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들의 해외주식 거래액이 100조원이 넘었다". 지난달 초 한국경제신문 1면에 실린 기사를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다. ‘해외종목투자’라는 의미의 GBK(Global BroKerage)가 도입된 지 불과 4년이란 짧은 기간 안에 그것도 젊은 세대들이 주축이 돼 이룬 것이어서 우리 자본시장 앞날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GBK가 급신장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하나의 세계·하나의 시장·하나의 경제’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기업 활동과 투자 범위가 이제는 평평한 운동장이 됐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진전되고 있는 디지털 콘택트 시대에서는 더 그렇다. 지금은 국내와 해외를 구별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장도다.
다른 하나는 각국이 추진하는 산업정책의 대전환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전까지 각국의 산업정책은 임금 등 비용 여건이 낮은 입지를 찾아 밖으로 나가는 ‘글로벌 화전민식 전략’을 추진했다. 하지만 10년 간의 과도기를 거쳐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리쇼오링’ 정책으로 바뀌면서 밖으로 나간 자국 기업을 불러들이고 있다.
주식은 가치가 높은 기업을 찾고 쫓아가야 한다. 금융위기 이전처럼 선진국에 속한 우량기업이 밖으로 나갔던 때는 신흥국 투자가 유리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본국으로 환류될 때에는 선진국에 투자해야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세계 100대 기업에 속하는 초우량 기업은 미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자본주의 시대에 주식을 공급하는 주체인 우량과 비우량 기업 뿐만 아니라 주식을 사는 주체인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간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추세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더 심해지고 있는 ‘K자형’ 양극화 여건에서 최상의 GBK 시나리오는 고소득층이 선호하는 우량기업 주식을 사들이는 방안이다.
GBK를 통해 2030세대들이 보유하고 있는 종목을 자세하게 뜯어보면 이 같은 흐름이 그대로 나타난다. 초기에는 미국과 중국에 속한 우량기업 주식을 비슷한 비율로 보유하다가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미국의 우량기업 주식 보유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테슬라 등이 대표적이다.
2030세대들이 주도하는 GBK가 한국 자본시장 앞날에 의미가 크다는 것은 금융지식(FQ: Financial Quotient)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우리는 금융지식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2030세대들은 다르다. 금융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수익도 상대적으로 높다.
주목해야 할 것은 GBK가 최근 들어 미국 중앙은행(Fed)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변화와 경기 등에 ‘정점론’이 거론되는 전환기를 맞아 개별 종목투자가 점점 어려워지자 글로벌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 수익률도 개별 종목투자보다 월등히 높다.
가장 큰 이유는 지난 4월 이후에는 갑작스럽게 불거진 인플레이션(이하 인플레)이 ‘일시적’이냐를 놓고 논쟁이 지속되다가 최근에는 부(負)의 인플레인 디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슬로플레이션, 리플레이션, 하이퍼 인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 그린플레이션 등 각종 인플레와 관련된 용어가 한꺼번에 나돌고 있기 때문이다.
인플레는 총체적으로 비용 상승과 수요 견인으로 나뉘고 비용 상승 인플레는 그 원인별로 그린플레이션·애그플레이션으로, 상승속도에 따라 마일드·캘로핑·하이퍼로, 경기(성장률)와 관련해 디플레이션·스테그플레이션·슬로플레이션·골디락스, 정책 의지와 결부돼 리플레이션·디스인플레, 그리고 요즘 뜨는 공유 경제와 관련해서 데모크라플레이션도 있다.
각종 인플레 종류별로 증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인플레가 디플레보다 낫다. 속도에 따라서는 마일드 인플레, 통제만 가능하면 리플레이션과 디스인플레 국면에서도 주가 움직임이 좋다. 가장 좋은 것은 골디락스, 가장 나쁜 것은 스테그플레이션 국면이 전개될 때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슬로플레이션 국면에서는 변동성이 심한 장세가 전개된다.
문제는 최근 인플레 우려는 같은 통화정책 시차(9∼1년) 내에서 모든 가능성이 한꺼번에 제시되는 ‘다중 복합 공선형’이라는 점이다. 가장 큰 요인은 코로나 시태가 갖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뉴 노멀 디스토피아의 첫 사례인 코로나 사태는 아무도 모르는 위험이기 때문에 초기 충격이 커 미국 중앙은행(Fed)은 무제한 돈을 공급했다.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MV=PT, M은 통화량, V는 통화유통속도, P는 물가수준, T는 산출량)에 따르면 통화공급은 그대로 물가로 연결된다. 전염성이 강한 코로나 사태는 백신만 보급되면 세계 경제가 ‘절연’에서 ‘연계’ 체제로 이행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서 지난 4월 이후처럼 ‘쇼크’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인플레 우려가 갑자기 불거진다.
4월 이후 제시된 인플레 놓고 ‘일시적’이냐 논쟁이 거세질 무렵에 각국의 2분기 성장률이 높게 나오자 정책 요인에 의해 촉발된 인플레가 수요 견인 인플레로 악화되면서 순식간에 하이퍼 인플레 우려까지 제기됐다. 수요 견인 인플레 판단하는 지표인 오쿤의 법칙(Okun’s rule)’에 따라 올해 미국 경제는 4% 내외의 인플레 갭이 발생한다.
하지만 하이퍼 인플레 우려도 잠시 이번에는 여름 휴가철이 끝나자마자 각 시장별로 심화되는 병목 현상과 기후변화, 공급망 부족 등으로 각종 비용이 크게 오르자 스테그플레이션 우려가 급부상했다. 극과 극인 하이퍼 인플레와 스테그플레이션을 놓고 그 정도와 요인에 따라 슬로플레이션, 디스인플레, 그린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 등이 함께 난무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경제정책, 특히 하방 경직성을 갖고 있는 재정정책보다 통화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인플레 등을 잘못 판단해 너무 빨리 출구전략(테이퍼링+금리인상)을 추진하다간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를, 너무 늦게 추진하다간 ‘그린스펀 실수(Greenspan’s failure)’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공존하는 여건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선봉장인 Fed가 어떤 행로를 걷을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화정책 목표와 우선순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Fed는 2012년부터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에다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했다. 양대 목표 간 충동할 때에는 후자에 더 우선순위를 둬 통화정책을 운용해 왔다.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고용 목표가 달성되지 않는 여건에서는 인플레가 우려된다 하더라도 금융완화 기조를 변경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올해 잭슨홀 미팅 이후 Fed가 2013년 이후처럼 ‘트리블 버블(금융완화 버블+인플레 버블+테이퍼링 지연 버블)’을 키울 것이라는 시각이 고개를 드는 것도 ‘통화정책 불가역성’ 때문이다.
최근처럼 다중 복합 공선형 인플레와 각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갈피를 못 집을 때에는 주가 변동성이 커지고 경제주체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주식 투자자들은 한편으로 개별 종목보다 전기차, 인프라, 메타버스 등 글로벌 테마 ETF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측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채를 줄여 현금 흐름을 좋게 가져가야 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