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경고했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의 죽음 이후 중국 지식인 사회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들끓고 있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지식인 수백 명은 최근 중국 의회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 `표현의 자유 보장` 등 5대 요구를 수용할 것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서에 서명했다.
5대 요구는 ▲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것 ▲전인대에서 이를 논의할 것 ▲리원량의 사망일인 2월 6일을 `언론 자유의 날`로 지정할 것 ▲누구도 연설·집회·편지·통신으로 인해 처벌·위협·심문·검열·감금되지 않도록 할 것 ▲우한과 후베이성 주민에게 공정한 대우를 할 것 등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 후 `당의 영도`를 내세우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의 끈을 단단히 조였던 것을 생각하면 이는 사실상 시진핑 정권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홍콩 민주화 요구 시위 때마다 시위대가 외쳤던 `5대 요구 하나도 빼놓을 수 없다`라는 구호도 연상시킨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공식 철회,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리원량은 중국 우한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오히려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려 경찰의 처벌을 받았으며, 이후 환자 치료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돼 최근 사망했다.
이 청원은 온라인에서 급속히 유포되고 있지만, 서명에 참여한 지식인 중 일부는 벌써 중국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중국 최고의 명문 대학인 칭화대학 법학 교수인 쉬장룬(許章潤)으로, 그의 위챗(微信·중국판 카카오톡) 계정은 최근 차단돼 더는 접근할 수 없다.
그는 최근 여러 해외 웹사이트에 게재된 `분노하는 인민은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글을 통해 신종코로나 초기 대응이 실패한 것은 중국에서 시민사회와 언론의 자유가 말살됐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쉬 교수와 함께 위챗 계정이 차단된 칭화대 사회학 교수 궈위화(郭于華)는 "우리의 목소리가 멀리 퍼지기 전에 탄압을 받겠지만,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일어나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당국이 `정치적 안정`을 내세우면서 리원량 등의 경고를 유언비어로 치부하고 억누른 것을 지적하며 "이러한 경고가 더 일찍 들릴 수 있었다면 사태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첸판(張千帆) 베이징대학 법학 교수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야말로 공중보건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이며, 이러한 권리를 얻기 위해 싸우고자 이번 서명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샤오수`라는 필명으로 널리 알려진 저명 언론인 천민은 "이번 서명에 참여한 것은 중국의 미래를 바꿀 중대한 시기에 양심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며 "2008년 쓰촨 대지진보다 훨씬 중대한 국가적 위기를 맞아 일어서지 않는 것은 지식인으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짓"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너무나 이성적인 요구를 담은 청원서에 서명했다고 해서 이를 탄압하는 것은 제정신을 잃은 행태"라며 "이는 대중의 분노만을 더욱 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중국 당국은 검열 강화로 일관하고 있다.
리원량을 추모하고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글들은 곧바로 당국에 의해 삭제됐으며, 수많은 위챗 계정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정지당했다. 의료계에는 코로나19에 대해 일절 얘기하지 말라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중국 소셜미디어 더우반(豆瓣)은 봉쇄령이 내려진 신종코로나 발원지 우한 주민들이 자신들의 암울한 상황을 `일기` 형식으로 전하는 코너를 운영했으나, 이 코너도 이유 없이 폐쇄됐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ddehg@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