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밴 친절함으로 경제대통령 오른 제롬 파월...그의 4가지 원칙 [비하인드 인물열전]

신인규 기자

입력 2023-11-25 07:00   수정 2023-11-25 08:15



한국경제TV 뉴욕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기 저를 가장 괴롭힌 인물은 다름아닌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수장,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제롬 파월이었습니다. 미국의 기준금리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시장공개위원회, FOMC의 통역 생중계를 해야 했으니까요(지금은 전문 동시통역사가 하는 고품격 방송을 한경 글로벌마켓에서 편히 보실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잘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지요. 영어가 부족하니 대신 미국 금융시장이 움직이는 맥락과 연준 의장의 배경을 숙지하려 애를 썼고, 아래 내용들은 그렇게 찾은 제롬 파월이라는 인물의 조각들입니다. 그리고 이 조각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제가 찾은 건 시대에 빛나는 거인의 천재적인 지적 수준이나 카리스마가 아니라, 한 인간의 성품, '친절함'이란 작은 미덕이었습니다.

(글이 늘어질 수 있으니, 아래부터는 평어체로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봐도 ISTJ? '책임감 있는 현실주의자' 제롬 파월

인물의 성격 유형을 16개로 나눠 규정하는 MBTI는 인물정보 가운데 요즘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항목이 되었다(네이버 인물정보 항목별 등재 건수 1위가 MBTI다). 제롬 파월의 MBTI는 무엇일까.

1975년의 제롬 파월. 당시 그는 프린스턴대에 재학 중이었다.

본인이 공개한 적은 없지만, 유명인들의 성격 분석을 모아놓은 곳들을 뒤지다 보면 미국인들은 이견 없이 그의 성격을 ISTJ로 규정했다. 내향적이며 직관과 논리적 완결성을 중시하면서도 계획 없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책임감 있는 현실주의자'라는 게 ISTJ에 붙는 설명이다. 화려하지는 않으나 성실하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얘기하는 ISTJ의 전형이 그에게 강하게 보였다는 뜻일 터다. 그의 생애의 중요한 장면에서 그런 면모가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제롬 파월은 정치학도이자 법학도였으며 변호사이자 금융인이다. 1953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명문 기숙학교 조지타운 프렙스쿨(2024년 대선 후보로 나선 케네디 가의 정치인, 로버트 프란시스 케네디 주니어와 제롬 파월은 1살 터울 동창이다)을 거쳐 프린스턴대 정치학과와 조지타운 로스쿨을 졸업했다. 경제학 박사 학위가 없는 연준 의장인 그는 금융계에 들어온 뒤 꾸준한 노력과 주저없는 질문으로 부족한 금융지식을 채웠다는 동료의 증언이 있다. 1984년 입사한 투자은행 딜런 리드를 거쳐 재무부 차관으로 재직했고, 이후 초대형 사모펀드 칼라일의 파트너까지 오른 뒤(잠시 자선 단체에도 몸담았었다) 2012년부터는 미국 통화정책의 중심인 연준에 몸담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오른쪽)과 부인 엘리사 레오나드(왼쪽)

1985년 결혼해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알려진 취미는 두 가지다. 하나는 기타 연주다. 대학 시절엔 기타를 들고 유럽 여행길에 올라 프랑스 파리에서 버스킹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하나는 자전거다. 파월 의장은 연준에서 10km 이상 떨어진 자택에서 자전거로 통근한다. 주량은 어떨까. 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파월이) 저녁 자리에서 아무리 술을 권해도 와인 두 잔 이상은 마시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Mr. Ordinary' vs. '통화정책계의 지미 스튜어트'

월가에는 제롬 파월에 대한 수식어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월스트리트저널의 평으로 가장 잘 알려진 'Mr. Ordinary(평범한 사람)'이다. 그의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한 기사엔 '짜증날 정도로 평범한'이란 표현이 나온다. 연준 이사 재직 당시에도 목소리가 크지 않은 온건주의자로 평가됐다. 제롬 파월과 함께 당시 연준 의장 물망에 오른 존 테일러 스탠포드대 교수의 정치 성향이 분명했던 것과도 궤가 달랐다.



