에, 젊은 남자는 여자의 취향을 맞춰주며 그 곁에 머물죠.
이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옷의 상표와 직장, 연봉, 집안 에 따라 보는 눈빛이 바뀌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남자들이 차의 배기량과 차종에 자존심을 걸까요? 돈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액수일수록 짝짓기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연애에 젬병이고 좀 덜떨어졌다 하더라도 돈만 있다면 나는 ‘능력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자’들을 만나고자 애를 쓰지만, 사실 그러한 만남은 행복하지 않은 예가 많습니다. 짝을 고르는 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나기는커녕 한참 못 할 때가 숱합니다. 미국의 인류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가 한 말입니다.
진화심리학의 주장대로 인류의 조상은 예로부터 상대를 재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좋은 유전자’라는 건 말솜씨나 재빠른 몸짓, 유머나 올바른 마음가짐처럼 숫자로 객관화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건보다는 상대를 만나 겪으면서 ‘육감과 직관’에 따라야 했고, 그 결과 마음이 끌리면 연애 관계가 이어지곤 했습니다. 신분과 나이와 계급과 인종과 국적을 넘어서 연애하는 힘이 여기서 나옵니다.
그런데 현대는 조건이 ‘계량화’됩니다. 상대가 어떤지, 우리는 쉽사리 알아차릴 수 있죠. 그 사람이 어디 살고, 어느 학교를 다녔으며, 연봉이 얼마인지, 키가 몇인지, 몸무게가 어떤지에 따라 매력지수가 정해집니다. 예전처럼 겪어보면서 끌리는 일도 있긴 하지만, 오늘날 눈에 빤히 드러나는 조건의 힘은 어마어마해졌습니다. 소개팅은 눈 가리고 만난다는(blind date), 잘 모른 채 만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소개팅은 상대의 ‘몸값’이 어느 정도인지 미리 파악하고서 진행됩니다.
‘연애의 효율화’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서 널리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내남없이 누군가의 집안과 학벌, 재산과 외모, 사는 곳 따위를 따집니다. 성 선택은 인류사 내리 이어졌지만, 현대로 접어들면서 ‘성 선택의 객관화’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이제 느낌으로 만나 사랑하며 살아가는 인류는 사라지고 있죠. 조건에 따른 성 선택은 마치 커피처럼 우리 일상을 파고들었습니다. 모두 더 나은 짝짓기를 위해 어려서부터 몸값 관리에 들어갑니다.
오늘날의 성 선택은 결혼정보회사가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슈퍼마켓의 상품들처럼 우리 이마에는 보이지 않는 바코드가 찍혀 있어서 그에 맞춰 짝짓기를 하게 되죠. 상대를 까다롭게 살피면서, 동시에 열심히 자기광고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연애 또한 광고의 기술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상대의 욕구와 필요를 가늠하면서 그 기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한 상대가 자신을 욕구하도록 부채질해야 합니다. 상대 또한 나처럼 조건을 따질 게 뻔합니다. 이런 ‘연애의 시장화’는 큰 해일처럼 우리를 덮쳤습니다.
파스칼은『팡세』에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참된 선을 잃어버린 뒤엔 모든 것이 똑같이 선으로 보일 수 있다.” 그의 예언은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 맞아떨어졌죠. 현대인은 옛날 사람들처럼 신이나 천국을 믿지 않습니다. 미신에서 해방된 건 좋은 일이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 자리를 돈이 차지해 채찍을 휘두릅니다. 우리 모두는 돈을 위해서 삽니다.
성 선택을 받기 위해서도 이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성격이 개떡 같아도 지갑이 빵빵하고 통장에 찍힌 숫자가 어마어마하면 그 누구라도 성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지에 따라 권력이 달라집니다. 돈이 나고 내가 돈입니다. 돈만 있다면 나는 슈퍼맨이 되고 원더우먼이 되어 원하는 만큼 짝짓기를 할 수 있습니다.
돈만 수북하게 쌓아놓고 있다면, 수많은 허물이나 모자람은 문제 가 아니게 됩니다. 빌리 와일더의 영화 <선셋대로>에는 한때 할리우드를 주름 잡았던, 지금은 한물간 늙은 여배우가 젊은 시나리오 작가를 돈으로 꼬드겨 더부살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자의 어마어마한 재산이 곧 여자의 ‘아우라’가 되기에, 젊은 남자는 여자의 취향을 맞춰주며 그 곁에 머물죠.
이건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옷의 상표와 직장, 연봉, 집안 에 따라 보는 눈빛이 바뀌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남자들이 차의 배기량과 차종에 자존심을 걸까요? 돈이 ‘나’이기 때문입니다. 높은 액수일수록 짝짓기에 유리한 고지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연애에 젬병이고 좀 덜떨어졌다 하더라도 돈만 있다면 나는 ‘능력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자’들을 만나고자 애를 쓰지만, 사실 그러한 만남은 행복하지 않은 예가 많습니다. 짝을 고르는 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나기는커녕 한참 못 할 때가 숱합니다. 미국의 인류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가 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