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1년…왜 은행위기는 아직도 지속되나?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4-03-04 07:46  



3월이면 실리콘밸리은행(SVB)에서 비롯된 미국 지방은행 위기가 발생한 지 꼭 1년이 된다. 작년 4월 이후 극복될 기미를 보이던 은행위기가 최근 들어 다시 심상치 않는 조짐이다. SVB 등을 흡수한 뉴욕 커뮤니티 뱅코프가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주가가 폭락함에 따라 다시 토해내야 할 ‘바이 백(buy back)’ 상황에 몰리고 있다.

더 우려되는 것은 골드만삭스, JP 모건 등 미국을 상징하는 6대 대형은행들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각종 대출의 연체가 급증하면서 대손충당금이 부족해 일종의 마진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30일 연체 대출 1달러당 2022년까지 1.6달러를 쌓아놓던 것이 최근에는 1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의 발단은 상업용 부동산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 등이 활성화되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신그레셤의 법칙’이라는 용어가 나올 만큼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에 빗된 이 용어는 홈리스와 마약환자가 정상적인 임차인을 내모는 현상을 말한다.

시카고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50년 전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가 강한 노조에 의해 파산되면서 베드타운인 시카고의 아파트가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던 현상이 최근 들어서는 상업용 부동산에서 재현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경우 상업용 부동산에서 발생한 범죄율이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림 1> 미국 상업용 부동산 대출 강화

자료 : 골드만삭스, 한국은행

현재 상업용 부동산 상황을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와 함께 미국의 양대 부동산 경제학자로 꼽히고 있는 스테인 반 니우에뷔르흐 콜롬비아 경영대학원 교수의 ‘도시 죽음의 고리(UDL·urban doom loop)’로 평가해 보면 재연 조짐이 일고 있는 미국의 은행위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UDL은 세 단계로 진행된다. 첫 단계에서는 금리 인상과 원격근무 등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 다음 단계에서는 세수 부족으로 세금을 인상하거나 교육, 문화, 예술 등의 공공서비스 지출이 줄어들면 거주 도시민은 본격 이탈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텅 빈 상업용 건물이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면서 시카고 공포가 확산된다.

니우에뷔르흐 교수는 UDL이 진행될수록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진다고 봤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하락에 따른 역자산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계층별로는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때 자산이 급증했던 부자일수록 경기가 악화되는 ‘리치 리세션’에 빠지고, 중하위 계층들도 부자들의 소비감소에 따른 낙수 효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주장했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건물주들도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다. 하나는 임대료를 절반 이하로 할인해줘 부대비용을 마련하고 자산가치를 유지하는 시칠리아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용도 자체를 변경해 주거용 부동산으로 개조하거나 테니스장과 같은 사회체육시설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대형은행들도 디레버리지에 나설 움직임이다. 디레버리지란 부족한 대손충당금을 쌓기 위해 기존에 투자했던 상업용 건물을 손실이 나더라도 매각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에 은행위기가 재연될 조짐을 보이자 제2의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Fed의 금리인하가 언제 단행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3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 부진과 작년 3월에 발상했던 은행위기가 최근 들어 재현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Fed의 금리인상이 경제주체들이 대응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단기간에 급하게 이뤄졌기 때문이디.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인상이 적절했는가를 사후적으로 검증하기 위한 방법 중이 하나가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이다. 산출공식은 실질 균형금리에 평가기간 중 물가를 더한다. 여기에 평가기간 중 물가에서 목표치를 뺀 수치에 정책반응 계수(물가와 성장에 대한 통화당국의 정책 의지를 나타내는 계수)를 곱한다. 그리고 평가기간 중 성장률에 잠재성장률을 뺀 값에 정책반응 계수를 곱한 후 모두 더해 산출한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테일러 준칙에 의해 도출된 적정수준보다 높아져 2022년 3월 이후 Fed의 금리인상이 얼마나 급하게 이뤄졌던가를 입증해 주고 있다. ‘말이 뛴다’는 의미의 캘로핑 방식의 금리인상으로 ‘r스타(r*)’ 금리가 ‘r스타스타(r**) 금리’보다 높아짐에 따라 상용용 부동산 시장 침체와 은행위기가 좀처럼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올해 초 전미경제학회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논의됐던 r* 금리는 실물경기를 침체시키거나 과열시키지 않는 중립금리로 알려져 있다. 당시 부각됐던 r** 금리는 금융시스템의 건전성을 훼손시키지 않는 또 하나의 중립금리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지면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져 스트레스 지수(SI)가 올라가고 위기가 발생한다.

특정국의 위기 발생 가능성을 파악하는 방안으로 스트레스 지수(SI)를 개발한 캐나다 중앙은행은 ‘SI를 시장과 정책당국의 불확실한 요인에 따라 경제주체들이 느끼는 피로도’로 정의했다. 경제변수의 기대값이 변하거나 분산이나 표준편차로 표현되는 리스크가 커지면 SI를 높이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코로나발 인플레이션이 불거질 직전까지 20년 이상 저물가가 지속돼는 여건에서 r* 금리와 R** 금리 간의 괴리는 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22년 3월 이후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실물경기 섹터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r* 금리가 높아졌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 한다.

r* 금리가 r** 금리보다 얼마나 높아졌는가에 대해서는 추정하는 방식에 따라 다르다. 분명한 것은 Fed가 인플레이션만을 잡기 위해 금리인하를 늦출 경우 두 금리 간의 격차가 해소되지 않아 상업용 부동산 부실과 은행의 연체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3월 에 기대되던 금리인하가 이제는 하반기 이후로 밀어지는 분위기다.

Fed의 금리인하 지연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져 세수가 부족할 경우 재정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도 통화정책 이상으로 중요하다. 만약 세금 인상과 공공서비스 지출삭감 등을 통한 긴축으로 대응할 경우 도심일수록 죽임의 도시로 내모는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감세와 공공서비스 지출을 늘려 도심의 매력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됐다. 간단한 래퍼 곡선을 통해 살펴보면 대도시처럼 세율과 재정수입 간에 역비례 관계인 비표준지대에 놓여있는 여건에서는 세율을 낮추는 것이 경제 의욕과 도시 매력을 높여 상업용 부동산 가격하락을 막고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

최근처럼 r* 금리가 r** 금리보다 높아진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통제권에 들어오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은 ‘경기부양’ 쪽으로 우선순위가 바뀌어야 재연되는 미국의 은행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높이는 방안도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림 2> 지연되는 Fed의 금리인하 기대

자료 : 시카고 패드 워치, 한국은행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겸·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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