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치료 길 열린다…'연결 방해' 유전자 주목

입력 2022-05-27 17:37   수정 2022-05-28 17:31


인간의 뇌는 기억을 하나씩 따로 보관하지 않는다.

서로 연관된 기억을 한데 묶어 저장하는 게 뇌의 일반적인 기억 방식이다.

중요한 기억을 떠올리면 시간상으로 연결된 다른 기억들이 꼬리를 물고 상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뇌는 관련 기억을 연결하는 기능을 점차 상실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팀이 뇌의 `기억 연결`(memory linking)에 관여하는 핵심 분자 메커니즘을 발견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중년에 해당하는 생쥐 모델에 실험해, 이 메커니즘이 손상됐을 때 복원하는 방법도 찾아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HIV(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차단제가 이런 효능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은 중년 이후의 기억력을 강화하고 치매 증상에 조기 대처하는 치료법 개발의 실마리가 될 거로 기대된다.

UCLA 의대의 알시누 실바 신경생물학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25일(현지시간) 저널 `네이처`(Nature)에 논문으로 실렸다.


인간 세포의 표면엔 많은 수용체가 있다.

어떤 분자가 세포에 들어가려면 자기에게 맞는 수용체와 먼저 결합해야 한다. 세포를 방(房)이라고 하면 표면 수용체는 문을 여는 손잡이와 같다.

실바 교수팀은 CCR 5 수용체의 생성 코드를 가진 같은 이름의 유전자에 주목했다.

HIV가 뇌세포에 감염하면 기억 상실을 유발한다. 이때 바이러스는 CCR 5 수용체와 결합해야 뇌세포에 들어갈 수 있다.

실바 교수와 동료 과학자들은 2016년 12월 CCR 5 유전자에 관한 중요한 논문을 하나 내놨다.

이 유전자가 활성화해 뇌세포 표면에 CCR 5 수용체가 늘어나면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의 학습ㆍ기억 능력이 약해진다는 게 요지였다.

이번에 연구팀은 인간의 중년 나이에 해당하는 생쥐 모델에 실험했다. 기억력이 떨어지는 나이를 염두에 뒀다.

서로 연결된 두 개의 우리(cage) 안에 생쥐를 넣고 CCR 5 유전자가 생쥐의 기억 형성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테스트했다.

뇌에 이식한 미세 현미경을 통해 새로운 기억이 형성될 때 어떤 부위의 뉴런이 흥분하는지 관찰했다.

CCR 5 유전자의 발현 도를 높이자 생쥐는 기억을 잘 연결하지 못했다. 예를 들면 두 개의 우리가 연결돼 있다는 걸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뇌세포의 CCR 5 유전자를 제거했더니 생쥐는 기억 연결 능력을 회복했다.

실바 교수는 전에 연구한 적이 있는 HIV 감염 차단제 `마라비록`(maraviroc)을 생쥐에 시험했다.

2007년 FDA 승인을 받은 이 약은 뇌에서 CCR 5가 발현하는 걸 억제한다.

늙은 생쥐에게 마라비록을 투여하자 DNA에서 CCR 5 유전자를 제거한 것과 똑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다시 말해 기억력이 약해진 늙은 생쥐의 기억 연결 능력이 다시 강해졌다.

마라비록이 에이즈 환자의 훼손된 인지 능력을 복원할 뿐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중년 이후 기억력 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팀은 마라비록에 대한 임상 시험을 준비 중이다. 기억 상실의 초기 치료제로서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번 연구는 기억의 진화라는 관점에서도 흥미로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왜 인간의 뇌는 기억 연결을 방해하는 CCR 5 같은 유전자가 필요할까 하는 것이다.

연구팀이 내놓은 설명은 곱씹어볼 만하다.

실바 교수는 "만약 모든 걸 기억한다면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라면서 "CCR 5 유전자는 덜 중요한 기억의 파편을 걸러냄으로써 중요한 경험을 연결하게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장진아  기자

 janga3@wow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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