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천진한 웃음의 발레"…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

입력 2015-05-07 14:33  



발레 관객의 입가에 이렇게 웃음이 떠나지 않은 적이 있던가. 국립발레단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공연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객석에는 키득키득하는 소리가 시종 멈추질 않았다. 아이들은 몸을 숙여 웃었고, 중년층의 관객은 ‘아이고 아이고’하는 탄성을 내뱉기도 했다. 기존 발레 공연장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온 세대가 함께 웃는 광경이었다. 강수진 예술감독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보다 많은 관객이 편하게 발레 공연장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면 그녀의 선택은 한마디로 ‘탁월’했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전설적 안무가 ‘존 크랑코’의 작품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바탕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초연했다. 한국공연은 그간 해외 판권에 까다로웠던 존 크랑코 재단이 아시아에 판권을 내준 첫 사례이기도 하다. 국립발레단은 이로써 든든한 레퍼토리 하나를 추가하게 됐다.

작품은 희곡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카테리나는 팔자걸음에 두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리고 씩씩대는 것이 다반사인 괄괄한 성격의 처녀다. 주변 사람들에게 발길질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카테리나 역을 맡은 무용수는 토슈즈의 끝으로 서지 않고, 바닥 전체를 딛고 쿵쾅쿵쾅 걷는 장면이 많다. 비극에 익숙한 발레 관객에게는 낯선 모습이다.

아버지조차 말릴 수 없는 카테리나를 길들이기에 나선 것은 페트루키오다. 그는 술집 작부에게 빠져 빈털터리가 된 후, 계략에 빠져 카테리나와 결혼하게 된다. 거칠게 혹은 달콤하게 아내를 길들이는 모습은 ‘장난기 많은 마초’의 전형이지만, 의외의 로맨틱한 구석이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존 크랑코의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작품에는 ‘희극발레’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등에 못지않을 정도로 뛰어난 드라마적 감각을 보여준다. 존 크랑코는 탁월한 심리 묘사로 인물들 간의 드라마를 그려내는 데 뛰어난 안무가다. ‘말괄량이 길들이기’ 역시 마찬가지다. 등장인물들은 관객을 향해 자신의 기술을 보여주듯 춤을 추기보다 상대 무용수의 눈을 보며 상황 속에서 충분한 연기를 한다. 관객들이 작품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무용수들이 ‘춤’을 벗어나 ‘춤 연기’를 무대 위에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기억하고픈 명장면도 있다. 카테리나와 페트루키오는 마지막에 다다라 달콤한 사랑의 파드되를 춤춘다. 드라마 안에서 시종 투닥거리고 거친 몸의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추는 장면이다. 힘을 뺀 동작들은 ‘사랑의 달콤함’을 감미롭게 노래했고, 클래식 발레의 우아함까지 겸비해 심장을 뛰게 했다. 무엇보다 하나의 파드되 장면에서조차 기승전결이 확실한 드라마적 구성이 새는 곳 없이 탄탄했다.

망가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은 무용수들의 열연도 뜨겁다. 카테리나 역의 김지영은 목마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바닥 구르기를 불사하고, 늘 늠름한 포즈로 비장함을 뽐내던 남자무용수들은 골반 흔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직선의 힘이 강한 발레라는 춤에 더해진 유연하고 유쾌한 동작들은 곡선의 재미까지 얹어 갓 짜낸 오렌지주스만큼이나 상큼한 무대를 펼쳐놓았다.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무용수가 유난히 수고로운 작품이다. 특히, 카테리나 역과 페르투키오 역의 경우 우스꽝스러운 연기부터 시작해 고난이도의 테크닉까지 소화해야 한다. 특히, 기교에 가까운 발레 동작들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안무로 가득 차 있다. 마주잡은 손을 한 번도 떼지 않은 채 서로 얽히고 풀어지면서 추는 군무, 여자무용수를 리프트한 상태에서 다양한 동작을 취하는 남자무용수들, 페트루키오가 쇄골로 카테리나를 떠받치는 장면 등에서는 객석에서 경탄의 외침과 박수가 앞 다퉈 터져 나오기도 했다.

카테리나로 변신한 김지영과 페트루키오 역을 맡은 김현웅은 오랜 파트너십에서 나오는 연륜과 농익은 연기로 관객을 황홀이 사로잡았다. 김지영은 깃털처럼 무대 위를 종종걸음으로 오가던 청순함을 벗고 카테리나의 거친 매력을 완벽히 입었고, 김현웅은 나무랄 데 없는 연기로 청중의 박수를 한 몸에 받았다. 두 무용수는 춤을 넘어서서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연기로 작품의 몰입도를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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