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종료 예정이었던 유로존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재협상 과정에서 이번 달 말까지 연장됐고, IMF 구제금융은 내년 3월까지 진행될 것으로 예정돼 있다. 하지만 재정사정은 계속해서 악화돼 바닥인 난 상태로 자체적으로 채무상환능력이 없는 준(準)디폴트 국면에 처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에는 긴축재정을 반대하는 급진좌파 연합(Syriza)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취임하게 되면서 국제 채권단과의 갈등이 더욱 더 고조됐다. 치프라스 총리는 취임 이후 그리스는 그렉시트(그리스 유로존 탈퇴)를 원치 않는다며 그리스 관련된 우려를 조금이나마 줄였으나, 채무협상 과정에서는 채권단의 요구를 반대하며 이중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그리스 정부는 이와 같이 채권단과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나 채권단의 도움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을 맞이했다. 최근에는 IMF에 이달까지 상환해야 하는 16억 유로 규모의 채무 4건을 월말에 상환하겠다고 연기 요청했는데 이를 갚지 못할 경우 디폴트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1

잊을 만하면 그리스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럽통합에 유럽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럽 국민들을 대상으로 ‘유럽통합에 따라 얼마나 혜택을 받는가’를 조사한 결과 회원국 국민 평균수준으로 50%대에 그쳤으나, 동일한 방법으로 올해 5월에 조사한 결과를 보면 40%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로존처럼 정치적 주권과 사회문화 문제가 결부된 국가 간의 통합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돼야 성공할 확률이 높고 국민들의 만족이 높아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특정단계에서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면 성공했다고 평가되던 이전 단계도 잠복돼 왔던 내부적인 한계가 드러나면서 위기가 발생하거나 국민들의 만족도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EMU가 갖고 있는 최대 한계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상호 밀접한 관계에 있어 정책운용의 조화(policy mix)가 경제안정을 위해 중요하나 초기부터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즉, EMU는 단일 통화정책을 실시하고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 등으로 단일 재정정책을 수행하는 재정통합은 이루지 못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차선책으로 ‘안정 및 성장협약(SGP)’을 회원국이 지키도록 함으로써 재정상황의 동질성을 확보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유로 본드 발행 등을 통해 역내 회원국 간 재정의 동질성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EMU는 ‘역내 단일통화정책과 개별 사정을 고려한 회원국별 독립적 재정정책’의 이원적 체제(two-track)로 운영돼 왔다. ECB의 통화정책은 경제 핵심국의 경제 사정이나 통화정책 철학을 반영해 수행되고 있어 경제 취약국의 상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유로화 도입으로 성공했다고 평가받아 왔던 유럽통화동맹도 환율변동이 갖는 조기경보기능이 상실돼 회원국 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즉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경제 취약국(혹은 주변국)2은 실질환율이 고평가돼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지만 독일, 프랑스 등 핵심국은 실질환율이 저평가돼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구조적인 불균형 문제를 안고 있다.

유럽통합의 내재적인 문제점들이 유럽재정위기를 거치면서 회원국 간의 경제력 격차가 더 심해지는 쪽으로 나타나 각종 선거에서 좌파 세력이 득세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유럽통합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경제여건이 나쁜 회원국들의 조정문제는 불가피한 시점이다.
유럽재정위기 이후 회원국 간의 경쟁력 격차는 성장률 격차로 그대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있어서도 회원국 간의 차별화가 더 심해졌다. 독일, 프랑스 등 경제 핵심국들도 추세적으로 재정위기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반면 경제 취약국들은 재정위기에 따른 충격으로 성장률 수준이나 경제규모 모두가 위기 이전 수준을 크게 하회하고 있다.
특히 유럽재정위기 이후 회원국 성장률 추세 변동을 노동투입과 노동생산성의 증감률로 분해해 보면 경제 취약국일수록 노동투입이 감소된 것이 성장률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재정위기 이후 경제 취약국들의 고용사정이 청년층을 중심으로 크게 악화돼 대규모 실업사태를 반증해 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2013년 5월 유럽의회 선거, 2015년 1월 그리스 총선 등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좌파 세력이 유럽통합 진전을 반대하거나 후퇴시키는 근거로 활용해 왔다.

주요 예측기관과 투자은행에서는 앞으로의 그리스 문제와 관련해 △그리스와 국제 채권단과의 합의안 도출 이후 채무 재협상 타결 △디폴트 발생 후 유로존 잔류 △디폴트 발생 후 유로존 탈퇴 총 3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그리스 정부와 채권단이 채무 상환 방안을 마련하여 디폴트 상황은 막는 것이나 서로의 의견차로 해소하지 못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그리스와 채권단이 합의안 도출실패 또는 도출전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유로존에 잔류해 향후 채권단과의 협상을 통해 추가 구제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현재 그리스 총리, 재무장관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그렉스트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리스가 자발적으로 유로존을 탈퇴하거나 유럽 연합이 그리스가 앞으로도 유로존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판단하여 강제로 그리스를 유럽 연합을 탈퇴시키는 방안이다.
이 중에서도 아직까지 발생 가능성은 낮으나 가장 우려가 되는 시나리오는 세 번째 그렉시트 시나리오인데 그리스가 실제로 유로존을 탈퇴하게 된다면 주변 국가에게도 탈퇴심리가 확산돼 유로존 붕괴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분리지수3는 지난 1년 사이 급등하여 시장에서는 이미 그리스 유로존 탈퇴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만약에 그리스의 탈퇴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기존 외채에 대한 디폴트 처분 방안 등에 대한 대처가 미흡할 경우 유로존 전체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들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에서는 반 긴축, 반 유로화 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의 지지율이 높아짐에 따라 그리스 유로존 탈퇴를 시작으로 타 경제 취약국 등에서의 후속 탈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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