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의 더 무지개 라이브 코너에 웹툰 작가 ‘기안84’가 등장했다. 이날 기안84는 네이버 회사에서 마감에 쫓기며 웹툰을 그리는 모습을 공개했다. 집을 구하지 못해 4개월 동안 친구와 담당자 집을 전전하는 기안84는 회사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세안을 해 눈길을 끌었다.
마감을 자주 늦는 이유에 대하여 기안84는 “늦어도 재미있는 게 나은 거 같았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발언 직후에 패널 이국주가 “웹툰계의 전현무”라며 개그를 구사해 시시한 농담으로 넘어가긴 했지만,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원인을 단지 작가의 게으름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거다.
마감을 지키지 못해 가장 손해 보는 건 독자가 아닌 작가다. 업계 내의 평판뿐 아니라, ‘오늘의 추천 웹툰’ 등 온종일 메인에 걸릴 수 있는 라인업에 끼지 못한다. 이것은 조회 수가 곧 수익인 웹툰 구조에서 치명적인 제도다. 즉, 게으름 좀 피우자고 감수할만한 손해가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실질적인 페널티를 감수하면서도 어떤 만화가는 왜 마감에 늦고, 어떤 만화가는 마감을 잘 지키는 것일까? 아까의 기안84의 언급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늦어도 재미있는 게 낫다는 판단. 즉, 작가마다 ‘타협의 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만화가가 마감 기간 일주일이라는 제한된 여건 안에서 최고의 재미, 혹은 최고의 작화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시간을 이길 순 없다. 가령 한 달에 한 화와 일주일에 한 화라면 그 결과물의 질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마감이 닥친 작가는 머릿속의 이상적인 작화나 스토리에서 한참은 먼 투박한 결과물 앞에서 고민하게 된다. ‘어느 정도의 투박함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가?’ 여기서 기안 84는 마감을 살짝 넘기는 지점까지 공을 들이는 데 본인의 타협 선을 둔다.
하지만 마감은 곧 독자와의 약속이다. 작가라는 직업에서 예술가를 제외한 부분 - ‘프로’라는 소양과 연관관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의 게으름을 이유로 들어 질타하는 이들에게도 작가들은 죄송하다고만 말할 뿐이다.
이 기사는 변명만이 목적이 아니다. 그보다 마감이 늦는 창작자들이 마냥 게을러서라고 분노하기보다 좀 더 진취적인 피드백이 오가길 바라는 의도다. 그러다 보면 작가도 더욱 안전한 타협의 선을 찾을 수도 있을 거다. 만화가를 비롯해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기자 역시 마감이란 제도하에 있고, 그 끝에서 자신의 질을 깎곤 한다. 이때 “놀고 있다”는 오해는 내색할 수 없지만, 서글플 때가 있다. 그저 지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