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하늘 “무대 위에 설 수 있게 하는 힘? 열등감이죠”

입력 2016-02-18 10:08   수정 2016-02-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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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애 기자] “정말 많이 사랑했거든요. 이제 내 손을 떠났지만 ‘내 사랑이 너무 작진 않았을까’, ‘어떻게 기억될까’ 걱정 돼요” 헤어진 연인이라도 떠올리는 줄 알았는데 작품이야기였다. 표정은 진지했고 눈빛은 맑았다. 배우 강하늘의 이야기다. 최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인터뷰에 앞서 17일 개봉한 두 편의 영화에 나눠준 애정부터 고백했다.

“‘동주’ 촬영 이후 4개월쯤 쉬고 ‘좋아해줘’ 촬영에 들어갔어요. 당시 ‘어쩌면 비슷한 시기에 개봉할 수도 있다’란 얘길 듣긴 했는데 개봉일이 겹칠 줄은 몰랐죠. 물론 전 두 작품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강하늘은 ‘동주’ 이야기부터 꺼내놨다. 그가 윤동주 시인으로 분한 영화 ‘동주’는 윤동주 시인의 짧은 청춘을 그린 작품. ‘단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된 적 없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란 수식어가 붙는 인물을 연기한 배우의 심정이 궁금했다. “중압감이 어마어마했죠. 처음엔 그저 ‘우와 윤동주 시인을 다룬다니 대박이다’라면서 흥분상태였어요. 평소에 너무 좋아하는 시인이거든요. 출연을 고민해볼 수 있는 것조차 영광이라고 생각했는데 치기 어렸던 것 같아요. 작품 시작하자마자 밀려오는 압박감에 ‘그냥 잠수 타버릴까?’ 고민했을 정도예요(웃음)”

평소 좋아하는 시인을 연기한다는 부담감에 한동안 입맛까지 잃었다는 그의 고민은 헛되지 않았던 것 같다. 개봉 이후 극 중 윤동주의 인간적 면모에 초점을 맞춘 강하늘의 연기는 완벽했다는 평이다. 그런 그와 호흡을 맞춘 박정민이 열연한 송몽규의 이야기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 송몽규는 윤동주의 오랜 벗이자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인물. 윤동주는 신춘문예에 당선된 송몽규를 부러워하고, 암울한 시대에 거침없이 맞서는 그의 행동정신을 동경하기도 한다.

“동주가 몽규를 질투하는 부분이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예요. 일반적으로 윤동주 시인을 위대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로만 상상하잖아요. 시만 보고 그분의 이미지를 우리 마음대로 정해버린거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역시 라이벌에 대한 열등감, 패배심, 사랑 등의 감정을 느끼고 살았던 그 시절 평범한 젊은이였을 거예요. 윤동주 시인을 차분한 성격의 문학청년으로 바라보게 한 시나리오가 신선한 충격이었죠”

그의 말대로 ‘청년 윤동주’는 내성적이고 차분했다. 이 때문에 그와 대비되는 성격의 ‘행동파’ 몽규의 이야기가 훨씬 극적이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윤동주 역을 연기한 입장에서 서운하진 않았을까. 그는 “‘몽규가 돋보인다’는 이야기는 정말 큰 칭찬이에요. 제가 제대로 연기했단 뜻이거든요”라고 입을 열었다. “사실 ‘동주’는 윤동주를 위한 영화가 아니예요. 애초에 이준익 감독님께서도 ‘이 영화는 송몽규를 세상에 불러올 작품’이라고 하셨죠. 그러니 몽규를 통해 작품 전체를 빛나게 해준 (박)정민이 형한테 고마운 마음이 커요”라는 진솔한 답을 내놨다.

이어 강하늘은 관객들을 향한 개인적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감정을 느껴보라’고 강요하는 건 원치 않아요. 감독님께서 작품에 의도를 넣는 건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이라고 하신 적이 있거든요. 다만 ‘동주’엔 우리가 잊고 살았던 우리의 역사가 있어요. 흥행을 떠나서 윤동주와 송몽규를 많은 분들이 오래 기억해주셨으면 해요”라고 전했다.



