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의 재판을 `보이콧`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법정에 제출된 증거에 대한 의견을 재판부에 직접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에겐 국선 변호사들이 선임돼 있지만, 이들과의 접촉은 거부한 채 직접 몇몇 서류의 증거 사용에 동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증거 채택과 사용에 동의하면 향후 재판부가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검토를 거쳐 결정하는 게 통상적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현재 공식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인들과는 상의 없이 일단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누구와 상의했는지, 어떤 판단에 따른 것인지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11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속행 공판에서 "박근혜 피고인 본인이 기존 의견을 바꿔 일부 증거를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한다는 의견서를 직접 제출했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의견서를 직접 재판부에 낸 건 불출석 사유서 외에 처음이다.
박 전 대통령이 동의하겠다고 의견을 바꾼 증거 서류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구본무 LG 회장, 허창수 GS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소진세 롯데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의 검찰 진술조서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사선 변호인단이 재판을 맡을 당시 이들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삼는 데 동의하지 않아 당사자들을 직접 법정에 부를 예정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이 증거 서류에 동의한 만큼, 검찰이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면 이들에 대한 증인 신문은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은 "증거 인부(인정·부인)서를 지금 받았기 때문에 이른 시일 내에 의견을 말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유영하 변호사 등이 증인으로 신청했던 증인 5명에 대해서도 박 전 대통령은 증인 신청을 철회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 의사가 명확해서 본인이 증거 채택에 동의한 것은 모두 증거로 채택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의견서를 낸 데에는 불필요하게 재판을 지연시키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 때문에 기업 총수들이 법정에 다시 불려 나와 증언하게 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다시 한 번 밝힌 것으로도 해석된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16일 재판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국가 경제를 위해 노력하시던 기업인들이 피고인으로 전락해 재판받는 걸 지켜보는 건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며 "모든 책임은 저에게 묻고 저로 인해 법정에 선 공직자와 기업인에게는 관용이 있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을 접견하지도 못한 채 변론 중이던 국선 변호인들은 재판 도중 이 같은 소식을 접하고 다소 당혹스러운 기색을 보였다.
재판을 마친 한 국선 변호인은 박 전 대통령의 의견서 제출에 대해 "재판 중에 알게 됐다"며 "아직 (철회되지 않은) 증인들이 남아 있다. 피고인 방어권 차원에서 (증인 신문을) 최대한 길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달 16∼25일 검찰 측 신청 증인 신문을 이어간다.
국선변호인 측이 신청한 증인인 최순실씨,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에 대한 증인신문은 이달 말 이뤄질 예정이다. 이는 "이들에 대한 1심 선고가 다음 달 13일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 선고 이전에 증인신문을 해달라"는 재판부 요청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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