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오랫동안 고락(苦樂)을 함께할 수 있는 생명력 있는 민주적 국민정당을 바라며...
▲ Friedrich-Ebert-Stiftung
[한국경제TV 심영주 칼럼니스트] 지난 23일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150주년이 된 날이었다.
또한 이날은 페르디난트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1863년 5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보통·평등선거권의 쟁취와 계급대립의 진정한 극복을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전독일노동자동맹(ADAV, Allgemeinen Deutschen Arbeiterverein)을 결성함으로써 독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탄생한 날이기도 하다. 독일의 사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오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정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사민당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에곤 바르(Egon Bahr)는 최근 독일 공영방송(ARD Tagesschau)과의 인터뷰에서 사민당이 독일 역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언급했는데, 첫째는 사민당이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한 세계 최초의 정당으로 여성의 참정권 획득에 이바지했다는 점, 둘째는 사민주의자들이 소비에트연방의 공산주의자들과는 달리 민주적 선거결과에 승복해왔다는 것, 셋째는 사민당이 1933년 독일 제국의회에서 의회가 정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나치의 ‘수권법(Ermachtigungsgesetz)’을 유일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민당 당수였던 오토 벨스(Otto Wels)는 반대연설에서 “그들이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우리의 명예는 결코 빼앗아 갈 수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에곤 바르 독일 전 특임부장관 (참고자료)
해방 이후 이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로 수많은 정당이 명멸을 거듭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보면 독일의 사민당과 같이 역사적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정당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해방 이후 각자의 정치적 노선에 따라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할 순 있겠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성향과 민주당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논한다면 보수성향의 정당은 자유당(1951)에서 시작해 민주공화당(1963), 민주정의당(1981), 민주자유당(1990), 신한국당(1995), 한나라당(1997), 새누리당(2012)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민주당계의 정당은 한국민주당(1945)에서 시작해 민주국민당(1949), 민주당(1955), 신민당(1960), 민주당(1965), 신민당(1967), 신한민주당(1985), 새정치국민회의(1995), 새천년민주당(2000), 열린우리당(2003), 민주통합당(2011), 민주당(2013)으로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인물과 계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당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정당의 정강·정책이 아니라 인물과 계파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성향의 정당은 인물, 민주당계의 정당은 계파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정당에 대해 이야기하며 150주년을 맞은 독일 사민당이 현대 정당사에 있어 최고선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살펴보며 인물과 계파에 의해 이합집산을 거듭했음을 비판만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 국민이 한 인물 또는 한 계파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고락(苦樂)을 함께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독일 사민당 150주년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 정당도 부침(浮沈)을 겪더라도 단절을 통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변화를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인물과 계파보다는 국민의 삶이 녹아든 선명한 정강·정책(또는 콘텐츠)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 오랜 생명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설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새정치’, ‘사회구조 개혁’ 등이 화두가 되고 있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국민적 기대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또 다시 안철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신당이 회자된다는 점과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22일 안철수 의원은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켰다. 모쪼록 신당을 창당한다면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사람 모으기에 연연해하지 말고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통해 비전과 콘텐츠를 제시하고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당이 창당되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당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100년 정당의 위업을 쌓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참고 :
1. 국민정당(Volkspartei)은 사회계층을 넘어 넓은 유권자층과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다양한 이해를 균형 있게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을 가리킨다. 근원적으로 모든 사회계층과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유권자들과 당원에게 열려 있는 정당을 말한다.
2. 사회민주주의는 보통선거나 의회를 통한 정치적 평등에 이어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운동·체제원리다. 시장기구가 낳은 불평등이나 불안정한 경제질서를 조절하기 위해 국가가 사회에 부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실질적인 평등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 체제는 국가나 통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의존을 전제로 한다.
3. 에곤 바르(Egon Bahr, 91세)는 독일 사민당과 평생을 함께해온 사민당 역사의 산증인이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정부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herung)’를 모토로 ‘동방정책(Ostpolitik)’을 입안했다.
euumwelt@hanmail.net
▲ Friedrich-Ebert-Stiftung
[한국경제TV 심영주 칼럼니스트] 지난 23일은 독일에서 사회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150주년이 된 날이었다.
또한 이날은 페르디난트 라살레(Ferdinand Lassalle)가 1863년 5월 23일 라이프치히에서 보통·평등선거권의 쟁취와 계급대립의 진정한 극복을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전독일노동자동맹(ADAV, Allgemeinen Deutschen Arbeiterverein)을 결성함으로써 독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탄생한 날이기도 하다. 독일의 사민당(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은 이러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오며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정당으로 자리 잡고 있다.
