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큰별지다"…'럭키금성' 글로벌 'LG'로 키운 구자경 명예회장

이지효 기자

입력 2019-12-14 13:08   수정 2019-12-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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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과 고 구본무 LG회장(오른쪽)이 담소하고 있는 모습

1970년부터 럭키금성그룹 회장을 맡아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으로 꼽히는 고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별세했다.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

이에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기로 했고,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고 구자경 명예회장은 구인회 LG 창업주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 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기업 경영에 전념했다.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으로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으로 꼽힌다.

LG 창업주 연암 구인회 회장이 62세를 일기로 1969년 12월 31일 타계함에 따라 구 명예회장은 1970년 1월 9일 LG그룹의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공장에서 20년 간 생산현장을 지키다 서울로 근무지가 바뀐 지 불과 1년여 만에 부친의 유고로 마음의 준비 없이 회장 자리에 올랐다.

구 명예회장은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나라 안팎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화학·전자 산업 강국을 위한 도전을 펼쳤다.

고인은 자율 경영체제 확립, 고객가치 경영 도입, 민간기업 최초의 기업공개, 한국기업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 설립 등 기업 경영의 선진화를 주도했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스스로 회장의 자리에서 물러나 임종을 맞을 때까지 자연인으로서 소탈한 삶을 보냈다는 평가다.

이후 인재 양성을 위한 공익활동에 헌신하는 열정으로 충만한 여생을 보냈다.

슬하에 장남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훤미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고문, 구미정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 4남 2녀를 뒀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끈 25년 동안 LG그룹 매출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

1970년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그룹은 럭키와 금성사, 호남정유 등 8개사에 연간 매출이 270억원이었다.

범한해상화재보험과 국제증권, 부산투자금융, 한국중공업 군포공장, 한국광업제련 등을 인수하고, 럭키석유화학(1978년), 금성반도체(1979년), 금성일렉트론(1989년) 등을 설립했다.

당시 구 명예회장은 꾸준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고, 해외 진출을 통해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덕분에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구 명예회장은 70세이던 1995년 `21세기를 위해서는 젊고 도전적인 인재들이 그룹을 이끌어야 한다`며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을 넘겨줬다.
고인이 경영에서 물러날 당시 LG는 30여개 계열사에 매출액 38조원의 재계 3위 그룹으로 성장했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을 강조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 확보에 주력해 회장 재임 기간에 설립한 국내외 연구소만 70여 개에 이른다.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나서 중국과 동남아시아, 동유럽, 미주 지역에 LG전자와 LG화학의 해외공장 건설을 추진해 그룹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 해외 기업들과의 합작 경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선진기술 확보에도 힘썼다.

지난 1974년 금성통신과 지멘스와의 합작을 비롯,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을 이뤘다.

특히 구 명예회장은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의 권한을 이양하고 이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하는 `자율 경영체제`를 그룹에 확립했다.

국내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기업 공개를 하며 투명경영을 외쳤고, 철저한 고객 중심 경영을 표방해 고객 제일주의 정신을 그룹 전반에 심었다.

고인은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교육 활동과 공익재단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관여해 왔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을 재직하면서 연암공업대학과 천안연암대학 등을 지원해 기초산업 분야 전문인력을 육성했다.

또 LG복지재단을 통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사회공헌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아울러 충남 천안에 있는 천안연암대학 인근 농장에 머물면서 된장과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

1970년 1월, 취임 당시 구자경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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