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자산규모 14위 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이 강제 매각 수순을 밟은 끝에 JP모건에 인수됐습니다.
실버게이트, 실리콘밸리은행, 시그니처은행에 이어 올 들어서만 4개 은행이 문을 닫게 된 겁니다.
이번 사태가 글로벌 시장과 국내 금융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 먼저 서형교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형교 기자>
미국 은행 위기의 진원지 중 하나였던 퍼스트리퍼블릭이 JP모건체이스에 매각됐습니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는 현지시간 1일 JP모건이 퍼스트리퍼블릭의 모든 예금과 자산을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고객들이 예금 대량 인출에 나서면서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3월 초와 비교해 97% 폭락했는데, 더 이상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한 금융당국이 매각을 통해 서둘러 위기 진화에 나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이 은행은 자산 규모가 2126억달러(작년 말 기준)에 달합니다.
지난 3월 파산한 SVB(2086억달러)보다도 큰 수준입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은행발 금융위기 우려가 다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SVB 파산보다 국내에 미치는 여파가 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그동안 정부와 금융당국이 "국내 은행은 SVB와 사업 구조가 다르다"고 강조해왔는데, 퍼스트리퍼블릭의 자산 구조는 상대적으로 국내 금융회사들과 더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퍼스트리퍼블릭은 보유 자산의 80%를 대출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자산의 절반 이상을 채권에 투자했던 SVB와 크게 다른 점입니다.
국내 4대 시중은행들 역시 총자산에서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대인 것을 감안하면 퍼스트리퍼블릭과 매우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SVB가 보유 채권에서 대규모 평가손실이 발생한 것과 달리 퍼스트리퍼블릭은 저금리 시기에 판매했던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상품의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국내 금융사들 역시 금리 상승기에 취약한 대출 자산 비중이 크다는 것이 약점으로 꼽힙니다.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망해가는 과정이 국내 어떤 업권의 현 상태와 비슷하다면 '여기도 망하지 않을까'라는 (위기 경보를) 주는 사례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금리가 상승할 때 대출을 받아간 차주가 얼마나 충격에 민감한지가 중요한데, (가령) 건설업 대출은 금리 상승에 굉장히 취약한 자산입니다.]
다만 전문가들은 국내 시중은행으로 위기가 급격히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고정금리 대출이 대부분인 미국과 달리 국내의 경우 변동금리 비중이 높기 때문입니다.
국내 은행의 경우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변동금리 비중이 60%에 달하기 때문에 금리 상승기에 은행 부담이 덜하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고정금리 대출을 늘리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어 자칫 은행권의 건전성이 저하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최근 당국이 장기 주택담보대출의 고정금리 비중 목표치를 71%로 높여잡았는데, 고정금리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금리 상승기에 금융회사들의 연이은 도산으로 시스템 리스크가 커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지금 같은 고금리 시기에 고정금리를 확대할 경우 다가올 금리 하락기에 오히려 차주들의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성태윤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고정금리나 변동금리 자체가 어떤 특정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요. 전체적인 위험 관리상의 불일치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리 구조를 조정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앵커>
앞서 보신 것처럼 미국발 은행 리스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듯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조금 더 자세한 내용 글로벌콘텐츠부 박찬휘 기자와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박 기자, JP모건이 파산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인수했지만 시장의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기자>
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First Republic Bank·FRC)을 106억 달러에 인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간밤 미국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불확실성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를 방증하듯 일부 미국 지역은행 주가도 급락했는데요.
로스앤젤레스에 본사를 둔 팩웨스트 뱅코프는 10% 넘게 내렸고, 클리블랜드의 키코프, 트레이크시티의 자이언스 뱅코프 등 다른 지역은행들도 약세를 보였습니다.
팩웨스트 뱅코프의 낙폭이 다른 은행들보다 큰 것은 앞서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의 파산설이 나올 때마다 이 은행이 항상 함께 거론됐기 때문인데요.
팩웨스트 뱅코프의 주가 흐름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주가와 매우 비슷하다며 추가 파산 우려가 남아있다는 분석입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다른 지역은행에서 여전히 예금 유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지역은행 주가 하락은 시장의 두려움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도 "저금리 시대에서 고금리 시대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금융 취약성이 노출됐다"며 "은행권은 추가 리스크에 대한 경계를 놓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을 인수한 JP모건 측의 입장도 궁금합니다.
<기자>
시장의 우려와 달리 JP모건은 이번 인수를 끝으로 미국발 은행리스크가 차츰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만큼 위기를 겪고 있는 은행은 드물다"며 "이번 인수로 은행 리스크는 사실상 끝났다"고 자신했는데요.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본사를 둔 캘리포니아주의 금융보호혁신부(DFPI)도 "JP모건 덕에 은행 파산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다른 지역은행들의 주가가 하락할 때 JP모건의 주가는 강세를 보였습니다.
간밤 JP모건은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인수 소식에 힘입어 2% 넘게 올랐는데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 최대 은행 중 한 곳인 JP모건이 이번 인수를 통해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고 보고 매수세가 몰린 것"이라고 분석했는데요.
뿐만 아니라 "앞으로 중소형은행보다 대형은행 선호 심리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미국 은행 리스크의 끝을 두고 갑론을박이 여전한 상황입니다.
<앵커>
그렇군요. 미국의 은행 리스크 다음 타자로 상업용 부동산이 거론되고 있다고요.
