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화려하기보다
정직한 플레이를 했던
선수라고 생각한다."
BASKETBALLDIARY VOL.2
맥심 SPOTALK #11. 매직핸드 김승현 농구 인생 2막 (1)
"전(前) 농구선수 김승현입니다"
대한민국 농구 판을 평정했던 매직 핸드 김승현. 그의 농구 인생 2막이 열렸다.
*MAXIM(맥심) 2016년 1월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만나서 영광이다. `매직 핸드` 김승현! 독자 여러분께 인사 부탁한다.
안녕하세요, 2014년 현역 생활을 정리하고 현재 스킬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전` 농구 선수, 김승현입니다.
스킬 트레이너, 생소한 직업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선수 은퇴 후에 앞으로 뭘 해먹고 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았지만, 배운 게 도둑질 아니겠나. 자연스럽게 농구 관련 일을 생각하다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후배와 함께 시작했다.
일반인뿐 아니라 프로 선수도 많이 와서 연습하던데?
사실 프로 팀에선 체력 훈련과 전술 훈련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선수의 개인 기량을 발전시켜줄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하다. 나 같은 스킬 트레이너는 그 부족함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현역 시절 얘기를 해보자. 팬들은 당신을 코트 위에서 그 누구보다 화려했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나를 기억해주는 분들께는 늘 감사하지만, 난 화려하기보다 정직한 플레이를 했던 선수라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슛, 드리블을 생각해보면 남들보다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본기에 충실한 플레이를 하려고 노력한 선수에 가까웠지. 아, 패스가 좀 남다르긴 했다.(웃음)
그럼, 패스 하면 김승현이지! 당신의 노룩 패스와 앨리웁 패스는 정말 기가 막혔다. 그런 플레이를 즐기는 성격인가?
처음엔 아니었다. 근데 대학교 때 팀 전력이 좋지 않았고, 처지는 팀 전력을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그런 변칙적인 플레이를 연습하게 됐다. `남들과 다른` 농구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좀 있었고.
당신이 데뷔 시즌 안겨준 임팩트는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였다. 기분도 최고였겠지?
아니, 오히려 너무 무서웠다. 데뷔 시즌에 신인상과 MVP를 타고, 리그 챔피언에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 땄다. 선수로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신인 때 다 이루고 나니 `내 선수 인생 마지막이 좋지 않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더라. 근데 그 예감이 맞았는지 역시나 끝이 안 좋더라고, 하하하.(웃음)
요즘 프로 농구가 한껏 욕을 먹고 있다. 협회의 무능과 부패함은 차치하더라도, 리그 전체의 질적 저하가 심각하다는 팬들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신도 동의하나?
동의한다. 리그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성적에만 집착한 농구를 하다 보니 선수들이 기본기를 충실하게 쌓지 못한 탓이다. 학생 때 기초를 제대로 잡지 않으니 프로에 올라가서 제대로 된 농구를 할 수 있겠나.
본인이 생각하는 `포스트 김승현`은 누군가?
음... 아직은 없는 것 같다. 실력적인 면이 아니라 나랑 비슷한 유형의 선수가 없다는 소리다. 나는 어시스트와 게임 리딩에 주력하는 가드였는데, 요즘은 공격과 리딩을 동시에 하는 듀얼 가드가 대세니까.
선수 시절 가장 궁합이 잘 맞았던 동료는?
역시 힉스*겠지? 피트 마이클**도 잘했지만 본인이 알아서 잘하는 쪽에 가까웠고, 힉스는 정말 나랑 호흡이 잘 맞았다.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랄까? 연습을 따로 한 것도 아닌데 실전에 들어가면 앨리웁 플레이가 잘 나왔다. 그냥 ‘한번 띄워볼까?’ 하는 느낌으로 던져주면, 힉스가 알아서 넣더라. 물론 농구는 피트 마이클이 더 잘했다.(웃음)
*마르커스 힉스(Marcus Hicks):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대구 동양 오리온스 소속으로 활약했다. 김승현과 최고의 콤비 플레이를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피트 마이클(Pete Mickeal):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대구 동양 오리온스 소속으로 활약했다. 순수 기량 면에서 KBL 역대 최고의 용병 중 하나로 꼽힌다.
농구 하다 가장 빡친 순간은 언젠가?
(2편으로 이어집니다...)
by 이슬기 photograph by 김도훈
촬영협조 GP&B(blog.naver.com/gpb_y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