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인 1.75%포인트(p)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25일 추가 인상으로 차이를 좁히지 않고 동결을 선택했다.
현시점에서 내외 금리차에 따른 원화 약세(원/달러 환율 강세)와 외국인 자금 유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보다는 경기 침체의 위험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세 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의 가장 중요한 배경은 무엇보다 불안한 경기 상황이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분기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0.3%)은 민간소비 덕에 겨우 두 분기 연속 역성장을 피했고, 3월 경상수지도 국내기업 해외 현지법인의 배당에 기대 힘겹게 석 달 연속 적자를 모면했다.
하지만 통관기준 무역수지는 4월(-26억2천만달러)까지 여전히 14개월째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암울한 최신 경제지표와 기대보다 약하고 더딘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 등을 반영, 한은도 이날 금통위 회의 직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다행히 한은 금리 인상의 제1명분인 물가는 최근 다소 진정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3.7%)은 지난해 2월(3.7%) 이후 14개월 만에 3%대로 내려왔다.
아울러 한은은 1.75%p에 이르는 미국과의 기준금리 차이도 '아직 견딜만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달 3일(현지시간) 또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으면서 한국(3.50%)과 미국(5.00∼5.25%)의 기준금리 격차는 최대 1.75%p로 벌어졌다. 1.75%p는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최대 한·미 금리 역전 폭이다.
달러와 같은 기축통화(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원화 입장에서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크게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고 원화 가치가 떨어질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연준 인상 후 20여일간 원/달러 환율은 한때 1천340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천320원대 안팎으로 떨어졌고, 외국인들은 오히려 한국 증시에서 삼성전자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순매수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더구나 연준의 6월 기준금리(정책금리) 동결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은은 '역전 폭 확대'에 대한 부담도 덜었다.
이날 한은의 기준금리 3연속 동결로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가 사실로 굳어지면서, 전문가들과 시장에선 연내 인하 전망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이미 8월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하반기에는 경기 우려가 더 커질 텐데, 사실상 기준금리 인상은 이제 끝났다고 봐야 한다"며 "경기 침체에 대한 선제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한은도 이르면 8월부터 0.25%p 인하를 통해 현재 과도하게 긴축적인 금리를 조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올해 10∼11월께 한은이 금리 인하에 들어갈 것"이라며 "다만 그 시점에서 미국 연준이 아직 금리를 내리지 않았을 테니, 미국 눈치를 보고 천천히 내릴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공공요금 인상 등에 여전히 불안한 물가, 사상 최대 수준인 한·미 금리차에 따른 원화 약세와 자금 유출 압박 등을 고려할 때 한은 입장에서 당분간 금리를 올리는 것뿐 아니라 내리기도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물가 상승 폭이 줄고 있지만, 수준 자체(4월 3.7%)는 한은 물가 안정 목표(2%)보다 훨씬 높다. 금리를 낮추려면 인플레이션이 잡혔다는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며 "연준보다 한은이 먼저 금리를 내리려면 물가는 물론 외환시장도 안정돼야 한다. 따라서 연내 금리를 내릴 여건이 조성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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