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약세국면으로 전환되면 수출주도주 주가 폭락할까?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 폭등으로 대규모 환차손을 본 국내기업들은 다시는 되새겨 보고 싶지 않은 용어 중의 하나가 키코(kiko: knock-in, knock-out)다. 아직도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상처(trauma)가 지워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관련 소송이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다.
키코 만큼 구조가 복잡하고 않고 사태도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가 큰 것이 ‘엔화 대출 후폭풍’이다. 피해규모만 본다면 키코 사태보다 월등히 크고 2006년 이후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어 피해기간도 2년 이상 장기다. 일부 국내기업 외환담당자들은 엔화 대출 후폭풍을 오히려 ‘제2’가 아니라 ‘제1의 키코 사태’라 부른다.
2006년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730원까지 하락했고 일본경제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적을 내야 할 시중은행이나 자금난에 봉착했던 국내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엔화 대출이 급증했다. 이런 상황은 금융위기 이전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원·엔 환율이 올 10월말까지만 하더라도 1400원 이상 유지됐고 금융위기 직후에는 16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키코 사태까지 겹치면서 엔화 대출을 사용한 수많은 국내기업과 개인 병원들은 부도가 났고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외환역사상 1997년 외환위기, 키코 사태에 이어 3대 환위험 관리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엔화 대출 후폭풍’이 몰아닥친 가장 큰 요인은 금융위기 직후 ‘마진 콜(margin call)⑴’에 직면한 미국 금융사들의 ‘디레버리지(deleverage·자산회수)⑵’ 과정에서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다. 당초 예상치 못한 사태로 금융사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외부에서 긴급자금지원이 없으면 기존에 투자했던 자산을 처분해서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시장 상황은 위기 발생국보다 위기를 피해갈 것으로 보이고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가 디레버리지 대상국으로 적합하다. 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은 보유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초과공급이 발생한다. 이 시장에서 보유자산을 처분하면 그 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더 팔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과 같은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들은 팔려는 사람이 적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초과수요가 발생하거나 최소한 위기가 발생한 국가보다 수급사정이 좋다. 이 때문에 마진 콜을 당한 금융사들이 이 국가를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고 이들 국가들은 외국자금이 대거 이탈돼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는 현상을 맞는다.
실제로 금융위기 직후 주가 하락폭으로 본다면 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다우지수는 45%에 그친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65%, 중국 상하이지수는 무려 75%가 폭락했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달러당 85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던 원·달러 환율은 거꾸로 1600원까지 올라 ‘키코(KIKO) 사태’와 ‘엔화 대출 후폭풍’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엔화 대출 후폭풍’이 몰아닥치게 또 다른 요인은 원·달러 환율이 진정될 무렵에 유럽위기가 발생하자 엔화 가치가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걸리면서 급등했기 때문이다. UC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안전통화 저주란 미국, 유럽의 잇따른 위기로 안전 피난처(safe haven)로 엔화 수요가 증대되는 현상⑶을 말한다.
유럽위기가 발생한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엔화의 명목실효환율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주가 변동성 지수(VIX)와 포지티브 상관관계를 보인다. 특히 모기지 사태, 유럽위기 등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엔화 강세가 일본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설상가상으로 엔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됨에 따라 불확실성 확대시 안전자산 선호와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맞물리면서 엔화 강세가 증폭된다는 점이다. 그 메커니즘을 보면 ‘불확실성 증대→안전통화 선호→엔화 수요 증가→엔캐리 트레이드 청산(네거티브 트레이드)→엔화 수요 증가→엔화 초강세’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⑷된다.
올들어 일본경제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국면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 3중고를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정책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물가로 일정수준 이상 올리고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야 하는 ‘트릴레마(trillemma)⑸에 봉착하고 있다.