독일 사민당 역사의 산증인이기도 한 에곤 바르(Egon Bahr)는 최근 독일 공영방송(ARD Tagesschau)과의 인터뷰에서 사민당이 독일 역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중요한 것 세 가지를 언급했는데, 첫째는 사민당이 여성을 동등한 권리를 갖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한 세계 최초의 정당으로 여성의 참정권 획득에 이바지했다는 점, 둘째는 사민주의자들이 소비에트연방의 공산주의자들과는 달리 민주적 선거결과에 승복해왔다는 것, 셋째는 사민당이 1933년 독일 제국의회에서 의회가 정부에 모든 권한을 위임하는 나치의 ‘수권법(Ermachtigungsgesetz)’을 유일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
당시 사민당 당수였던 오토 벨스(Otto Wels)는 반대연설에서 “그들이 우리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아 갈 수는 있어도 우리의 명예는 결코 빼앗아 갈 수는 없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에곤 바르 독일 전 특임부장관 (참고자료)
해방 이후 이 땅에 민주주의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로 수많은 정당이 명멸을 거듭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보면 독일의 사민당과 같이 역사적 정통성을 지속적으로 이어온 정당은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 해방 이후 각자의 정치적 노선에 따라 그 명맥을 유지해왔다고 주장할 순 있겠지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성향과 민주당계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논한다면 보수성향의 정당은 자유당(1951)에서 시작해 민주공화당(1963), 민주정의당(1981), 민주자유당(1990), 신한국당(1995), 한나라당(1997), 새누리당(2012)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고, 민주당계의 정당은 한국민주당(1945)에서 시작해 민주국민당(1949), 민주당(1955), 신민당(1960), 민주당(1965), 신민당(1967), 신한민주당(1985), 새정치국민회의(1995), 새천년민주당(2000), 열린우리당(2003), 민주통합당(2011), 민주당(2013)으로 계보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살펴보다 보면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특징이 있는데, 이러한 변화의 중심엔 언제나 인물과 계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당의 이름을 떠올리면 그 정당의 정강·정책이 아니라 인물과 계파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특히 보수성향의 정당은 인물, 민주당계의 정당은 계파가 떠오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나 싶다.
정당에 대해 이야기하며 150주년을 맞은 독일 사민당이 현대 정당사에 있어 최고선이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 정당의 변천사를 살펴보며 인물과 계파에 의해 이합집산을 거듭했음을 비판만 하려는 것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론 우리 국민이 한 인물 또는 한 계파와 함께 울고 웃으며 고락(苦樂)을 함께 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독일 사민당 150주년을 바라보며 이제 우리 정당도 부침(浮沈)을 겪더라도 단절을 통해서가 아니라 합리적 변화를 통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인물과 계파보다는 국민의 삶이 녹아든 선명한 정강·정책(또는 콘텐츠)을 중심으로 국민과 함께 오랜 생명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최근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설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새정치’, ‘사회구조 개혁’ 등이 화두가 되고 있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당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국민적 기대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론의 여지는 있지만 또 다시 안철수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신당이 회자된다는 점과 우리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22일 안철수 의원은 싱크탱크 성격의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출범시켰다. 모쪼록 신당을 창당한다면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사람 모으기에 연연해하지 말고 ‘정책네트워크 내일’을 통해 비전과 콘텐츠를 제시하고 이러한 내용에 동의하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신당이 창당되기를 기대해본다. 더불어 현재 새누리당과 민주당도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100년 정당의 위업을 쌓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참고 :
1. 국민정당(Volkspartei)은 사회계층을 넘어 넓은 유권자층과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의 다양한 이해를 균형 있게 대변하고자 하는 정당을 가리킨다. 근원적으로 모든 사회계층과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유권자들과 당원에게 열려 있는 정당을 말한다.
2. 사회민주주의는 보통선거나 의회를 통한 정치적 평등에 이어 경제적 평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사회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운동·체제원리다. 시장기구가 낳은 불평등이나 불안정한 경제질서를 조절하기 위해 국가가 사회에 부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실질적인 평등을 달성하고자 한다. 이 체제는 국가나 통치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의존을 전제로 한다.
3. 에곤 바르(Egon Bahr, 91세)는 독일 사민당과 평생을 함께해온 사민당 역사의 산증인이다.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정부에서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herung)’를 모토로 ‘동방정책(Ostpolitik)’을 입안했다.
euumwel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