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인터뷰] '30년 주식인생' 김종철 대표가 전하는 주식으로 월급만들기 꿀팁

지수희 기자

입력 2016-07-14 17:21  


(▲사진= 김종철 주식정보라인 대표)

여의도에서 소위 `주식 잘한다는 고수`를 여럿 키워낸 김종철(58) 주식정보라인 대표. 김 대표와는 만날 약속을 정하는 것도 어려웠다. 저녁 7시부터 여의도에서 주식강의 스케줄이 있어 퇴근시간이 임박한 목요일 저녁 5시30분에 잠깐 짬을 낼 수 있다는 그를 한국경제TV 사옥에서 만났다. 사실 이 시간도 원래 중국어 학원에 갔어야 할 시간이란다. 짧은시간 밖에 허락하지 못한게 내심 미안했던지 함께 온 직원의 양손엔 김밥과 샌드위치, 바나나, 파이류, 물과 음료수가 가득 들려 있었다. 인터뷰가 끝나면 아마 김 대표도 여의도를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떼울 것이다. 늘 바쁘고 에너지 넘치는 김종철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LG를 뒤로 하고 주식시장으로..`벌써 30년`

그의 직장은 굴지의 대기업이었다. 그것도 그룹의 핵심인 기획부에 있었다. 매일 환율과 유가, 세계경제의 주요이슈를 수집해 상사의 책상에 올려놓는 게 그의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주식과 관련된 것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근무시간에는 깨지기 바빴다고 한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는 `무슨 주식을 사야하나`며 묻는 동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왕`이었다. 회사일보다는 주식투자를 더 열심히 했다. 근무시간에 `객장`에 있었던 적도 많았다고 털어놨다. 상사의 주식을 관리한다는 명분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80년대에는 가능했다.

80년대 주식거래는 지금과 많이 달랐다. 증권사 객장에선 확성기로 종목과 가격을 읊는 소리가 요란했고 아르바이트 학생이 방송 내용을 듣고 칠판에 분필로 받아적고 나서야 종목 시세를 알 수 있었다. 주문을 대신 넣어주는 오퍼레이터도 있었다. 매수는 빨간 종이, 매도는 파란종이에 적어 `오퍼레이터 아가씨`에게 건네면 주문이 체결됐다. 종이가 얼마나 더 앞에 있느냐에 따라 수익이 달라졌다. 그는 전략적으로 오퍼레이터 아가씨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사진=1970년대 말 분필로 쓴 종목 게시판 / 자료 : 한국거래소)

결국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 전문투자가가 됐다. `주식전문가`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을 때였다. 이후 그는 고승덕 변호사, 유수민 앵커 등과 함께 한국경제TV(당시 WOW TV) 초기 맴버로 방송에 출연하면서 어딜가도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스타대접을 받았다. 그 때부터 그의 주식인생이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 대박사건.. `피크 오일 이론`과 `조선주`

그의 대박주는 조선주다. 지금 조선주를 얘기하면 손사레를 치는 사람이 많겠지만 10년 전에는 세계경제 상황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 피크 오일 이론(peak oil theory). 원유생산 능력이 한계에 도달해 유가가 크게 오르고 세계경기는 대공황을 맞을 것이라는 이론이었다. 미국에서는 이에 대비해 실내온도를 적성선으로 유지하고 한 등 끄기 운동도 벌어졌다.

김 대표는 당시 현대중공업 주식을 5만원 대에 사들였다. 유조선이 단순히 기름을 운반하는데만 쓰이는 게 아니라 저장탱크로도 쓰이기 때문에 조선주가 피크 오일 이론의 수혜를 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조선주에 모든 걸 걸었다. 그야말로 `올인`. 대학 때부터 수업을 빠지고 포커를 치러 다닐 정도로 머니게임을 좋아했던 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다. 주식을 하는 동안 그 때가 가장 큰 승부였다고 김 대표는 회상했다.

5만원짜리 주식은 55만원까지 올랐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계속 상승이었다. 김 대표는 "숫자가 올라가는 것을 보면 팔고 싶을까봐 3년간 창을 잘 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때는 차트가 하늘 끝까지 올라갈 것 같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는 당해낼 수 없었다. 최고점에서 팔지는 못했지만 40만원대 후반에 팔면서 3년 전 걸었던 그의 모든 것을 약 10배의 가치로 회수했다.



(▲사진= 현대중공업 월봉 차트)

`얼마나 벌었냐`는 질문에 그는 대략적인 숫자를 말하는 것 조차 부끄러워했다. 단지 딸 하나를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공부시키고, 미국에 아내와 딸이 사는 집을 한 채 마련했으며, 자신은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는 기러기 아빠라고 했다. 그리고 압구정동에 사무실을 하나 갖고 있다고 했다.

기름은 고갈되지 않았고, 현대중공업의 주가는 30년 전의 두 배 수준을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김 대표는 집과 건물이 생겼다. 세계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꿰뚫어 본 결과다. 김 대표 말대로라면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파고 파고 또 파니 되더란다.