이제 미국 금융사들의 증거금 보전현상은 마무리됐다. 더욱이 출범초부부터 수출진흥책을 추진해온 오바마 정부는 연임에 성공한 이후에도 양적완화 등을 통해 달러 약세 유도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역별로는 한국 등 아시아 수출국을 대상으로 달러 약세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특정통화가 안전통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는 시장 리스크⑹, 유동성 리스크⑺, 신용 리스크⑻로 평가해 본다면 엔화의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⑼ 하지만 엔고 저주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던 개인금융자산이 줄어들고 무역수지가 대폭 적자로 돌아섬에 따라 안전피난처로 엔화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일본은행이 엔고 저지를 위해 최후의 방어벽을 치고 있다. 올들어 엔고 저지를 위한 자산매입 규모가 36조엔, 그 중에서 9월 이후 21조엔에 달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더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이 공식적으로 우려했던 일본의 위기설은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다음달 16일에는 총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의 국민지지도가 20% 밑으로 덜어진 점을 감안하면 경기부양에 더 적극적인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2∼3%로 올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아베 신조의 적극적인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시라카와 마아아키 일본은행 총재도 내년 4월말에는 임기가 끝난다.
국내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너무 오랫동안 엔화 강세 환경에 젖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로 돌아서면 ‘엔화 대출 후폭풍’은 줄어들겠지만 또 다른 환위험 관리에 실패해 ‘제3의 키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에 치러질 총선거에서 지금 예상대로 자민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엔화 약세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는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 폭등으로 대규모 환차손을 본 국내기업들은 다시는 되새겨 보고 싶지 않은 용어 중의 하나가 키코(kiko: knock-in, knock-out)다. 아직도 금융위기가 발생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깊은 상처(trauma)가 지워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관련 소송이 지루하게 지속되고 있다.
키코 만큼 구조가 복잡하고 않고 사태도 공식화되지 않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가 큰 것이 ‘엔화 대출 후폭풍’이다. 피해규모만 본다면 키코 사태보다 월등히 크고 2006년 이후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어 피해기간도 2년 이상 장기다. 일부 국내기업 외환담당자들은 엔화 대출 후폭풍을 오히려 ‘제2’가 아니라 ‘제1의 키코 사태’라 부른다.
2006년 당시 상황을 되돌아보면 원·엔 환율이 100엔당 730원까지 하락했고 일본경제도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실적을 내야 할 시중은행이나 자금난에 봉착했던 국내기업 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엔화 대출이 급증했다. 이런 상황은 금융위기 이전까지 지속됐다.
하지만 원·엔 환율이 올 10월말까지만 하더라도 1400원 이상 유지됐고 금융위기 직후에는 16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키코 사태까지 겹치면서 엔화 대출을 사용한 수많은 국내기업과 개인 병원들은 부도가 났고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 외환역사상 1997년 외환위기, 키코 사태에 이어 3대 환위험 관리의 실패 사례로 꼽힌다.
‘엔화 대출 후폭풍’이 몰아닥친 가장 큰 요인은 금융위기 직후 ‘마진 콜(margin call)⑴’에 직면한 미국 금융사들의 ‘디레버리지(deleverage·자산회수)⑵’ 과정에서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다. 당초 예상치 못한 사태로 금융사들이 마진 콜을 당하면 외부에서 긴급자금지원이 없으면 기존에 투자했던 자산을 처분해서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시장 상황은 위기 발생국보다 위기를 피해갈 것으로 보이고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가 디레버리지 대상국으로 적합하다. 위기가 발생한 국가들은 보유자산을 팔려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은 적기 때문에 대규모 초과공급이 발생한다. 이 시장에서 보유자산을 처분하면 그 과정에서 가격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당초 계획보다 더 팔아야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중국 등과 같은 경제여건이 좋은 국가들은 팔려는 사람이 적고 사려는 사람이 많아 초과수요가 발생하거나 최소한 위기가 발생한 국가보다 수급사정이 좋다. 이 때문에 마진 콜을 당한 금융사들이 이 국가를 디레버리지 대상으로 선택하게 되고 이들 국가들은 외국자금이 대거 이탈돼 주가는 떨어지고 환율은 올라가는 현상을 맞는다.
