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열풍 '반쪽 성과'…"제도·인식개선 부족"

김종학 기자

입력 2023-03-31 19:29   수정 2023-03-3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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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

    JB금융지주, 태광산업 등을 끝으로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 제안에 나섰던 주요 기업들의 주주총회가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표 대결에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연전연패하면서, 사실상 이사회의 완승으로 끝나는 분위기입니다.

    다만 해당 기업들에 일부 변화를 이끌어내는 등 소기 성과는 달성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먼저 배성재 기자 리포트 보시고 이어가겠습니다.

    <기자>

    행동주의 펀드를 표방한 사모펀드들은 주주총회가 열리기 두 달여 전부터 여론전을 펼치며 상장사 지배구조에 대한 공세를 이어왔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행동주의 대상이 된 기업은 에스엠을 비롯해 KT&G, 7개 금융지주사, 남양유업, DB하이텍, 사조오양, 한국가스공사, 한국알콜 등입니다.

    이 가운데 대형 금융지주사인 KB금융과 신한지주 등이 일찌감치 주주환원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였고, 오늘 차파트너스가 남양유업에 감사 선임안을 통과시키는 등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KT&G 정관변경 중 평가보상위 설치)

    다만 주주총회 전체 결과를 뜯어보면, 나머지 주주 제안 가운데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을 바꾼 사례는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오늘 오전까지 공시한 기업 가운데 주주제안을 받은 151개 안건 가운데 가결한 안건은 7건에 불과했습니다.

    이사회가 행동주의 얼라인파트너스와 제안한 13건을 받아들인 에스엠의 주총안건을 포함해도 10%를 겨우 넘는 수준입니다.

    행동주의 펀드들이 지분 상으로도 불리했고, 또 이들 제안이 배당 확대 등 단기 수익에 집중된 것이 패인으로 꼽힙니다.

    자연스레 주요 의결권 자문사, 나아가 기관 투자자들 설득에도 실패했다는 분석입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비공식적인 긴 호흡으로 10년 정도 계속 대화하고 제안하고, 또 문제만 제기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솔루션도 제공해주고 그래야 기업도 주주제안하는 투자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겠죠.]

    이들 행동주의 펀드들은 일제히 행동을 지속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며 다음을 예고 중에 있습니다.

    연전연패 속에도 행동주의 대상 기업들에게서 유의미한 움직임들이 나오면서, '졌지만 잘 싸웠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KT&G 이사회는 주주환원을 강조하며 올 하반기에 '신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김기홍 JB금융 회장도 주총 마무리 발언에서 "표결 결과와 상관없이 얼라인의 주주 제안을 주요 의사결정시 늘 고려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경제TV 배성재입니다.

    <앵커>

    앞선 리포트처럼 상장사 주식을 사서 경영권에 적극 개입하려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크게 늘었습니다.

    한국식 행동주의가 정말 우리 주식시장 저평가 바꿀 수 있을지, 올해 주총 결과와 함께 상황을 진단해보겠습니다.

    행동주의 열풍이 일면서 상장사들의 변화가 일부 있었습니다만, 기업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대보다 변화 폭이 적인 이유가 뭡니까?

    <기자>
    태광산업처럼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이 50%를 넘어가는 지분 구조에서 소수수주 제안만으로 주주총회를 넘기 어렵다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지분 1% 이상을 확보한 행동주의 펀드 외에 소수 개인투자자들이 중심이 된 코스닥 상장사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이들 기업의 대주주들에게는 지배구조를 바꿔 장기간 이익을 내겠다는 행동주의 펀드의 취지보다 '단기 수익'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와 상장사협의회는 기업 입장에서 불합리하거나 단기수익에 집중하는 펀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경영권 방어책도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이른바 '무늬만'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막아낼 장치가 없다는 것이죠. 공격과 방어를 위한 평평한 운동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 국회나 정부에서 반드시 귀담아 들어야할 대목입니다.

    또 막상 의결권을 행사하려해도 큰손인 국민연금기금의 수탁자책임위원회에 막힌 경우도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주로 기업가치에 개선과 무관하다는 이유 등으로 사모펀드, 노조, 소수 주주등이 제안한 안건에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이러한 기관 투자자들이 주요 주주인 경우를 포함해 의결권 자문사 등을 통해 입장이 갈리는 경우도 발생하면서 실질적으로 기존 대주주의 의사 결정을 견제할 힘이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앵커>

    지배구조 개선을 완전히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주주행동으로 주가는 크게 움직였습니다. 행동주의 펀드로 인해 우리 상장 기업가치를 재평가 받는 계기가 만들어졌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은 아닌가요?

