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명배우 피터 오툴이
지병으로 런던에서 별세했다고 그의 대리인 스티브 케니스가 15일(현지시간) 밝혔다. 향년 81세.
케니스는 1970년대 위암을 극복했던 오툴이 전날 런던 웰링턴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오툴의 부음을 듣고 "크나큰 슬픔을 느꼈다"며
"아일랜드와 전 세계는 영화계와 연극계의 거물 중 하나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오툴은 지난해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감사의 작별인사를 보낸다"며 연기생활 중단을 선언했었다.
연극무대와 영화에서 센세이셔널한 우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오툴은
8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하다가 2003년에야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1962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출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처음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고,
2006년 `비너스`로 마지막 추천을 받았으나 끝내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아일랜드 출판업자 아들로 태어난 오툴은 북잉글랜드에서 성장했다.
잠시 기자와 영국해군 무선병으로 일하다가 권위 있는 왕립연극아카데미에 들어가 수학했다.
오툴은 연극무대에 등단하자마자 바로 유망주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며
1955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브리스톨 올드 빅에 올려 평단의 절찬을 받았다.
그는 여세를 몰아, 사막의 서사시라고도 불린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병으로 런던에서 별세했다고 그의 대리인 스티브 케니스가 15일(현지시간) 밝혔다. 향년 81세.
케니스는 1970년대 위암을 극복했던 오툴이 전날 런던 웰링턴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마이클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오툴의 부음을 듣고 "크나큰 슬픔을 느꼈다"며
"아일랜드와 전 세계는 영화계와 연극계의 거물 중 하나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오툴은 지난해 "나는 배우라는 직업에 감사의 작별인사를 보낸다"며 연기생활 중단을 선언했었다.
연극무대와 영화에서 센세이셔널한 우상으로 인기를 끌었던 오툴은
8차례나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하다가 2003년에야 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1962년 데이비드 린 감독이 연출한 출세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처음 아카데미상 후보로 지명됐고,
2006년 `비너스`로 마지막 추천을 받았으나 끝내 본상 수상에는 실패했다.
아일랜드 출판업자 아들로 태어난 오툴은 북잉글랜드에서 성장했다.
잠시 기자와 영국해군 무선병으로 일하다가 권위 있는 왕립연극아카데미에 들어가 수학했다.
오툴은 연극무대에 등단하자마자 바로 유망주 가운데 하나로 꼽혔으며
1955년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브리스톨 올드 빅에 올려 평단의 절찬을 받았다.
그는 여세를 몰아, 사막의 서사시라고도 불린 대작 `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