우리가 주목할 필요가 있는, 제롬 파월에 대한 또다른 수식어가 있다. '통화정책계의 지미 스튜어트'다. 지미 스튜어트는 미국에선 애국심 있는 신사의 전형, 단란한 가정을 이끄는 자상한 가장의 표상이다(제롬 파월의 대학 선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배우 안성기 씨, 한석규 씨의 이미지다. 정제되고 쉬운, 친절한 언어 사용은 그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시장 뿐 아니라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미국의 통화정책 경로를 설명하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전문매체 포린 폴리시는 '(전 연준 의장이자 노벨상 수상자) 벤 버냉키의 모국어가 경제학인 것처럼 들린다면, 제롬 파월의 모국어는 확실히 영어'라고 평했다.



그는 이같은 친절한 태도를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유지한다. 그렇게 몸에 밴 친절함은 연준이 의회 앞에 설 때 빛을 발했다. 2019년 당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준과 제롬 파월을 공개 비난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원하는 금리 인하를 연준이 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 닉 티미라오스가 쓴 책 <Trillion Dollar Triage>에 따르면 당시 제롬 파월 의장은 4가지 원칙을 갖고 묵묵히 버텼다고 했다. '그(트럼프)에 대해 발언하지 않고, 화가 났을 때 반격하지 않고, 정치가 아닌 경제에 충실하고, 집무실 외부에서는 동맹을 만들라'는 게 그것이다. 파월은 그 원칙을 지켰고, 양당의 의원들은 파월의 동맹이 되어 그를 지켰다.



파월이라는 인물은 대체로 평범하고 특징이 없는 사람이라는 평 속에도 주목할 만한 '특기'는 있다. 상대방이 말한 문장을 즉석에서 '거꾸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걸 왜 하는 걸까). 누군가 '아이 엠 어 걸, 유 아 어 보이'이라고 말한다면, 파월은 이를 바로 '보이 어 아 유, 걸 어 엠 아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이다. 이건 그에게 두 가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는 사람들의 대화를 잘 듣고 그것을 그대로 기억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문장을 자유자재로 재구성할 수 있는 높은 언어 능력이다.


폴 볼커(왼쪽) 전 연준 의장과 제롬 파월(오른쪽) 연준 의장

▲유대인에게 낙점받은 '非 유대인' 연준 의장, 민주당원이 추천한 공화당원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연준의 의장 자리는 지난 1979년부터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유대인이 독식해왔다. 폴 볼커와 옐런 그린스펀, 벤 버냉키와 지금은 재무부 장관이 된 재닛 옐런까지 모두 그랬다. 파월은 유대인 연준 의장 시대를 깬 인물이다.



가톨릭 신자 제롬 파월을 연준 의장으로 추천한 인물은 유대계인 스티븐 므누신 전 재무장관이다. 앞서 그를 연준 이사로 낙점한 인물은 티모시 가이트너 전 재무장관인데, 그는 제롬 파월(공화당원)과 당적이 다른 민주당원이다. 어째서 제롬 파월이라는 인물은 이념과 출신에 관계 없이 파워엘리트들의 신뢰를 받았을까.


▲ 미국판 '천원짜리 변호사'? 1달러로 부채한도 협상 이끈 파월

티모시 가이트너가 미국 재무부 장관직을 수행하던 오바마 행정부 때의 일이다. 공공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공직에 대한 욕구가 분명했던 제롬 파월은 월가를 떠나 2011년 미 의회 초당적 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입성한다. 당시 연봉은 1달러, 사실상 무급 자원봉사직이었다.



