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애 기자]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가 있다. 자유연애를 즐기며 화려한 싱글을 부르짖던 여자에게 어느 날 나타난 한 남자. 그는 ‘이렇게 빨라도 되나’ 싶을 정도로 단숨에 여자를 무장해제 시켜버린다. 그리고 진정한 짝을 찾은 자유연애주의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순수한 사랑을 시작한다. 어쩌면 ‘사랑을 믿지 않는다’는 말은 ‘누구보다 사랑을 믿고 싶다’와 같은 말은 아닐까.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여자’가 4일 서울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자유연애주의자가 해바라기 같은 순정남을 만나 진솔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줄거리는 구성부터 결말까지 뻔할 수밖에 없는 소재다. 하지만 여주인공이자 영화의 각본을 쓴 에이미 슈머는 ‘올해 미국에서 가장 핫한 코미디언’이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초입부터 찐한 ‘섹드립’과 미국식 유머 코드를 빵 터트리며 뻔한 구성을 빗겨갔다.
극 중 자유분방한 연애를 추구하는 잘 나가는 잡지 에디터 에이미 슈머(에이미 역)는 취재차 만난 스포츠 의사 빌 헤이더(애론 역)와 만나 진짜 사랑에 빠진다. 에이미의 진국 같은 매력에 반한 빌은 적극적으로 대시하지만, 에이미는 그가 자신의 삶에 깊게 파고들수록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이처럼 애초에 연애관부터 다른 두 남녀에게 찾아온 사랑의 위기는 필연적인 순서일 터. 하지만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진심을 깨닫고 ‘로코’의 전형적인 구도에 맞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어린 시절 ‘일부일처제는 비현실적이다’라는 남다른(?) 가정교육 하에 자유연애를 철칙으로 삼게 된 에이미가 왜 갑자기 빌에게 ‘올인’하게 됐는지, 특히 ‘이건 리얼 러브’라며 울먹이기까지 하는 장면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엉성한 짜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여자의 섬세한 감정 변화부터 ‘똘기’ 넘치는 개성 강한 모습까지 소화하는 에이미 캐릭터의 힘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특히 에이미는 예쁘다기엔 다소 애매한 외모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까지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면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어 보이는 캐릭터. 하지만 데이트하고 싶은 남자에게 당당히 “너를 원해!”라고 말할 줄 아는 화끈한 그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뻔뻔해 오히려 매력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만큼 누구보다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겪는 이 복잡한 캐릭터는 에이미가 아니었다면 완성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코미디언 출신답게 에이미 못지않게 뻔뻔한 연기를 선보인 빌의 열연이 더해져 이 괴짜 커플의 탄생기를 드라마틱하게 완성했다.
또 하나의 놓칠 수 없는 포인트는 화려한 카메오다. NBA의 간판스타인 르브론 제임스와 아마레 스터드마이어, 그리고 WWE의 존 시나를 포함한 스포츠 스타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본업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강렬하다. 여기에 틸다 스윈튼, 다니엘 래드클리프, 에즈라 밀러까지 연기파 배우들의 깜짝 등장 역시 미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다.
무엇보다 단순히 남녀 사이 뿐 아니라 가족, 지인들과의 관계를 관통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통해 에이미가 성숙해가는 과정은 진한 감동을 남긴다. 특히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브리짓을 사랑했던 관객이라면 에이미를 통해 훨씬 세련되고 트렌디해진 ‘2015년 판 브리짓’을 만난 반가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12월 10일 개봉.
(사진=영화사 날개(주))
eu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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