    <기자>

    행동주의 펀드 제안 과정에서 상장사 주가도 크게 움직였지만, 이제 1년 이내 단기간 성과로 이를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동학개미들이 한국 증시의 거버넌스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주의펀드를 지지해 이러한 열풍이 있었다"면서도 "개인투자자 보호를 위해 과도한 버블을 방지하는 공매도 제도의 개혁과, 내부자 거래 근절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주목할 부분은 행동주의 열풍으로 생긴 버블의 가능성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모펀드들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이 목적이다보니 단기 성과에 흔들릴 가능성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에스엠은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수만 창업자 개인 회사를 떼어내고 최근 경영권 분쟁에 이르기까지 지난해초 한때 5만원대이던 주가가 3배 이상 뛰었지만, 공개매수가 마무리된 직후 작년 수준 주가로 빠르게 돌아가는 중입니다.

    KT&G 역시 안다자산운용 등의 지배구조 개편 제안 직후 26% 가량 주가가 올랐지만, 투자자설명회 직후 주주제안 기대감이 하락하면서 이를 모두 반납하기도 했습니다.

    강성부 펀드로 알려진 KCGI가 주주행동에 나선 뒤 공개매수 된 오스템임플란트, 어제 지분 7.05%를 확보한 DB하이텍도 주가가 크게 올랐지만 현재 수준에서 완전한 저평가 해소로 보기 어렵다는 업계 분석이 나옵니다.

    독립적인 이사회 혹은 경영진을 견제할 감사를 선임하도록 하는 등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깼다는 의미는 있지만, 실질적인 기업가치 개선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겁니다.

    <앵커>

    저평가된 기업의 지배구조와 경영 감시를 위한 주주제안이 부쩍 늘긴 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오히려 줄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던데 어떤 의미가 있는 겁니까?

    <기자>

    우리나라는 상장사를 투자한 주주가 지분 1% 이상 갖고 있다면, 보유기간에 관계없이 주주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주주제안에 대한 법적인 구속력이 강한 반면, 제안의 진입 장벽을 낮춰 상장사를 견제하려는 목적이다보니 예년에 비해 활발한 활동이 일어난 겁니다.

    이에 반해 미국은 1년 이상 주식을 보유해야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금액에 따라 최소 3년간 보유하도록 하는 등 기준이 보다 엄격합니다. 국내에서 주주보호를 위해 문턱을 낮췄는데 오히려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제안 자격을 제한할 필요성도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또 최근 추세를 보면 사모펀드를 통한 주주제안 비중은 오히려 줄고, 지배구조가 아닌 환경과 사회 문제 등 논의 사안이 보다 다양화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상장사의 경영진을 바꾸기 위한 주주제안을 보면 가장 주주친화적인 경영진과의 대화부터 가장 공격적인 위임장 대결까지 나눠볼 수 있는데, 오히려 미국 등에선 공개적으로 단기간 주가 변동을 키우기보다 비공식 대화로 장기간에 걸쳐 기업을 변화시키는 방향을 택하는 경향이 더 강합니다.

    국내에서도 VIP자산운용, 라이프자산운용 등 가치투자를 내세운 운용사들이 길게는 10년 가량을 두고 경영진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을 거쳐 목표한 수익률을 회수하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결국 기업 스스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두면서 최근 강화된 ESG 등을 통해 변화를 설득하는 방향이 한국 상장기업의 낡은 지배구조와 저평가를 해소할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옵니다.

    <앵커>

    행동주의를 통해 매년 표대결을 치를 수도 없는 일일 겁니다. 기업들이 알아서 지배구조를 바꾸는 것을 유도할 방법은 없나요?

    <기자>

    이미 에스엠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공개매수를 전후해 투자한 주주들은 상당한 손실을 떠안고 갈 수 밖에 없게 됐습니다.

    이러한 분쟁이 일어나기 전에 주주와 대주주 모두 이익을 얻고, 지배구조를 바꾸려면 결국 상법 개정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행동주의펀드와 투자자단체는 현행 상법에 규정하고 있는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전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는 입장인데, 재계는 해당 법안이 경영권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반대하면서 법안은 국회에 여전히 계류 중입니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자본시장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물적분할 규제, 의무공개매수제도 등 추진해왔는데, 방치 중인 상법 개정 여부가 한국 증시 꼬리표처럼 붙어다닌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의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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