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와 시공 겸하겠단 것, 검사가 변호사까지 맡는 꼴"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

전효성 기자

입력 2020-04-30 11:42   수정 2020-07-02 12:59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인터뷰
공정위, 시공·설계 분리 '과도한 규제' 지적
건축사協 "시공사에게 과도한 권한 쥐어줘"
"1만 3천 건축사무소 줄도산 우려"
탄원서 제출·건축단체 합동 기자회견 예고
`전효성의 시크릿 부동산`은 한국경제TV 전효성 기자가 건설·부동산 취재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된 코너입니다. 짧은 분량의 방송 기사에서 미처 담지 못한 숨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는 올해 주요 업무추진계획에서 건축 설계(건축사무소)와 건설 시공(건설사)의 분리를 대표적인 `칸막이 규제` 사례로 짚었다. 10여 년 간 이어져 온 `시공·설계 겸업` 논란이 다시금 수면위로 올라온 셈이다. 공정위의 업무계획대로 규제가 완화된다면 시공 업무를 맡은 건설사가 설계 업무까지 겸할 수 있게 된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은 "설계와 시공, 건축과 건설은 엄연히 영역이 다르다"며 "이를 겸하게 하는 건 검사에게 변호사 역할까지 맡게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달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0년 주요 업무추진계획 중 일부. 공정위는 건축설계와 시공의 분리를 칸막이 규제로 보고 이를 완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Q.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시공과 설계를 분리한 현행 제도를 `과도한 규제`로 해석했다.

"이런 현실을 보며 우리 건축계는 참담함을 느낀다. 설계와 시공은 엄격히 분리돼 있어야 한다. 역할 자체가 다르다. 시공·설계 겸업 논란은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건설업계는 시공과 설계를 같이 하겠다는 요구를 10여 년 전부터 계속해왔다. 건축계는 그때마다 나름의 명분으로 정부 기관을 설득하고 건축계가 힘을 합쳐서 막아왔다. 또다시 이런 논란(시공·설계 겸업)을 보면서 우리 정부나 사회가 건축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건축계에는 악재지만 이런 계기를 통해서 자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Q. 현행 제도상에서는 건설사가 설계업을 할 수 없는 건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건설업계가) 지속적인 요구를 하다 보니까 정부가 일부 요구를 수용한 부분이 있다. 건축사 20명을 고용하면 시공·설계 겸업이 가능하게끔 여지를 뒀다. 건축계는 이조차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여러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해서 수용을 했다. 하지만 공정위에서 시공·설계 겸업 문제를 또다시 수면위로 끌어올린 건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진다. 건축업계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리 건축 문화의 근본을 흔드는 일이다. 성명을 발표하고 또 끝까지 이를 막는 노력을 할 생각이다."

Q. 이번 문제는 공정위의 업무추진계획에서 시작됐다. 이후 공정위와 추가로 오간 얘기가 있나.

"공정위는 `시공과 설계의 분리`를 과도한 규제로 봤다. `업종 간에 칸막이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이 근거였다. 공정위 업무의 본질인 공정한 경쟁, 공정한 평가, 대기업군의 과도한 진입을 막는 것에 배치되는 정책을 내놓은 거라 평가한다. 설계와 시공의 속성을 잘 모르는 것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한 달 전쯤 대한건축사협회와 건축단체 대표들이 공정위를 방문해서 건축계 입장을 전달했다. 지금까지 추가로 나온 내용은 없지만, 공정위가 조금 더 깊은 논의와 검토를 거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근
Q. 만약 시공과 설계를 겸할 수 있게 되면 어떤 부작용이 예상되나.

"건축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다. 법조계에 변호사가 있고 검사가 있다. 검사가 변호사 역할을 하거나, 변호사가 검사의 역할을 할 수 없다. 의료계에서도 약사와 의사가 서로 역할을 겸할 수 없지 않나. 건물을 짓는 것도 마찬가지다. 설계, 시공, 감리 이렇게 셋으로 역할이 나뉜다. 설계와 감리는 시공자가 건물의 안전성이나 공익에 유해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는가를 검토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공사가 설계업을 겸할 수 있게 되면 이런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전체 공사 예산에서 설계 비용은 3~5% 정도다. 건설업계가 왜 설계업에 진출하려고 하느냐면 3~5%의 설계 비용을 아끼려는 게 아니다. 설계나 감리를 거치면서 견제당하고, 감독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시공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부 가져가면 훨씬 빠르고, 훨씬 쉽고, 훨씬 이윤을 많이 추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설계와 시공의 속성을 조금만 이해하고 있다면 이것은 과도한 규제가 아니라 정당한 견제라고 느낄 것이다."

Q. 만약 시공·설계를 겸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뀐다면 건축업계가 입을 타격은.

"말로 상상할 수 없다. 설계 업계의 생태계가 완전히 무너질 뿐 아니라 도산하게 된다는 예측이 가능하다. 현재 건설업체가 6만 7천 개가 있다. 건축사무소는 1만 3천 개 정도다. 약 4.7배 정도다. 건설업체 중에서 건축사를 20%만 고용한다고 하더라도 건축사무소가 존립할 명분과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시공·설계 겸업은 건축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속성을 해치는 문제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건축물의 안전에 극히 반대되는 정책이다. 또한 정부가 보호해야 할 중소업체, 사실 대부분의 설계업체가 영세하다. 영세업체를 보호해야 되는데 반대로 대기업군에 건축업계를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하는 거다. 설계 겸업 요구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동시대 건축인들은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 영상취재=채상균.
Q. 이번 `시공·설계 겸업 논란` 외에도 건축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면.

"이번 문제가 불거진 근본적 원인을 따져보면 외부적 원인도 있지만, 우리 스스로 문제도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건축의 진짜 가치를 국민과 사회에 알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하나의 건축물이 도시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라거나, 건축이 도시를 바꿔놓은 수많은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에 과연 그런 것이 있었나 생각하면 건축업계는 아직 많이 미흡하다. 또한 이번 문제를 딛고 건축계를 정상화 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후배들이 정말 열의를 가지고 건축계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장을 만들어주는 것. 그런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저희 건축계가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본다."

▶ 관련기사: 건축사協 "건설사 설계참여 금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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