1945년의 아픈 청춘, 윤동주 시인을 연기했던 강하늘. 이번엔 연애 때문에 울고 웃는 2016년의 청춘으로 분했다. 바로 영화 ‘좋아해줘’다. ‘좋아해줘’는 세 커플의 연애담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작품으로, SNS를 통해 인연을 맺고 관계를 이어가는 요즘 젊은 세대들의 사랑법을 그렸다.

물론 촬영 시기가 겹쳤던 것은 아니지만 윤동주 시인의 그림자를 채 지우기도 전에 아주 트렌디한 현대극을 촬영한 셈. 몰입에 어려움은 없었을까. “현대극을 하다 사극을 하면 ‘도전’이란 표현을 쓰잖아요. 근데 제겐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 같아요. 연기는 단순히 그 시대의 인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건 그냥 다큐죠. 시대극과 현대극은 배경만 다를 뿐 삶에 대해 논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해요. 저는 배우로서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충실하면 되는 거고요. 그래서 시대적 배경은 제겐 큰 고민거리가 되진 않아요”

강하늘은 ‘좋아해줘’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천재 작곡가 이수호 역을 맡았다. 그는 만드는 곡마다 히트시키지만 연애에는 서툰 모태솔로남. 그는 ‘연애 하수’라는 캐릭터의가 매력적이었다고 고백했다. “연기할 때 전략적인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제가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할 뿐이거든요. 무대 위 제 모습을 상상했을 때 바람둥이 보다는 연애 쑥맥이 좀 더 어울리는 옷 같아서 선택했어요. 물론 실제로 모태솔로는 아닙니다(웃음)”

극 중 캐릭터인 수호는 좋아하는 여자에게 청각장애를 숨기고 다가간다. 실제 그였다면 어땠을까. 그는 “일단 뭔가 숨기는 성격이 아니예요. 아마 숨기기 전에 이미 솔직하게 말해버렸을 것 같아요”라며 "워낙 솔직한 성격이라 관심 있는 이성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편이예요. 특히 사랑고백은 무조건 얼굴 보고 해야죠. 버디버디 같은 걸로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라고 연애관을 밝히기도 했다.

올해 스물일곱인 강하늘이 대중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뮤지컬 무대 위에서였다. 당시 17세였던 그는 어느덧 10년이란 세월을 배우로 살아온 셈. 어린 나이, 분명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을 테다. 그럼에도 ‘청년 강하늘’을 무대에 세운 힘은 어디서 나온걸까. 그가 꼽은 것은 다름 아닌 ‘열등감’이었다.

“저를 무대에 서게 하는 힘은 열등감이에요. 어릴 때부터 제가 가진 재능 이상을 보여야 하는 과제들이 끊임없이 주어졌어요. 내 연기를 보는 대중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 또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보면서 느꼈던 열등감을 감내하느라 홀로 아픈 시간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그 때 느낀 패배감들이 오히려 지금의 제 모습을 만든 원동력이 됐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고마운 시간이었네요”

강하늘은 지난해 ‘쎄씨봉’, ‘동주’, ‘좋아해줘’부터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까지 쉴 틈 없는 활동을 이어왔다. 최근엔 차기작 ‘보보경심 : 려’ 촬영으로 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가 연초에 세운 계획이 궁금했다. “미리 작품 활동 계획을 세워놓는 편은 아니지만 올해도 좋은 작품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아야죠. 개인적으로는 ‘올 한 해 나의 고집을 믿고 행동하자’라고 다짐했어요. 올해도 좋은 고집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할 생각이에요”

‘미생’, ‘쎄씨봉’, ‘스물’과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그리고 `동주`, `좋아해줘`까지, 그는 유독 ‘청춘’이란 단어와 인연이 깊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청춘론’을 요청했다. “청춘이요? 사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어요. 청춘이란 단어를 고민하지 않을 때가 청춘인 것 같으니 제 청춘은 바로 지금이겠네요”(사진=샘컴퍼니)



eun@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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