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엔 '영리한' 캐릭이 필요하다

입력 2015-04-06 17:12   수정 2015-04-08 16:07


▲ 영리한 미드필더의 교과서 마이클 캐릭 (사진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9년 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마이클 캐릭을 영입하기 위해 토트넘에 1860만 파운드를 지불했을 때, 사람들은 퍼거슨 감독이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캐릭이 토트넘의 핵심 선수라는 사실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었지만, 로이 킨의 태클도, 폴 스콜스의 패스도, 스티븐 제라드의 다이내믹함도 갖지 못한 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16번 셔츠에 어울린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캐릭이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한 이후, 맨유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5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준우승 2회라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러나 캐릭에 대한 과소평가는 달라질 기미가 없었다. 캐릭이 이끄는 맨유의 중원은 매 시즌 약점으로 지적됐고,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는 제3, 제4의 옵션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캐릭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은 눈에 띄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이었다. 22명의 선수가 하나의 볼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축구에서 관중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볼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볼을 갖고 화려한 드리블, 강력한 슈팅, 환상적인 스루패스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하지만 캐릭은 볼을 갖지 않은 상황에서의 위치 선정과 움직임이 탁월한 선수다. 상대가 볼을 잡고 나서 태클을 하기보다는 볼을 잡기 전에 패스 코스를 차단하고, 상대가 압박할 수 없는 자리에서 볼을 받고 압박하기 전에 패스를 뿌린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팀에 꼭 필요한 선수의 전형이다.

지난 이탈리아와의 평가전은 캐릭의 가치가 잘 드러난 경기였다. 이 경기에서 로이 호지슨 감독은 필 존스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파격적인 전술을 꺼내들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존스는 몸을 아끼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볐으나 이탈리아의 패스 흐름을 전혀 막지 못했다. 볼을 가진 선수와 패스를 받으려는 선수의 움직임을 읽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뛰어다니기만 했을 뿐이다. 공격 전개도 마찬가지였다. 패스를 받으려는 위치가 좋지 못하다보니 볼을 잡자마자 이탈리아의 압박에 둘러싸였고, 패스 코스 선택이 나빠 패스를 받은 동료가 다음 플레이를 전개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전반전 막판 투입된 캐릭은 수비형 미드필더의 교본과도 같은 플레이를 펼쳤다. 부상당한 크리스 스몰링을 대신해 교체 투입된 캐릭은 약 50분 동안 단 하나의 슈팅도, 태클도, 인터셉트도 기록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리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 공격수에게 패스가 투입되지 못하도록 철저히 차단했고, 공간을 점유함으로써 볼을 가진 선수가 생각하고 플레이할 수 있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공격적으로는 언제나 쉽게 볼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있었으며, 동료가 다음 플레이를 전개하기 쉽도록 패스를 공급해 경기 템포를 살려나갔다. 상대의 기를 죽이는 강력한 태클이나 득점에 직결되는 환상적인 스루패스 없이도 경기를 지배한, ‘캐릭스러운’ 모습이었다.

지금까지 잉글랜드는 지나치게 피지컬이나 스피드와 같은 물리적인 재능에 집착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유로96 이후 20년 가까이 4강 무대조차 밟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빠른 발보다 빠른 두뇌회전이 중요해진 현대축구에서 잉글랜드가 축구종가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축구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잉글랜드가 캐릭의 영리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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