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지하의 ‘변절’과 전효성의 ‘해명’… 씁쓸한 ‘민주화’

입력 2013-05-14 19:55   수정 2013-05-1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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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의 ‘변절’과 전효성의 ‘해명’

[이기호의 폴리스코프] 너무 잘 아는 노시인의 ‘침묵’ vs 너무 무지한 아이돌의 ‘실언’


“타는 목마름으로”의 시인 김지하와 “유후(Yoo Hoo)”의 아이돌그룹 시크릿 리더 전효성.

46살이나 차이가 나는, 어떻게 보면 관련성을 찾기 힘든 김지하와 전효성이 같은 날 비슷한 시각, ‘윤창중 성추행 의혹’과 초여름 더운 날씨로 인해 가뜩이나 예민한 우리 국민의 마음을 한층 어지럽게 하고 있다. 한 사람은 우리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인물이었다가 ‘변절’ 논란을 낳았고, 또 한 사람은 생각 없이 ‘민주화’를 언급했다가 혼쭐이 나고 있다.

김지하는 지난 대선 당시 야권후보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형편없다”고 비난했고, 안철수 무소속 후보를 “깡통”이라고 폄훼했다.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작가 황석영을 두둔했고, 200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추모객들을 “봉하마을에서 악을 쓰는 맑스(칼 마르크스) 신봉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2년 전 ‘만취방송’ 논란을 일으켰던(물론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전효성은 그동안 시크릿 활동을 하면서 과도한 노출로 관능미를 앞세웠고, 이로 인해 ‘쩍벌춤’ ‘키스마크’ 등 선정성 논란을 야기했으며, 한 때 표절 논란도 있었다. 대부분 연예활동과 관련된 논란들이었는데, 이번엔 문제가 좀 다르다. 전효성이 ‘민주화’라는 단어를 오용(誤用)했기 때문이다.

‘윤창중스캔들’에 말문 막힌 ‘민주화’의 공신

김지하가 누구인가. 1941년생으로 서슬 퍼렇던 1970년대 ‘반공이데올로기’가 곧 국가 운영체제의 기반이던 박정희 유신 독재시절에 저항시를 통해 국민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줄기를 선사했던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지성이었다. 김지하는 1970년 ‘사상계’에 ‘오적’을 게재해 독재정부를 비판했고, 이 때문에 반공법 위반 혐의로 100일간 수감생활을 겪어야 했다.

이뿐 아니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이후 국제적인 구명운동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또 다시 유신독재의 진상을 알리는 글을 쓰고 재수감돼 6년간 옥살이를 하는 등 민청학련사건과 오적필화사건으로 7년의 수감생활을 겪었다. 김지하는 이 당시의 억울함을 회복하기 위해 38년 만에 법정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김지하는 14일 서울 광진구 건국대학교 법학관 국제회의실에서 특별강연을 마친 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에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김지하가 지난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후보를 지지했고, 당선 직후 막말·불통 논란을 야기한 윤창중 인수위원회 대변인의 임명에 대해 “잘한 일”이라고 칭찬 바 있기 때문이다.

김지하는 앞서 1991년 민주화 요구 관련 분신자살이 이어지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해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직과 회원자격을 박탈당했으며, 대선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초에도 “못된 쑥부쟁이가 한류-르네상스를 가로막고 있다”며 고 리영희 선생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한 인신공격성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보수 커뮤니티가 왜곡한 ‘민주화’가 익숙한 아이돌

전효성은 14일 오후 방송된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 출연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DJ 최화정이 시크릿 멤버들에 대한 문제를 내자 전효성은 “겨우 세 개 맞췄다”며 “뭐 그저 그렇다”고 말했다. 시크릿 멤버들과의 호흡이 썩 좋지 않음을 장난스럽게 표현한 것으로 여기까지는 흔한 아이돌그룹다운 재기발랄함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문제의 실언은 그 다음에 나왔다. 전효성은 “시크릿은 개성을 존중한다”며 “‘민주화’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적으로 돼가는 상태 또는 민주주의가 되게 하는 과정”이라는 ‘민주화’의 본뜻을 변질시킨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의 방식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일베는 ‘민주화’를 “자신과 생각이 다른 소수를 집단으로 폭행,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로 사용한다.

‘민주화’ 발언 논란이 인터넷 상에서 급속도로 확산되자 전효성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늘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의 저의 발언과 관련해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점 반성하고 있다”고 말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며 거듭 사과의 뜻을 밝혔다.

시크릿 소속사 TS엔터테인먼트 측도 쏟아지는 언론과의 통화 등을 통해 “전효성은 ‘민주화’의 사전적 의미 외에 다른 뜻으로 쓰이는 줄 모르고 있었다”며 “일베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해명했다. 또 “이렇게 논란을 일으킬 줄 알았다면, 아예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전효성 본인도 자신의 발언이 문제가 된 것을 알고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13년 ‘민주화’가 만들어낸 씁쓸한 우리 사회

1970년대를 대표하던 ‘민족시인’ 김지하는 ‘윤창중 스캔들’과 관련된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윤 전 대변인 인선을 지지한 게 성추행과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고 반문하고, “한국에서 여자 엉덩이를 만져도 문제가 되는데, 대통령이 한참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 미국에 가서 대낮부터 술을 먹고 그런 짓을 했다”며 “국가의식이 되먹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5일 통영에서 열린 ‘장모’ 박경리 선생 5주기 추모제에 참석해서도 김지하는 “남한의 가장 큰 문제는 전라도와 경상도 사이의 경제적인 불균등과 갈등”이라며 박 대통령이 약속과 달리 대구 국가산업단지에 먼저 투자하는 점을 비난했지만 “구차하다” “국가의식도 없는 사람의 인선을 지지했느냐” 등의 싸늘한 반응만 확인했을 뿐, ‘변절’ 논란을 극복하지 못했다.

전효성 역시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라고 ‘민주적인 팀’이라고 했는데 단어선택을 잘못한 것 같다”는 소속사의 해명에 대해 “무슨 소리냐, 문맥상 아주 정확하게 알고 사용한 것 같던데” “어디 말 같지도 않은 해명” 등 냉랭한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갑의 횡포’로 주목받았던 남양유업이 윤 전 대변인에 이어 전효성에게도 감사인사를 한다는 패러디까지 나돈다.

‘민주화’에 대해 너무 많이 알았던 노시인과 너무 무지했던 연예인.

‘민주화 정신’을 끝내 지켜내지 못한 채 “한마디로 X 같아서”라는 욕설과 막말을 뱉어내는 변색한 지식인과 막강한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시대와 사회에 대한 고민 없이 ‘민주화’를 왜곡하고 무책임하게 발뺌하는 25세의 ‘성인’ 연예인.

‘민주화’가 만들어낸 2013년 한국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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