<기자>
네. 월가 전문가들은 지역은행의 취약점으로 대규모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과 상업용 부동산 대출, 은행 실제 가치와 장부가 간의 높은 괴리율 등을 꼽았는데요.
은행 리스크의 신호탄이었던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지난해부터 부동산 대출을 늘렸으며, 앞서 주가가 급락한 팩웨스트 뱅코프 역시 대출의 3분의 2가 부동산 관련 대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월가에서 투자 거장으로 불리는 찰리 멍거, 하워드 막스 등이 미국의 은행 리스크 다음으로 위험한 분야로 상업용 부동산을 지목했는데요.
이들은 가파른 대출금리 상승이 상업용 부동산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관련해서 김종학 기자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김종학 기자>
미국 지역은행의 연쇄 파산으로 대출금리가 치솟으면서 이를 감당하기 힘든 상업용 부동산으로 위기가 옮겨붙고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모건 스탠리는 올해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2조 9천억 달러의 상업용 모기지 상당 규모가 재융자를 받아야 하는데, 대출 금리가 최대 4.5%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형 빌딩과 점포를 새로 매입할 시중 자금이 말라붙으면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내년까지 최대 40% 하락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가운데 8천조원 규모의 대형 운용사 브룩필드가 로스엔젤레스에 위치한 1조원 규모의 빌딩 운용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에 빠지는 등 위기가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 빌딩 공실률은 1분기까지 16.9%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 공실률을 넘어섰고, 소매 체인인 베드배스비욘드가 파산하는 등 사무실, 소매점 수요가 급감하고 있습니다.
투자 위험이 커지자 실물자산 운용사들은 고위험·고수익으로 여겨지는 이들 자산 대신 위험도가 낮은 주택과 물류, 수요가 남아 있는 데이터센터로 투자비중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피터 한셀 / 누빈자산운용 유럽부동산 수석디렉터 : (투자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물류센터와 주거용을 포함한 부동산에 대한 낮은 레버리지 대출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높은 레버리지 거래에 대한 은행의 수요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리테일(소매)의 경우 여전히 전반적으로 시장에 대해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제한적인 투자 환경에서 부동산 대출 시장의 기대수익률은 5%, 고위험 투자로 10%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이번 주 미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정책회의를 앞둔 시장은 금리 하락 사이클 재연에 마지막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피터 한셀 / 누빈자산운용 유럽부동산 수석디렉터 : 현재 많은 시장과 유럽의 대부분의 시장에서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는 신호가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이는 중앙은행들이 고려하고 있는 핵심 경제 요소로...(중략)]
문제는 미국 지역은행 구제 이후 대형 금융기관들은 부동산 대출 시장의 수요를 줄이기 위해 일제히 대출 문턱을 높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금리인상 사이클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더라도, 부동산 자산가격 하락과 낮아진 수익률로 인해 실물자산 운용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앵커>
이런 가운데 은행 리스크에 대체 자산으로 수혜를 입었던 가상화폐 시장이 간밤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지난주 까지만 해도 10만 달러 전망까지 나왔었는데 이유가 무엇인가요?
<기자>
앞서 가상화폐는 지난달 은행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피난처로 각광받으며 급등세를 보였습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글로벌 은행들의 신뢰도가 흔들리는 상황을 대비해서 만들어진 대체 화폐인데요.
처음 등장했을 때 '디지털 금'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은행 리스크의 지속으로 월가에서는 비트코인이 10만 달러까지 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는데요.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가상화폐의 겨울이 끝났다"며 "비트코인은 탈중앙화와 희소성 등 디지털자산의 가치를 입증하며 내년말에 10만 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10년간 비트코인 가격을 분석한 결과, 비트코인이 4개월 연속 상승한 뒤 이듬해에 260% 급등하는 패턴을 반복했다"고 전했는데요.
그러면서 "비트코인 반감기가 근접했기 때문에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글로벌 채권시장 자금의 1%가 비트코인으로 넘어가면 가격이 18만5천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은행 리스크 해소 여부에 대해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하면서 이러한 전망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비트코인은 오늘 오전 6시경 JP모건의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 인수 소식을 은행 리스크 해소로 받아들이며 5% 가까이 급락했는데요.
이후 은행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라는 의견이 제기되자 소폭 반등한 모습입니다.
전문가들은 은행 리스크 뿐 아니라 내일 발표되는 5월 FOMC 결과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앵커>
네. 오늘 밤부터 이틀간 5월 FOMC 정례회의가 개최됩니다.
투자자들이 체크해야 할 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자>
역시나 핵심은 연준(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여부입니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25bp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95%에 달했는데요.
전문가들은 25bp 인상이 기정 사실화되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 여부보다는 최종 금리 수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미국의 은행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간밤 제조업 지표가 전월 대비 상승하는 등 경기 지표가 우려보다 양호하게 나오면서 금리 인하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고 분석했는데요.
만약 내일 FOMC 결과에서 최종 금리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재 시장이 예상하는 최종 금리는 5.25%입니다.
한편 내일 FOMC 결과 발표를 앞두고 오늘 호주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25bp 인상했는데요.
호주 중앙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바 있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또 한 번 동결을 점쳤지만 예상과 달리 깜짝 인상에 나서면서,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 연기를 염두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앵커>
네. 잘 들었습니다. 글로벌콘텐츠부 박찬휘 기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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