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때론 굼뜨게…라오스, 길에게 안부를 묻다 [K-VINA 칼럼]

입력 2021-08-31 13:54   수정 2021-08-31 18:06

길이 끝나는 곳에 새로운 길은 시작되고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듯
라오스에서 모든 길은 메콩강으로 통한다
온갖 삶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길
사람만의 것은 아니다
바람이 핥고 지나간 흔적 위에
닭과 소와 사마귀와 그리고 별과 구름까지
이들의 삶도 함께 있는 것이다

바람을 따라간 수많은 발자국들
모든 길은 바람의 통로였고
그래서 길은 처음부터 곡선이다
거센 열대바람에 날리는 먼지가루
지난 밤 폭풍우에도
어느 외딴 골목에서 잠시 멈춘 흙무더기들
시멘트로 단단히 포장되었지만
다시 뜨거운 한낮이 되면
더운 먼지 풀풀 날리는 동남아의 한쪽 귀퉁이
넓게 펼쳐진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무 그늘아래 졸린 눈 감은 뚝뚝이 기사
아직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아서
오토바이든 차량이든 개인 교통수단이 없으면
사람조차 만나기 불편한 라오스

지평선과 맞닿아 잡힐 듯 잡힐 듯 떠있는 뭉게구름
길가에 가로수처럼 피어있는 구름꽃송이
언제나 하늘은 최고의 포토존이다
좁은 길에 차와 오토바이와 뚝뚝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순도순
가끔은 소떼나 염소떼도 나와 함께 길을 맞춘다
천연덕스럽게 놀아나는 바퀴들의 느긋함
수십대가 늘어져도 추월차량이 없다
바쁜 날에는 속 터져 죽을 지경
계기판은 겨우 20Km를 찍고 있다
신호등이 없어도 술술 풀리던 사거리
최근들어 신호등이 세워지고
길이 더디어졌다고 불평하는 이도 있다
어디든 오토바이는 무법자
여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녹색등이라고 무조건 가서는 안된다고
일단 멈추었다가 가라고
오토바이가 언제 끼어들지 모르니 신신당부한다
빨간등은 눈치 봐서 잽싸게 가란다
노란등은 최대속도로 지나가란다
이곳 라오스에서 녹색등이 가장 위험하다는 우스갯소리다
어쩌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가장 위험하다는 교훈을 주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최고의 신호등은 눈치가 아니겠는가?

밤이 밤 같아 이상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
초저녁 하늘에 떠오르는 별과 그리고 초승달
창가엔 사시사철 풀벌레 울음소리
마치 깊은 산골마을에 온 것 같아
도심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가로등이 있어도 어둑어둑하여
두 눈 부릅떠도 보이지 않는 물체들
불쑥 트럭이나 오토바이가 나타나
심장이 덜커덩, 간이 콩알만해졌다
길 가운데 넋 놓고 있는 견공들
인기척에도 모른 체 한다
낯선 땅에서 한참을 가다보면
길이 맞는지 모를 때가 있다
차선도 있는 둥 마는 둥
마주오는 차가 있으면 어림잡아 비껴가야한다
웬만하면 좌회전은 깜빡이만 키고 있으면 된다
1차선을 4차선처럼
4차선을 1차선처럼
길은 좁아도 선택적 활용도가 얼마나 높은지
차선은 안전선이 아닌 참고선처럼
전방뿐 만 아니라 사방으로 곁눈질까지 해야한다

간혹 길가에 교통경찰이 서 있으면 가슴이 철렁
지은 죄도 없는데 왜 이리 떨리는지
이것은 만국공통사항인가 보다
차선위반이나 신호위반이나 속도위반 보다는
도로세를 내지 않았거나 무면허의 경우 잘 걸린다며
아무리 라오스 말을 잘해도
교통경찰에게는 절대 라오스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오랜 친구가 귀뜸해준다
외국인이라 잘 몰라서 그럴 수 있다는
관용을 바란다면 꿀 먹은 벙어리가 최고라며
어설피 아는 체 하지 말란다
길을 길로 연결되고
모든 길은 메콩강으로 통하는 라오스
천천히 때론 여유롭지만
그렇다고 안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은 어디나 도사리고 있다
전봇대를 받거나 길가로 굴러 떨어져
참혹한 오토바이의 사고현장도 자주 보았다
내 길만 간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지 않는가?
나만 똑바르다고 세상이 바른 게 아니듯이
이곳 라오스에서 집 앞을 나설 때마다
늘 기도문을 외우듯이 다니고 있다
오늘도 안전하게
이 하루의 생명도
오로지 내 손안에만 있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길에게 안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칼럼 : 황의천 라오스증권거래소 C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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