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간)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카를 라거펠트는 그야말로 패션계 `제왕`이었다.
하얀 꽁지머리와 검은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우아하지만 다소 딱딱했던 샤넬에 새 바람을 불어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직돼 보이는 트위드 정장에 다양한 장식을 가미거나 데님 등 젊은 소재를 결합하고, 화려하면서도 위트있는 액세서리를 사용하는 등 보수적인 샤넬에 혁신적이며 현대적 감각을 더해 젊은 층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1933년 9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라거펠트는 학창 시절 학교 수업보다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는 것을 더 좋아했다.
1950년 함부르크에서 열린 디올의 패션쇼를 보고 마음을 빼앗긴 그는 3년 뒤 패션 디자인의 `수도`인 프랑스 파리로 건너와 피에르 발맹에서 수습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패션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파투, 클로에, 펜디 등에서 일하며 이들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 브랜드 펜디와는 무려 54년간 작업했다. 펜디를 상징하는 두 개의 `F`가 맞물린 로고도 그의 작품이다.
라거펠트가 샤넬과 인연을 맺은 건 1983년이다.
지금이야 샤넬과 그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해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수석 디자이너에 독일인이 임명됐다는 사실에 반발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9세기형 패션과 브랜드 컨셉트를 일거에 쇄신하는 `브랜드 혁명`으로 일으키며 실력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그해 1월 샤넬의 데뷔 무대에서 그는 `죽은 샤넬을 환생시켰다`는 호평을 받으며 `카를 라거펠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현대적인 감각의 지적이고 섹시한 여성스러움을 추구한 그의 디자인은 이후 35년 동안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아왔다.
무채색이 주를 이루던 정장에 화려한 색상을 더하고, 과감한 재단선과 옷감을 사용하면서 샤넬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미래 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그는 샤넬의 책임 디자이너로 있으면서도 펜디와 클로에 등 다른 브랜드는 물론, 자신의 이름을 딴 여러 브랜드의 옷을 디자인하며 전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 지위를 누렸다.
그는 독일어로 황제와 명장을 의미하는 단어를 붙여 `카이저 카를`, `패션 마이스터` 등으로도 불렸다.
패션계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1986년 황금골무상을 받았고 2010년 6월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았다.
라거펠트의 창의성은 패션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았다.
사진과 광고, 단편 영화 등 여러 분야에서 에너지를 쏟았다.
특히 전문 사진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아날로그 카메라부터 폴라로이드, 최신형 디지털카메라까지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며 상업성과 실험성을 갖춘 작품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도 사진전 `리틀 블랙 재킷`을 연 바 있다.
팝아트 선구자 앤디 워홀과의 친분으로 워홀의 영화 `아무르`(L`Amour)에 등장하기도 했다.
왕성한 독서가로도 알려진 그는 파리 아파트에 보유한 장서만 30만 권에 달한다. 2011년에는 독일의 유명 출판업자 게르하르트 슈타이들과 함께 책을 공동으로 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분야를 막론하고 종횡무진 활약하던 라거펠트의 와병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건 올해 들어서부터다.
늘 열정적으로 패션쇼 무대를 지키던 그가 지난 1월 열린 샤넬 오트 쿠튀르 쇼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당시 샤넬의 대변인은 춥고 눈이 내리는 날씨 탓에 불참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서 패션을 담당해온 제스 카트너 몰리는 "지난해 12월만 해도 뉴욕으로 여행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지난달 그는 파리 자택과 불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샤넬 쇼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라거펠트는 췌장암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의 투병 사실을 그간 측근만 알 정도로 비밀에 부쳐졌다.
평소 워커홀릭으로 유명했던 그는 투병 중이던 최근까지도 내달 열릴 예정인 여성복 패션쇼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독신이었던 라거펠트는 젊은 시절 만난 동성 파트너 자크 드 바셰와 18년간 함께했다. 그가 평소 영감의 원천이라고 했던 바셰는 1989년 에이즈로 숨졌다.
라거펠트 인생의 또 다른 `동반자`는 고양이 `슈페트`다. 도도한 이미지의 슈페트는 광고 모델로도 활동하며 많은 팬을 보유한 스타다. 그는 2013년 만일 법이 허락했다면 슈페트와 결혼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애정을 나타냈다.
라거펠트는 그러나 패션계에서의 영향력만큼이나 거침없는 발언으로 비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깡마른 몸매의 모델만을 선호하고 여성 유명인들의 외모를 비하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라거펠트는 마른 모델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뚱뚱하고 감자 칩만 먹어대는 미라들"이라며 "둥그스름한 여자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주장해 거센 반발을 샀다.
영국의 팝가수 아델에게는 "좀 너무 뚱뚱하다"고 말했고,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빈의 여동생인 피파 미들턴에 대해서는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등만 보여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인조 모피 대신 진짜 모피를 애용하면서 동물 단체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그의 부고가 전해진 직후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는 트위터에서 "카를 라거펠트가 떠났고 그의 죽음은 모피와 이국적인 가죽이 탐나는 것으로 여겨졌던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며 "PETA는 우리 오랜 적수의 유족에게 애도를 보낸다"고 비아냥댔다.
2017년에는 독일 등 유럽에서 난민 문제가 이슈가 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난민 수용 정책을 비판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거구였던 라거펠트는 2000년대 유행했던 날씬한 핏의 디올 옴므 수트를 입기 위해 급격한 다이어트를 진행, 몰라볼 정도로 홀쭉해지면서 화제가 됐다.
그는 하루에 다이어트 콜라 10캔은 마셨지만 설탕과 치즈, 빵은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이후 그는 다이어트 콜라와 협업을 하기도 했다.
라거펠트는 한국과도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그는 샤넬이 지난 2015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크루즈 컬렉션을 열었을 때 한복 원피스 등 한국적 미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해 프랑스 국빈방문 시 입은 한글 트위드 재킷도 라거펠트가 디자인해 크루즈 컬렉션에서 소개된 작품이다.
이 재킷은 검은색 바탕에 `한국` `서울` `코코` `샤넬` `마드모아젤` 등 한글을 흰색으로 직조한 원단으로 만든 의상으로, 당시 라거펠트는 한글의 조형미를 극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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