◇ 작전주와 사라진 기업 그리고 `골든크로스`

뭘 파고 파고 또 팠을까? 김 대표는 주가를 움직이는 비밀이 궁금했다. 한 손에는 기업의 재무재표를, 다른 한 손에는 차트를 들고 파고 파고 또 팠다. 스스로 공부한 결과 지금은 많이들 알고 있는 기술적 분석 지표인 `골든크로스`를 알아냈다. 또 골든크로스가 나타나더라도 주가가 상승하는 `돈골드`와 주가가 하락하는 `물골드`까지 구별할 수 있게 됐다. 15년 전의 일이다.

(편집자주) 골든크로스 : 주가나 거래량의 단기 이동평균선이 중장기 이동평균선을 아래에서 위로 돌파해 올라가는 현상. 이는 강력한 강세장으로 전환함을 나타내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스스로 주가를 움직이는 비밀을 알아내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작전주` 투자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휘청였던 적도 있었다. 눈앞에서 가만히 앉아 돈을 버는게 보였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작전주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했다. 한 때 대구 건설사로 이름을 날렸던 `청구`와 살인사건까지 벌어지면서 주가조작으로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공성통신`. 이 두 종목이 휴짓조각이 되면서 김 대표는 주식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었다.


(▲사진= 1995년 8월 22일자 경향신문 보도 / 출처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그는 한 동안 폐인으로 지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좌절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북에서 내려와 고생을 많이 한 부모님과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다시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대표는 이 대목에서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무슨 기억이 떠올랐는지, 쉽지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만 보고 시집 온 아내와 딸을 생각하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그 경험으로 김 대표는 `틀림없다, 확실하다`는 말을 믿지 않게 됐다. 아픈 경험의 가치는 모두가 실망하는 장에서 빛을 발했다. 최근 브렉시트로 시장이 출렁이는 그 때 김 대표는 오히려 재미를 봤다. 결과 발표 당일 아침까지도 출구조사 결과는 영국이 잔류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김 대표는 다수가 `확실하다`고 하는 것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수와 반대로 배팅했다. 실패를 경험했기에 얻은 교훈이었다.



◇ 30년 주식인생, 김종철이 전하는 주식으로 월급만들기 꿀팁

김 대표는 사람이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컴퓨터가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도 타이밍이 분명한데도 밑졌으니 던지지 못하는 심리, 상승장에서 더 오를 수 있는데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적은 이익만 보고 빠져나오는 오류를 냉철한 컴퓨터가 조언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다. 2006년의 일이다. 10년 전 알고리즘 매매시스템을 개발했고 2008년에는 인공지능 차트를 개발해 여러 증권사가 그의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김 대표는 이미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주문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골리앗을 이기려면 그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필수다. 준비되지 않은 매매, 즉흥적인 매매는 절대 해선 안된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처음 주식을 시작할 때는 시장을 살펴보고 나름대로 분석을 해보는 등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재미가 있으면 주식을 해도 된다. 그 다음에는 탄탄한 기업들을 위주로 투자를 시도하는 것이 좋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괜찮은 기업을 찾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월봉 6개월선이 상승세인 기업들이 대체로 본질가치가 좋은 기업이라고 김 대표는 설명했다. 좋은 기업들을 지켜보다가 그 종목이 장대양봉을 기록하는 날이 있으면 그 다음 날이 바로 투자 적기다. 우량기업에 기관과 외국인이 자금을 투입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 대표는 종목투자 외에도 매달 월급을 만들어야하는 직업투자가들에게는 종합주가지수와 연결된 매매를 시도해 볼 것을 권했다. 인버스와 레버리지, 선물옵션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우리나라 종합주가지수는 49개월을 주기로 31개월 동안 상승하고 18개월은 하락하는 사이클을 갖고 있다. 종합주가지수의 상승, 하락 에너지가 강한 장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약한장에서는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방법으로 김 대표는 짭잘한 재미를 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진= 김종철 대표의 여가생활)

김 대표는 일상에서 주식을 뺀 대부분의 시간을 문화센터에서 보낸다. 유명 마술사에게 마술도 배웠고 사람들 만날 일이 많아 와인도 배웠다. 기러기 아빠로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지침을, 급한 성격을 고치려 바둑도 했다. 피트니스센터에선 5년 넘게 꾸준히 개인트레이닝을 받고 있고 살사댄스도 배웠으며 최근엔 스피닝에 빠져 있다. 당연히 요즘 트랜드인 중국어도 놓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그는 늘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공부한다.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공부 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여러차례 했다. 미래에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고 했다. 이미 주식고수를 여럿 키워낸 그이지만 체계적으로 학교를 세워 후배를 양성하고 싶다고 했다. 또 그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 그대로를 프로그램으로 구축해 컴퓨터 전원만 켜면 스스로 매매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도 했다. 30년을 주식시장에서 보냈지만 앞으로 30년의 그림이 벌써 그의 머릿속에 있었다.



주식투자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초년병 시절, 김 대표는 워렌 버핏의 투자원칙(첫째,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 둘째, 첫째 원칙을 반드시 지켜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주식시장에서 손실을 보지 않는다는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30년간 주식시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그의 생각은 어느 새 워렌 버핏의 투자철학과 많이 닮아 있다. 그는 투자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상승장에서는 많이 벌고, 하락장에서는 조금 벌어야 한다. 딸 수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라면 결국 잃는다. "

공부를 통해 골리앗을 이길 전략을 세우는 것이 김종철 대표가 말하는 돈을 버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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