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에서 두 번째로 큰 우리의 교역 상대국인 영국은 현재 한·EU FTA의 적용을 받지만 최악의 경우인 노딜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일어나더라도 그로 인한 통상 공백을 미리 차단하는 셈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방한 중인 리엄 폭스 영국 국제통상장관은 10일 서울에서 한·영 FTA 협상의 원칙적 타결을 공식 선언했다.
유 통상본부장은 "이번 한-영 FTA 원칙적 타결은 미중 무역분쟁 심화, 중국 경기 둔화 등 수출여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브렉시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기에 차단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폭스 장관도 "이번 타결을 통해 양국간 교역의 지속성을 마련한 것은 영국과 한국 기업들이 추가적인 장벽 없이 교류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라며 "향후 양국간 교역이 더욱 증가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아직 영국이 정식으로 EU에서 탈퇴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해 `임시조치(emergency bridge)` 협정이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협정은 한·영 간 통상관계를 기존 한·EU FTA 수준으로 이어감으로써 연속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산업부는 향후 시나리오를 ▲ 오는 10월 말 노딜 브렉시트가 발생할 경우 ▲ 영국과 EU 간 브렉시트 딜에 합의할 경우 ▲ 브렉시트 시한을 추가로 연장하는 경우 등 세 가지로 나눠 어떤 경우에도 한·영 FTA 발효를 통해 통상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대응할 방침이다.
현재 영국 의회에 브렉시트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 노딜이 현실화하는 경우에는 이번에 타결한 한·영 FTA의 국회 비준을 오는 10월 31일까지 마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11월 1일 브렉시트 돌입과 함께 곧바로 한·영 FTA도 발효돼 적용된다.
이런 조치가 없다면 한·EU FTA 혜택에 따라 무관세로 영국에 수출하던 자동차 등 한국산 공산품의 관세가 갑자기 10%로 뛰게 된다.
브렉시트 후에도 영국에서 생산되는 아일랜드 위스키를 영국산으로 인정해주고, 영국에서 수입하는 맥주 원료 맥아와 보조사료 등 2가지 품목에만 저율관세할당(TRQ)을 부여하는 내용이 기존 한·EU FTA와는 다른 부분이다.
원산지 문제에서도 영국이 유럽에서 조달하는 부품도 최대 3년 시한으로 영국산으로 인정해주는 등 브렉시트 충격파를 줄였다.
운송과 관련, EU를 경유한 경우에도 3년 한시적으로 직접 운송으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EU 물류기지를 경유해 수출해도 협정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양국은 한·영 FTA를 추후 한·EU FTA보다 높은 수준의 협정으로 업그레이드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산업부 여한구 통상교섭실장은 "이번에 합의한 한·영 FTA가 한·EU FTA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1.0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며 "발효후 2년이 지나면 재검토해 한·영 FTA `2.0 버전`으로 협상을 다시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여 실장은 이어 "이번 협정은 영국이 브렉시트에 대비해 아시아권에서 체결한 첫번째 주요 FTA로 스위스, 노르웨이 등 다른 유럽국가와 맺은 FTA보다 더 진전된 내용이 담겼다"며 "한·영 FTA 2.0 버전에는 한·EU FTA에 근거가 부족했던 투자자 보호 등 높은 수준의 투자협정이 담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영 양국은 또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 산업기술혁신, 수소경제 등 에너지, 자동차, 중소기업, 농업 등 5대 전략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영국은 한국의 18위 교역국으로 교역량도 우리나라 전체의 1∼2% 밖에 안되지만 EU와 연계된 심리적 효과는 훨씬 크다. 브렉시트 상황이 유럽 전체에 큰 불확실성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17년 2월 이후 7차례에 걸친 무역작업반 회의 등을 통해 영국과 FTA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날 합의 선언식 후에는 협정문 검독 및 서명절차, 한·영 FTA 서명식, 국회보고·비준동의 절차를 늦어도 10월31일까지 거쳐야 공식적으로 FTA가 발효하게 된다.
(연합뉴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