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에서 월가의 제왕으로"…블랙록 CEO 래리 핑크 [비하인드 인물열전]

박찬휘 기자

입력 2024-02-25 07:21   수정 2024-02-25 10:34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운용사는 미국의 블랙록입니다. 올해 1월 기준 운용자산(AUM) 규모만 10조 달러, 우리 돈 1경 3,325조 원에 달합니다. 대한민국 GDP(국내총생산) 1조 7천억 달러(2,265조 원)보다 6배나 많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움직이는 블랙록의 수장은 어떤 사람일까요?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과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왼쪽부터)

이번 비하인드 인물열전에서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과 함께 월가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로렌스 D. 핑크(Laurence Douglas Fink) 블랙록 회장의 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 태생이 사업가

래리 핑크는 1952년 11월 2일 캘리포니아주 밴 나이즈(Van Nuys)에서 유대인이었던 부모님 밑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민주당원이었으며, 아버지는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어머니는 대학 교수였습니다.

래리 핑크 회장 가계도 (출처-Coreys digs)

신발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았는지, 핑크의 사업가 기질은 어린 시절부터 발현됐습니다. 핑크는 틈날 때마다 캘리포니아주 집 근처에 위치한 모하비 사막을 찾아가, 그곳에서 뱀을 잡았습니다. 기르기 위해서냐고요? 아닙니다! 집에서는 애완동물을 키우지 않았습니다. 핑크의 어머니가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죠.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모하비 사막

핑크는 잡아온 뱀을 분양(판매)하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에게 잡혀온 뱀들은 미국 전역의 수집가들에게 우편으로 배송됐습니다. 이때 핑크의 나이는 고작 '12살' 남짓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뱀들이 우편물에서 빠져나가는 소동이 잦았고, 결국 핑크가 13살이 되던 해 FBI(연방수사국)가 그의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이렇게 뱀 분양 사업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여담으로 핑크는 이 사업을 통해 한 눈에 독사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뱀 전문가가 됐다고 합니다.

▲ 다사다난했던 월스트리트 라이프

UCLA 대학교와 UCLA 앤더슨스쿨대학원

핑크는 1974년 미국 UCLA에서 정치학 학사 학위를, 1976년에는 UCLA 앤더슨스쿨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곧바로 월가 투자은행 퍼스트보스턴에 채권 트레이더로 입사했는데, 월가에서의 첫 출발은 그의 이름처럼 핑크빛이었습니다.

월가에 위치한 퍼스트보스턴 간판

모기지 채권 거래를 통해 회사에 막대한 수익을 안기면서 스타 트레이더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겁니다. 모기지 채권은 수많은 모기지를 엮어 증권화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했는데, 핑크는 당시 생소했던 '컴퓨터'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때 핑크가 퍼스트보스턴에 안긴 수익은 10억 달러(1조 3,300억 원)에 달했습니다. 핑크는 회사에서 모기지 채권 거래의 성공을 인정받아 고속 승진을 거듭해 최연소 전무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하지만 핑크의 행복한 시절은 10년 만에 위기를 맞았습니다. 매년 큰 수익을 거두며 승승장구하던 핑크의 팀이 1986년 들어 손실을 내기 시작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 기준금리

1980년대 들어 미국 연준(연방준비제도·Fed)이 기준금리를 급격히 낮췄는데, 이것이 핑크의 팀이 예측한 금리 전망과 크게 엇나갔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첫 손실이 발생한 이후 여러 리스크 요인들이 더해졌는데 제때 위기 관리를 하지 못해 2분기 만에 손실 규모는 1억 달러(1,332억 원)로 불어나고 맙니다.



월가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는 냉철한 곳인 만큼 1억 달러 손실은 핑크의 평판을 크게 떨어트렸습니다. 결국 핑크는 2년 뒤인 1988년 퍼스트보스턴에서 쫓겨나듯 나오게 됩니다. 핑크가 퇴사한 그해 재무가 악화된 퍼스트보스턴은 결국 크레디트스위스에 인수되고 맙니다.

▲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의 탄생



핑크가 퍼스트보스턴의 실패를 통해 깨달은 것은 '위기 관리'의 중요성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그가 고객들의 자산 관리와 위험 관리를 통합한 운용사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고, 1년 반의 준비 끝에 1988년 퍼스트보스턴 시절 동료 7명과 함께 (로버츠 카피토, 수잔 와그너, 바바라 노빅, 벤 골럽, 휴 프레이터, 랄프 숄스타인, 키이스 앤더슨)과 함께 월가의 대체 투자 회사 블랙스톤 산하에 자산운용사 '블랙록'을 설립하게 됩니다.

피터 패티슨 블랙스톤 공동 창립자

핑크는 블랙스톤의 공동 창업자이자 리먼브러더스 회장을 지낸 피터 패터슨이 지분 50%를 갖는 조건으로 투자금 500만 달러(67억 원)를 지원받았습니다.



핑크는 지난 실패를 교훈삼아 철저한 위기 관리를 통해 고객들의 자산을 불리며 다시 월가에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회사를 설립한지 불과 몇 달 만에 블랙록은 흑자를 기록했고, 이듬해인 1989년 회사 규모는 27억 달러(3조 6천억 원)까지 불어났습니다.

이후 1995년 P&C 금융그룹과 파트너십을 맺고 블랙스톤을 떠난 블랙록은 2006년에 메릴린치와 합병하면서 회사 규모가 두 배로 불어났으며, 2009년에는 바클레이스의 자산운용 사업부를 인수해 세계 최대 운용사가 됐습니다.

▲ 래리 핑크의 재산은 얼마나 될까



핑크의 순자산은 블랙록이 급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크게 늘었습니다. 그가 블랙록의 최대 주주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핑크가 보유한 블랙록 보통주 주식은 총 435,260주이며 이는 현재 주가 기준 3억 5,400만 달러(4,700억 원) 수준입니다.

이는 보유 주식만 계산한 규모로, 경제전문매체 포브스는 부동산과 기타 재산을 모두 더하면 핑크의 재산이 총 11억 달러, 우리 돈 1조 4,7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블랙록이 투자하는 기업은 우리에게 돈을 맡긴 고객사의 경쟁사인 경우가 많다."
"내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고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 래리 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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