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충남 서산 부역 혐의 희생 사건 유해 발굴지인 갈산동 봉화산 교통호 인근에서 진행된 중간 보고회에서는 당시 집단 학살을 직접 목격하거나 경험했던 인근 주민들의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마을 주민 한광석(89)씨는 "집단학살이 있던 1950년 10월 초∼12월 말((나는) 16살이었다"며 "그때 새벽 동틀 무렵이면 경찰이 차에 사람들을 태워 와서 산으로 끌고 가 죽였다"고 증언했다.
그는 하얀 옷을 입고 손이 묶인 사람들을 끌고 가 빨래 널듯 세워놓고 총을 쏘는 모습이었다고 당시 참상을 기억했다.
한씨는 "총살한 사람들을 구덩이(교통호)에 몰아넣은 뒤 제대로 묻어주지도 않고 가 동네 사람들하고 같이 묻어주었다"라고도 했다.
그는 "이번 유해 발굴 지역 아래쪽에도 유해가 더 묻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현재 생존해 있는 이곳 집단 학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다.
유형주(86)씨는 자기 가족들과 관련해 직접 경험했던 또 다른 집단학살지 상황을 증언했다. 유씨는 작은아버지와 둘째 형을 잃었다.
당시 12살이던 그는 서산시 고북면 남정리 집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경찰이 들이닥쳐 "야, 유상근이 누구야"라고 소리쳤다. 그는 작은아버지였다.
"들에 일하러 갔는데요"라며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작은아버지가 일하는 들판으로 경찰을 데려갔다. 그들은 작은아버지를 보더니 "네가 유상근이야"라며 새끼줄로 손을 뒤로 묶어 끌고 갔다. 영문을 몰라 집으로 달려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더니 "큰일 났다"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유씨는 회상했다.
저녁때 이장이 와 작은아버지가 경찰서에서 못 나올 거 같다면서 밥을 갖다줘야 한다고 해 그는 고북면의 임시 유치장까지 식사를 날랐다. 그렇게 식사를 이틀 나르고 사흘째 되던 날 유치장에서 밥을 안 받는다고 했다.
밖에 서 있는데 15∼16명의 사람이 손이 뒤로 묶인 채 끌려 나왔다. 작은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머리가 터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작은아버지는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고개만 끄덕였다.
그날 인근 야산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가 멎은 뒤 마을 어른 3명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 작은아버지의 시신을 찾아 소나무 밑에 눕혀놓고 솔가지로 얼굴을 덮어 두었다. 그러고는 다시 집으로 가 가마니에 막대기를 끼운 들것으로 작은어머니 등과 함께 시신을 들고 와 일단 근처 들판 어딘가에 묻었다.
그런데 다음 날 경찰이 또 들이닥쳐 "네 작은아버지가 집에 돌아왔냐?"며 총을 가슴에 대고 묻고는 "묻은 데라도 가보자"며 다그쳤다. 경찰과 함께 작은아버지가 묻힌 자리로 갔더니 "너희 작은아버지 표시가 뭐냐"고 물었다. "금니 했는데요." 경찰은 시신이 묻힌 곳에서 작은아버지의 머리 쪽만 파고 입을 벌려 기어코 확인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둘째 형(당시 19살)이 또 끌려갔다. 둘째 형도 작은아버지와 같은 식으로 유치장에 갇혔다가 처형당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어렸지만,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한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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