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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와 파월의 운명을 쥔 '헤드 페이크' 논쟁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3-09-18 07:54  


미국의 8월 실업률이 7월 3.5%에서 3.8%로 높게 나온 것을 계기로 ‘헤드 페이크(head fake)’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8월 실업률이 발표되자마자 “추가 금리인상은 물 건너갔다”고 읽혀지면서 연착륙 랠리 기대가 나올 정도로 주가가 급등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헤드 페이크 우려가 제기되면서 주가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헤드 페이크는 농구 게임에서 상대방 선수가 앞에 있을 때 일단 머리를 흔들어 기만한 다음 슛을 쏘는 장면에서 유래된 용어다. ‘착시’라고 번역하는 경우가 있지만 상대방의 판단을 흐트러트린다는 의미로 통계학에서 1종 오류, 2종 오류에 해당한다. 경제적으로는 가장 최근에 발표된 지표(헤드)가 추세에서 벗어나 갑자기 방향을 트는 현상을 말한다.


<그림 1> 美 취업자수와 실업률 추이

미국 중앙은행(Fed)는 중요한 고비 때마다 헤드 페이크를 오판해 ‘무용론’에 빠질 만큼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첫 사례는 에클스 실수(Eccles’s failure)다. 1929년 허버트 후버 정부 출범 이후 불어닥친 경기침체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갑자기 물가가 오르자 당시 매리너 에클스 의장이 서둘러 금리를 올렸던 것이 대공황을 낳았다.

1980년대 초반에도 Fed가 또 한차례 커다란 실수를 저질렀다. 2차 오일쇼크 발생 이후 스태그플레이션 닥치자 폴 볼커 의장은 장고 끝에 Fed의 설립목적에 충실해 금리를 17%까지 올리자 물가가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물가안정 기조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금리를 9%대로 내리자 물가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볼커의 실수(Volker’s failure)’다.

헤드 페이크를 너무 의식해 선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21년 4월 CPI 상승률이 직전월보다 2배 이상 급등하자 헤드 페이크인지 판별하기 위해 ‘평균물가목표제’라는 애매모호한 제도를 도입해 방치했다. 이 과정에서 물가는 목표선인 2%의 4배 이상 웃도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뒤늦게 심각성을 인식한 Fed는 작년 3월 이후 금리를 급격히 올려 일단 물가는 잡히는 추세다. 1980년대 초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과연 금리인상을 중단하고 내려야 할 것인지? “아니면 볼커의 실수를 교훈 삼아 물가가 완전히 잡히기까지 금리를 계속 올려야 하는 것인지? 이 상황에서 고용지표가 헤드 페이크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다음달 초에 발표될 9월 실업률이 다시 하락해 8월 실업률이 오른 것이 헤드 테이크로 판정되면 Fed는 금리를 추가적으로 올려 대응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트한 노동시장이 풀리지 않는다면 7월 이후 고개를 들고 있는 인플레이션 재발 조짐이 정착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8월 실업률이 헤드 페이크가 아니라고 판정되면 금리인상 정점론이 고개를 들면서 언제 금리가 내릴 것인가로 증시 등 시장참여자의 관심이 빠르게 이동될 것으로 예상된다. 타이트한 노동시장이 풀린다면 작년 6월 이후 인플레이션 안정 추세가 완전히 정착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8월 실업률은 헤드 페이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매년 8월은 대학 졸업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노동수급 불일치와 병목 현상에 따른 계절적인 요인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는 시기다. 9월 이후에는 마찰적 실업자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실업률이 본래의 추세로 되돌아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결국 8월 이후 나타나고 있는 고용지표의 헤드 페이크 실체가 명확해질 때까지 Fed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성급하게 금리를 올리거나 내리면 에클스 실수와 볼커 실수를 동시에 저지를 수 있는 여건이기 때문이다. 2년 전 실수가 채 잉크도 마르기 전에 또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그 결과는 ‘Fed의 무용론’과 ‘파월의 교체’다.

한국은 8월 소비자물가(CPI)상승률이 7월의 2.3%에서 3.4%로 크게 오르자 미국과 마찬가지로 헤드 페이크 논쟁이 일고 있다. 한국은행은 9월 이후 CPI 상승률이 제자리를 잡을 것으로 내다보면서 일단은 8월 CPI 상승률이 높아진 것을 헤드 페이크로 보고 있다. 이 시각대로 된다면 지난 2월 이후 금리동결 추세는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8월 CPI 상승률이 급등한 것이 헤드 테이크보다 인플레이션이 본격적으로 재발되는 신호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8월 CPI를 상승시킨 가장 큰 요인인 국제유가 상승세가 꺾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이후 국제유가는 이미 30% 넘게 올랐다.

국제유가 향방의 키(key)를 쥐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고유가 정책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Vision 2030’ 계획에 들어갈 재원과 러시아는 전쟁경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높게 유지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계절적으로도 세계 원유수요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북반구 지역이 동절기에 들어가는 것도 변수다.

<그림 2> 美 원유 재고와 국제유가 추이

8월 CPI를 상승시킨 또다른 요인인 농산물 가격은 앞으로는 유가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자마자 또다른 디스토피아인 이상기후로 전 세계인을 흔들어 놓고 있다. 디스토피아란 유토피아(utopia)의 반대되는 개념인 반(反)이상향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구상의 가장 어두운, 특히 극단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말한다.

2015년부터 이 과제를 다뤄왔던 세계경제포럼(WEF)은 앞으로 10년 동안 세계 경제에 미칠 위험 요인으로 경제·환경·지정학·사회·기술 등 5개 분야에 걸쳐 총 28개의 디스토피아 우선 과제를 발표했다. 발생 확률과 파급력을 기준으로 각각의 순위를 매겨 정책당국자와 기업인, 그리고 개인이 쉽게 대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다.

WEF는 발생 확률이 높은 다섯 가지 위험으로 ①국가 간 분쟁 ②극단적 기상이변 ③사이버 테러 ④국가 거버넌스 실패 ⑤구조적 실업과 마약, 자살 등 사회적 병리를 꼽았다. 발생 때 파급력이 클 다섯 가지 위험으로는 ①기후변화 대응 실패 ②수자원 위기 ③급속한 전염병 확산 ④대량 살상무기 ⑤국가 간 분쟁 순이다.

발생 확률과 파급력을 동시에 감안할 때 최우선 디스토피아 과제로 꼽힌 ‘기상이변’은 1990년대 이후 교토의정서 등을 통해 각국이 노력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환경 디스토피아는 날로 악화되는 추세다. 2020년대 들어 파급력이 가장 큰 환경적 디스토피아로 생물학적 다양성 손실과 생태계 붕괴 등이 꼽힌다.

올해도 폭염, 가뭄, 홍수 등에 따른 이상기후로 세계 주요 농산물 산지의 작황 상황이 역대 최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유난했던 슈퍼 엘리뇨 현상은 올해보다 내년이 더 심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보되는 만큼 오히려 농산물 가격상승에 따른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이 우려된다.

<그림 3> 펄펄 끓는 2023년 지구촌 온도

인플레이션이 재발되면 한국은행은 지난 2월 이후 동결해온 금리를 다시 올려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금리동결을 지속해 나가면 물가를 키우는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이 지속되는 여건에서 물가만을 잡기 위해 금리를 몰리면 경기를 더 침체시키는 에클스 실수를 저지를 확률도 높다.

한국은행과 이창용 총재는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 여부에 따라 Fed의 무용론과 파월의 교체론과 동일한 각도에서 한은과 이 총재의 앞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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