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중고차사업 진출 찬반논란…'소비자보호' vs '독점'

입력 2020-10-12 18:01  

찬성 측 "돈 더 들더라도 현대인증중고차 사겠다"
반대 측 "車 판매 독점하려 하나…중고차 값 올리기"
"중고차 시장 자체 규모 키우는 방안 찾아야"
김동욱 현대자동차 전무가 지난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특허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해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의 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 신경훈 기자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반드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동욱 현대자동차 정책조정팀 전무는 현대차의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공식화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중고차 시장 진출 의사를 드러냈던 현대차가 처음으로 직접적인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현대차가 이처럼 직접적으로 중고차 시장 진출 의지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중고차 시장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 제외되기 직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중고차 시장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대기업 진출을 제한해왔습니다. 이 때문에 SK그룹은 2000년대부터 운영해오던 중고차 거래 플랫폼 `SK엔카`를 2018년 4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로 매각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중고차 시장은 중소규모 업체들 위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지난해 2월로 만료되고, 동반성장위원회가 재지정 부적합 의견을 내면서 분위기가 급변 중입니다.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할 중소벤처기업부도 최종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데요. 분위기가 오묘합니다. 중기부는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사업자 양측으로부터 상생협약안을 도출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사실상 재지정을 하지 않겠다는 거죠. 박영선 중기부 장관도 국감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문제보다, 독점을 어떻게 방지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라고 말한 걸 보면 이미 재지정은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듯합니다.
중고차 판매업이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지정되면서 2018년 4월 사모펀드 `한앤컴퍼니`에 매각된 SK그룹의 SK엔카

●찬성 측: "돈 더 들더라도 `현대인증중고차` 사겠다"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찬성하는 여론은 기존 중고차 시장에 대한 반발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허위 매물이나 침수차 유통 등 중고차 시장이 지속적인 논란에 휩싸여왔기 때문입니다. 이 중고차의 가격이 왜 이렇게 책정됐는지,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누적 주행거리가 얼마인지 등의 정보도 속 시원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게 지금의 중고차 시장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중고차 시장에 대한 불신은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하고 낙후됐다`라는 문항에 전체 응답자 4명 중 3명(76.4%)이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허위 매물 문제도 심각한 수준입니다. 경기도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중고차 매매 사이트 31곳을 조사한 결과 등록 차량의 95%가 허위 매물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허위 매물 피해는 보호도 쉽지 않아서, 고작 2% 정도의 소비자들만이 피해 구제를 받았습니다(한국소비자원의 1372소비자상담센터 통계). 이처럼 중고차 시장의 불투명성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입을 찬성하는 쪽은 "돈을 더 주더라도 완성차의 `인증중고차`를 사겠다"라는 의견을 내놓습니다. 이미 독일 3사과 일본(렉서스) 등 수입차 브랜드들은 딜러를 통해 인증 제도를 도입하고 중고차 시장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증중고차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중고차 가격에 비해 프리미엄이 붙지만, 신뢰도가 높은 덕분에 상당한 판매량을 자랑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의 2019년 중고차 거래량은 720만 대로, 신차 거래량(360만 대)의 2배를 기록했습니다. 중고차 거래량이 신차 거래량보다 고작 1.2배 큰 한국과 비교하면, 중고차 시장이 활발한 셈입니다.
BMW의 공식 인증 중고차 홈페이지. 사진출처: BMW 홈페이지 캡처

● 반대 측: "車 판매 독점하려 하나…중고차 가격 오를 것"
기존 중고차 업계를 필두로 한 반대 측은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허위 매물이나 침수차 등 논란을 일으키는 이들은 국토교통부의 관리 감독을 받는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의 회원사가 아닌 일부 업체라는 겁니다. 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에도 반발하고 있습니다. 취재 중 만난 연합회 관계자는 "자동차를 판매하거나 광고할 때 가격을 속이면 법적으로 처벌을 받는다"라며 "자동차 사고 유무와 성능점검 기록으로 고지하는 의무를 지키고 있다"라고 항변했습니다. 실제로 중고차 허위매물은 자동차관리법 제80조 5의3호에 따라 처벌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완성차 업체가 중고차 매매업에 뛰어들면, 판매부터 중고 거래로 이어지는 자동차 판매 주기 전반을 독점하게 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국은 제조사의 직접 판매 사업을 허용하는 몇 안 되는 나라입니다. 앞서 설명한 수입차 브랜드들은 `딜러를 통해` 중고차 시장에 `간접 참여` 중이지만 국내 완성차 5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한 법인이 신차도 팔고 중고차도 팔 수 있게 되는 셈인데, 이렇다 보니 신차 판매 촉진을 위해 슬그머니 중고차 가격을 올리는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 9월부터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국감에 참석한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장은 "현재 케이카가 한 달에 200~250건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 회원사들은 15대 정도에 불과해 굉장히 힘들다"라는 애로를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9월 7일 현대기아차 본사 앞에서 `현대기아차 중고차시장 진출 저지를 위한 집회 시위`를 연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사진출처: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 "중고차 시장 규모 키우는 방안 강구하자"
일단 현대차의 중고차 시장 진입 의지는 확고해 보입니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국감장에서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70∼80%는 거래 관행이나 품질 평가,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라는 통계를 직접 언급했습니다. 완성차 업체가 직접 중고차의 가치 산정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한 겁니다.

지난해 중고차 매매를 뜻하는 `자동차 이전등록` 건수는 377만여 건, 시장 규모만 20조 원이 넘는 수준으로 추산됩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하기엔 너무 큰, 대기업들도 군침을 흘릴만한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당장 대기업 진출이 허용될 경우, 현대차 외에도 한국GM·쌍용·르노삼성 등 중소 완성차 3사와 SK엔카를 잃었던 SK 등이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3천여 개 중소 규모 업체로 이루어졌던 시장에 빅 플레이어들이 등장하는 셈입니다.

업계에서는 중고차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방향으로 지금의 난국을 헤쳐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국 중고차 시장의 경우 신차와 중고차를 모두 판매하는 완성차 인증 중고차, 중고차만 판매하는 독립 딜러, 중고차 알선업체가 세분화돼있어 대형업체부터 중소업체까지 다양한 소비자의 수요에 대응해 상생하고 있다"면서 "필요하다면 중고차 공인 인증기관도 설립해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부도 대기업과 기존 중고차 사업자 양측의 상생협약안 도출에 집중할 것으로 보입니다.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국감장에서 "현대기아차가 중고차 판매업에 진입해서 이익을 낸다고 하면 이 일(상생협약안)은 성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소 규모 업체들의 수익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중고차 시장의 신뢰도를 올리는 방안을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과연 상생협약안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내용이 최종 도출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서울 장한평 중고차 시장. 사진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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