당시 미국에선 부채한도 상향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민주당은 부채 한도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공화당은 이를 명확히 반대했다. 파월은 센터에서 부채 한도 분석 이니셔티브를 만들고 재무부 대차대조표와와 현금 흐름을 조사해 8월이면 미국이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위험성과 자금 조달의 필요성을 밝혔다. 수치와 근거를 갖고, 공화당원이었음에도 민주당과 반목하지 않고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한 것이다. 파월의 이같은 움직임은 결국 양당이 부채한도 상향에 동의한 주 요인이 되었다. 민주당에서도 중재자로서의 파월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는 2012년 파월의 연준 이사 임명으로 이어졌다.


▲ 1991년, 버핏을 구한 파월의 한 수

친절한 중재자로서 파월의 면모는 그보다 조금 더 앞선 1991년에도 나타난다. 당시 국채 입찰권이 있던 미국의 초대형 투자은행 살로몬 브라더스가 문서를 위조해 한도 이상의 국채 입찰에 나섰다는 게 뒤늦게 확인됐다. 사안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처벌의 결과는 살로몬 브라더스의 국채 입찰권 박탈이어야 했지만, 그렇게 된다면 은행 한 곳 뿐 아니라 미국 금융계가 연쇄적으로 흔들릴 수 있는 정도의 초대형 스캔들이었다.



당시 살로몬 브라더스의 최대 주주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었다. 버핏은 위기에 빠진 살로몬 브라더스의 임시 회장직을 수락했고, 당시 닉 브래디가 장관으로 있던 재무부와 협상을 시도한다. 닉 브래디는 살로몬의 국채 입찰권 박탈을 결정했지만, 몇 시간 만에 그 결정이 뒤바뀐다. 파이낸셜 리뷰의 기사에 따르면 이 결정을 바꾸도록 조언한 사람이 제롬 파월 당시 재무부 차관이다. 제롬 파월의 안은 살로몬 브라더스의 국채 입찰권을 완전히 박탈하는 대신 고객의 돈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입찰만 제한하고, 살로몬의 자기자본을 이용한 입찰은 허용하는 것이었다. 재무부로서는 명분을, 살로몬에겐 기업 존속의 실리를 가져다 준 묘수였다. 제롬 파월은 여전히 살로몬 브라더스 사건에 관한 악몽을 꾼다는 소회를 남기기도 했다.



급한 불을 끈 뒤, 다음은 관리 감독 부실을 탓하는 정치권을 상대하는 게 또다른 제롬 파월의 임무였다. 여기서는 그의 태도와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한다. 당시 의원들은 살로몬 브라더스의 국채 입찰 조작 사태를 '펌블'에 비유했다. 펌블은 미식축구에서 공을 실수로 놓치는 일을 일컫는다. 정부가 감독을 잘 해서 은행의 비위를 적발한 것이 아니라, 은행이 스스로 비위를 드러낼 정도로 허술하게 움직인 덕에 정부가 '소 뒷 발에 쥐 잡기'식으로 일이 흘러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그때 제롬 파월은 이렇게 받아친다. "But why did they fumble? They were hit, they didn't fumble in an open field."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태클'이 있었기 때문에 은행이 '펌블'을 범했다는, 의원들의 비유를 그대로 활용한 위트 있는 반론을 펼친 것이다. 이 한 문장이 당시 싸늘했던 조사 분위기를 바꿨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파월에 대한 타인들의 평가는?



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 연방은행 총재 : "파월은 매파(강경파)도 비둘기파(온건파)도 아닌 현명한 올빼미"



패트릭 맥헨리 공화당 의원(하원 금융 서비스 위원회, 2020년) : "연준 의장으로서 파월은 10점 만점에 11점이다."



워드 매카시 제프리스 수석 금융분석가 : "파월 이사는 지루하지만, 간단 명료하다. 그래서 당신은 그의 말을 듣지 않거나 머리를 숙일 필요도 없고 그가 말한 것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제이슨 그러밋 초당적연구센터(BPC) 센터장 : "함께 일하는 3년 동안, 그가 유일하게 원했던 것은 더 큰 바인더 뿐이었다(파월은 초당적연구센터 근무 당시 자료를 가득 담은 바인더를 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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