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만능시대 끝나간다··옐런·드라기·구로다·이주열의 운명은

입력 2016-11-28 08:58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려 8년간 추진해 왔던 울트라 금융완화정책이 균열조짐을 보이면서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의도했던 경기부양효과가 나타나지 않음에 따라 중앙은행과 중앙은행 총재에 대한 신뢰가 종전만 못하다. 동원 가능한 통화정책 수단도 바닥이 나 앞으로가 더 문제다.

중앙은행이 금융위기 극복과 경기부양을 위해 가져갈 수 있는 정책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정책(기준)금리를 변경하는 ‘금리 정책’과 시중 통화량을 조절하는 ‘유동성 정책’이다. 적용범위에 따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양적/보편적 정책’과 특정 부문만을 겨냥하는 ‘질적/선별적 정책’으로 구분된다.


모든 금융위기는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순으로 거친다.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이 순서대로 부족한 유동성을 극복하고 위기를 낳게 한 체질을 개선하면 실물부문에 자금이 들어가 경기가 회복된다. 지난 8년간 각국 중앙은행은 최우선 선결과제인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통화량 위주의 양적/보편적 정책’을 추진해 왔다.

‘위기극복 3단계론’으로 볼 때 현 시점에서 유동성 위기는 극복됐으나 금융시스템을 복원하고 실물경기를 회복하는 일은 아직도 요원하다. 첫 단계인 유동성 위기 극복과제도 이제는 출구전략을 시행하거나 논쟁이 거세지는 점을 감안하면 양적완화로 상징되는 통화공급 정책은 마무리해야 한다.

양적완화정책 자체도 더 이상 매입할 국채가 없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차선책으로 거론되는 만기 50년 이상 영구채(console)를 발행해 중앙은행이 사주는 ‘국채 화폐화’ 방식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하는 등 부작용이 커 추진하기가 어렵다. 유럽중앙은행(ECB)과 일본은행(,BOJ)은 더 이상 양적완화를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통화정책 주안점이 ‘통화량’에서 ‘금리’로 변경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ECB와 BOJ를 중심으로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극단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제도는 은행이 자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 쉽게 영업하지 내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출을 도모하라는 취지에서 추진된 조치다.

경험국의 사례를 보면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민간예금의 마이너스 금리로 귀착된다. 민간이 예금할 때 마이너스 금리인 수수료를 낸다면 여유자금을 은행에 예치하기보다 소비하면 경기가 살아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 상황이 발생한다. 오히려 마이너스 금리 도입 이전에 예치했던 예금까지 인출해 시장에서 퇴장시킨다. 이때 고액권이 선호되면서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떨어져 경기가 더 침체된다.


고액권 회수율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에서 100달러 회수율은 2013년 82%에 달했지만 2014년에는 75.3%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 500 유로 역시 102.1%에서 88.7%로 급락했다. 한국은 더 심하다. 지난해 5만원권의 회수율은 40.1%(한때 25%대까지 급락)에 그쳐 미국과 유로존의 절반수준에 불과하다.

금융권에서 돈이 아예 퇴장되면 경제활력이 떨어진다. 마이너스 금리제도 도입 이후 유럽,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활력지표인 통화유통속도(국내총생산(GDP)/통화량(M2))와 통화승수(통화량(M2)/본원통화량)가 떨어지는 추세가 뚜렷하다. 각국 중앙은행이 가장 고민하는 대목이다. 미국 중앙은행(Fed)도 마찬가지다.

마이너스 금리제도는 정책무력화 명제와 같은 연관이 있다. 통화정책의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함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간의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공급→금리인하→총수요 증가→경기회복)’가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이 제로금리 정책을 일제히 추진함에 따라 이제는 경기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싶어도 더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 한 나라의 적정금리를 따지는 피셔 공식, 테일러 준칙, 수정된 테일러 준칙 등 어떤 방안으로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크게 낮게 나온다.
항상소득가설(밀턴 프리드먼), 생애주기가설(안도/모딜리아니) 등 소비이론에 따르면 미래가 불확실해질수록 그만큼 기대소득(항상소득)이 높아져야 소비를 늘릴 수 있다. 마이너스 금리제 등은 기대소득을 낮추는 요인으로 소비보다 저축을 늘리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난다. 미래 불확실성을 줄여줘 통화정책 전달경로가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 근본처방이다.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정책이 효과가 없자 BOJ가 지난 9월에는 시장금리를 조절하는 정책을 마지막으로 동원했다. 이른바 수익률 곡선(yield curve) 상에 장단기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절해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이다. 시장을 직접 개입하는 것은 통화정책에서 가장 위험스런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국제시각은 부정적이다.

특정국의 수익률 곡선을 설명하는 이론으로는 ‘기대 가설’,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 ‘시장분할 이론’이 있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유동성 프리미엄 가설에 따르면 만기가 긴 채권일수록 위험이 높아 이를 보전해 줄 수 있는 프리미엄을 얻어줘야 수급 상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것이 정상이다.

시장 참여자에게 수익률 곡선은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을 때는 ‘단저장고’, 그 반대의 경우 ‘단고장저’라는 용어로 익숙해져 있다. 경기와 연관시킨다면 전자가 발생할 때는 ‘회복’, 후자가 발생할 때에는 ‘침체’로 받아들여진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이 방법을 통한 경기 판단과 예측이 잘 맞아 종종 경기부양수단으로 활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 국가는 수익률 곡선의 평준화 현상이 발생했다. 세계경제 저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특히 일본처럼 강도 있는 양적완화를 추진한 국가는 장단기 금리 간 역전현상이 발생했다. 시중에 돈을 풀기 위해 장기채를 중심으로 매입하면 채권가격은 올라가고 반비례 관계가 있는 금리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단고장저의 수익률 곡선을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두 가지 방안이 있다. 하나는 단기채를 매입(단기채 가격상승?단기금리 하락)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장기채를 매도(장기채 가격하락?장기금리 상승)하는 방안이다. 후자는 장기채 매도 과정에서 유동성 위축이 불가피해 양적완화를 추진하고 있는 BOJ로서는 가져가기 힘들다.

단기금리를 너무 낮추는 것도 문제가 있다. 올해 1월말 정책금리를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뜨린 여건에서 수익률 곡선의 정상화만을 위해 단기금리를 정책금리보다 더 떨어뜨리면 정책금리의 시장금리 조절기능을 무력화시키는 등 또 다른 부작용이 노출되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조정을 통한 경기부양은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 만능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입지도 크게 약해져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은 눈에 띠지 않는다. 경제정책의 주안점도 ‘큰 정부론(big government)’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앞으로 재닛 옐런(Fed), 마리오 드라기(ECB), 구로다 하루히코(BOJ), 그리고 이주열( 한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한상춘 <a href=http://sise.wownet.co.kr/search/main/main.asp?mseq=419&searchStr=039340 target=_blank>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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