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다중 규제에도 서울 집값이 좀처럼 쉽게 잡히지 않으면서 서울 외곽 지역에서도 아파트값이 9억원을 넘기고 보증금 5억원이 넘는 전세가 나오고 있다.
23일 한국감정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02% 올라 6·17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주간 단위로 전주(0.02%)에 이어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4구 아파트값 상승률이 2주 연속 0.00%로 보합을 기록하고 지난주 서울 모든 구의 상승률이 0.05% 이하에 머무는 등 통계상으로는 집값 상승세가 한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안정`을 말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특히 중저가·중소형 주택이 밀집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등 지역에서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으로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나면서 아파트값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던 9억원을 넘기고, 전셋값도 5억원을 뛰어넘는 등 가격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강북 대표 지역인 강북구 미아동의 미아동부센트레빌은 지난달 15일 84.93㎡(이하 전용면적)가 9억원(4층)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는 6월(8억4천800만원·3층)에 이어 한 달 만에 신고가 기록을 다시 쓴 것이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79.07㎡도 지난달 31일 9억원(4층)에 거래되면서 기존 최고가인 2월 8억8천만원(9층)보다 2천만원 오른 금액에 신고가 기록을 세웠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84.97㎡ 역시 최근 9억원에 거래되면서 지난달 3일 8억6천500만원(14층) 신고가 기록을 깼다.
금천·관악·구로구 등 한강 이남 지역의 중저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도 매매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힐스테이트 84㎡는 이달 12일 8억4천700만원에 국토교통부 실거래시스템에 등록되면서 신고가를 기록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아직 실거래 신고가 되지 않았지만, 이미 8억6천만∼8억7천만원에 거래가 이뤄졌으며 집주인들은 9억∼9억1천만원까지 값을 올려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관악구 봉천동 관악드림타운 84.96㎡도 지난달 11일 8억6천500만원(2층)까지 오른 값에 매매된 뒤 거래가 끊겼다.
집주인들이 8억9천만∼9억3천만원에 내놓은 물건이 6개 정도 있지만, 매도인과 매수자 간 눈치 보기가 치열한 상황이라는 게 현지 중개업소들 얘기다.
구로구 신도림동 대림3차 84.51㎡는 이미 올해 1월 8억9천500만원을 찍은 뒤 8억5천∼8억8천만원에 실거래가 이뤄졌고, 현재 호가는 9억5천만∼10억원 선으로 올라섰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규제 지역과 부동산 과세를 강화한 정부 대책 이후 매맷값 급등은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이지만, 전셋값 강세로 중저가 아파트 밀집 단지의 최고가 경신 사례는 지속되고 있다"며 "전세 임차 수요에 비해 입주 공급이 못 미치는 지역은 당분간 전셋값과 매매가격이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새 임대차법 시행에 따른 영향 등으로 전세가 품귀를 빚으며 전셋값도 좀처럼 안정되지 않고 있다.
한국감정원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주까지 60주 연속 상승했다.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79.07㎡는 이달 20일 보증금 5억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3월 중순에 기록한 이전 최고가 3억5천만원(9층)보다 무려 1억5천만원 뛴 것이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아파트를 중개하는 D 공인 대표는 "지난주 84.97㎡ 전세 물건이 5억원에 한 개 나간 뒤 이제 물건이 아예 없다"고 했다. 같은 면적 아파트는 6월 12일 4억1천만원(9층)에 전세 거래된 것이 기존 신고가였다.
강북구 미아동부센트레빌 전용 84.93㎡는 지난달 25일 보증금 5억1천만원(2층)에 전세 계약이 이뤄져 처음 5억원을 넘겼다.
미아동 M 공인 대표는 "이것 말고도 지난달에 같은 평형이 6억원에 거래된 걸로 안다"며 "집 전체를 수리한 전세 물건이었는데, 내놓자마자 바로 나갔다"고 전했다.
금천구 시흥동 남서울힐스테이트를 중개하는 K 공인 대표는 "지난달 84㎡가 보증금 5억5천만원에 전세 거래가 된 뒤 현재 전세 매물은 없고 호가가 5억5천만∼6억원 사이에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관악구 봉천동 관악드림타운 84.96㎡는 이달 5일 5억1천만원에 거래되면서 기존 신고가를 경신했고, 구로구 신도림동 대림3차 84.51㎡ 지난 21일에 5억5천만원에 거래돼 최고가 기록을 다시 썼다. 두 아파트 모두 현재 전세 물건이 하나도 없다는 게 인근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성북구 석관동 D 공인 대표는 "지금 전세는 씨가 말랐다. 매물이 하나도 없다. 월세 물건도 단 한 건도 없다"며 "새 임대차법 시행으로 기존 세입자들이 눌러 앉으면서 나올 물건도 나오지 않고 있고, 세입자가 나간다고 하면 집주인이 보증금을 미리 올려받으려 해 가격이 크게 뛴 상황"이라고 했다.
정부가 기대하는 다주택자·법인이 내놓은 아파트 매물도 눈에 띈다.
다만, 아직 이들이 본격적으로 보유 주택을 처분하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재산세 과세 기준일인 내년 6월 이전까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중개업소들 얘기다.
강북구 미아동 M 공인 대표는 "매매 물건으로 나온 것 3개 중에 다주택자 물건이 있고, 갈아타기를 하려는 분도 있다"며 "하지만, 지금은 다주택자들이 물건을 내놓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다"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성동구 금호동 한 중개업소 대표는 "지금은 저가 매물이 없고 급매물도 없는 상황"이라며 "전세가 오르면서 매매가격까지 밀어 올려 매수를 고민하는 분위기가 많아 다주택자들이 더 지켜보자며 여유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S 공인 관계자는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고 아직 시간이 있어 다주택자들은 일단 버티면서 관망하는 분위기"라며 "전세를 반전세로 돌려 세금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위기가 있고, 외곽에 보유한 주택 중 어떤 걸 처분해야 할 지 고민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구로구 신도림동 D 공인 대표는 "양도소득세 부담 때문에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내놓지 않으려 한다"며 "차라리 증여로 돌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세금 부담을 덜기 위한 법인의 주택 매도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법인의 아파트 매도는 8천278건으로, 전월(6천193건)과 비교하면 33.7% 증가해 올해 들어 최고를 기록했다.
반대로 법인의 아파트 신규 취득은 지난달 4천330건으로 전월(8천100건)보다 46.5% 감소했다.
다만, 법인의 매도량은 전체 거래량의 8%에 불과해 주택시장 안정에 영향을 크게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이휘경 기자
ddehg@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