실제로 금융위기 직후 주가 하락폭으로 본다면 위기 진원지인 미국의 다우지수는 45%에 그친 반면 한국의 코스피 지수는 65%, 중국 상하이지수는 무려 75%가 폭락했다. 금융위기 발생 이후 달러당 850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봤던 원·달러 환율은 거꾸로 1600원까지 올라 ‘키코(KIKO) 사태’와 ‘엔화 대출 후폭풍’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엔화 대출 후폭풍’이 몰아닥치게 또 다른 요인은 원·달러 환율이 진정될 무렵에 유럽위기가 발생하자 엔화 가치가 ‘안전통화 저주(curse under safe haven)’에 걸리면서 급등했기 때문이다. UC 버클리대의 베리 아이켄그린 교수가 처음 주장했던 안전통화 저주란 미국, 유럽의 잇따른 위기로 안전 피난처(safe haven)로 엔화 수요가 증대되는 현상⑶을 말한다.
유럽위기가 발생한 이후 국제금융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때 강세를 보이는 경향이 뚜렷하다 엔화의 명목실효환율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주가 변동성 지수(VIX)와 포지티브 상관관계를 보인다. 특히 모기지 사태, 유럽위기 등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엔화 강세가 일본경제 여건과 관계없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설상가상으로 엔캐리 트레이드가 활성화됨에 따라 불확실성 확대시 안전자산 선호와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맞물리면서 엔화 강세가 증폭된다는 점이다. 그 메커니즘을 보면 ‘불확실성 증대→안전통화 선호→엔화 수요 증가→엔캐리 트레이드 청산(네거티브 트레이드)→엔화 수요 증가→엔화 초강세’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⑷된다.
올들어 일본경제는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이 동시에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지는 디플레이션 국면이 우려되는 상황 속에 무역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 3중고를 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정책적으로 경기를 부양하면서 물가로 일정수준 이상 올리고 무역수지 적자를 개선해야 하는 ‘트릴레마(trillemma)⑸에 봉착하고 있다.
이제 미국 금융사들의 증거금 보전현상은 마무리됐다. 더욱이 출범초부부터 수출진흥책을 추진해온 오바마 정부는 연임에 성공한 이후에도 양적완화 등을 통해 달러 약세 유도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역별로는 한국 등 아시아 수출국을 대상으로 달러 약세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특정통화가 안전통화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는 시장 리스크⑹, 유동성 리스크⑺, 신용 리스크⑻로 평가해 본다면 엔화의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은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⑼ 하지만 엔고 저주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던 개인금융자산이 줄어들고 무역수지가 대폭 적자로 돌아섬에 따라 안전피난처로 엔화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
정책적으로 일본은행이 엔고 저지를 위해 최후의 방어벽을 치고 있다. 올들어 엔고 저지를 위한 자산매입 규모가 36조엔, 그 중에서 9월 이후 21조엔에 달하는 가운데 앞으로도 더 늘려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달초 국제통화기금(IMF)이 공식적으로 우려했던 일본의 위기설은 갈수록 확산되는 추세다.
다음달 16일에는 총선거가 치러질 예정이다.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의 국민지지도가 20% 밑으로 덜어진 점을 감안하면 경기부양에 더 적극적인 자민당이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차기 총리로 유력시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는 인플레이션 타깃팅을 2∼3%로 올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설 것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아베 신조의 적극적인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시라카와 마아아키 일본은행 총재도 내년 4월말에는 임기가 끝난다.
국내기업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은 너무 오랫동안 엔화 강세 환경에 젖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엔화가 본격적으로 약세로 돌아서면 ‘엔화 대출 후폭풍’은 줄어들겠지만 또 다른 환위험 관리에 실패해 ‘제3의 키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다음달에 치러질 총선거에서 지금 예상대로 자민당이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전개될 가능성이 높은 엔화 약세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놓을 필요가 있는 때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